- 사소하지만 나를 붙잡은 순간/ 『일상의 블랙홀』6화
– 세상의 종말을 바라는 마음속 짧은 소망
가끔, 정말 아주 가끔 이 세상이 몽땅 무너졌으면 하고 바란다.
뉴스에 나올 만큼 거대한 불행,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절망...
나 혼자만 고통받는 것이 억울한 얄팍한 이기심.
왜 나만 이래야 하지? 질문은 늘 똑같다.
나만 이렇게 우습게 망가지고, 나만 이렇게 무기력하고,
나만 이렇게 자존심 구기며 버텨야 하는 거야?
세상이 무너졌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나만 망한 것 같아서 억울한' 그 마음이 쓸쓸해서 꺼내보는
망상일 뿐이다. 꽤 유치한 복수극이다.
잘난 사람들도, 겉으론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도,
나 몰래 뒤틀려 있었으면 좋겠다.
그들의 새 옷에 커피 한 잔 쏟아졌으면 좋겠고,
감성 카페에서 라떼 한 잔 올리며 ‘이 순간을 사랑해요’ 했던 사람,
옆 테이블 아이가 쏟은 초코우유에 셔츠 다 젖고
카메라 렌즈까지 설탕물 범벅되었으면.
적어도 내가 겪는 이 불행의 무게를 그들도 조금은 느껴봤으면 좋겠다.
문득 거울을 본다. 축 처진 어깨, 입술 끝에 힘없는 표정, 조금은 슬픈 눈동자.
참 유치하다. 이기적인데다가, 웃기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내가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적어도 나는 나를 그렇게 변명해본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마음이 들지 않을까?
잠시나마 세상을 향해 삐딱하게 서 있고 싶은 그 마음.
어차피 진짜 종말이 오면
나는 누구보다 먼저 악착같이 살아남으려 발버둥칠 거다.
물 한 병 아껴 마시며, 쓰러지지 않으려 이를 악물며.
이런 망상들이 결국 삶에 대한 애착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 찰나의 망상은 그냥 망상으로 두자.
세상이 무너지는 상상을 하며 잠시나마 내 무너짐을 정당화하고 조금이라도 덜 억울한 척,
웃어보는 거다. 그게 다다.
내 마음 안에서만 일어난 작고 조용한 반란.
그 끝엔, 아무 일 없던 하루처럼 또 커피를 내리고, 다시 살아가게 되는 나.
어쩌면 이런 작은 반란들이 우리를 지탱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잠시나마 내 불행이 세상의 중심인 것처럼 느끼고, 그 안에서 위안을 얻는 것.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 커피 향을 맡으며 하루를 마주하는 것.
나만 무너질 수는 없다는 생각은 결국 '나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의 다른 표현인지도 모른다.
모두의 무너짐을 상상하는 그 순간에도,
우리는 이미 다시 일어설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
오늘도 나는 세상에 작은 반란을 일으키고,
또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당신의 작은 복수는 어떤 상상 속에서 웃고 있나요?
『일상의 블랙홀』은 계속됩니다.
가볍게 절망하고 여전히 살아 있는 감정을 함께 찾아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