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살 반 터울의 누나는 나의 가장 강력하고 편안한 보호자였다. 왜소한 체구였던 나와 달리 누나는 또래 중에서도 큰 편이었고, 친구들도 많았다. 키만 큰 것이 아니라 성격도 당차고 용감했다.
누구든지 나를 괴롭히면 누나가 나서서 해결해 주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누나가 정말 든든했다.
누나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나의 친구들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어릴 때부터 공기놀이와 고무줄놀이에 익숙했다. 보통 남자아이들이 하지 않는 놀이였지만, 누나와 함께라면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여름이면 돌다리 위로 물살이 세게 흘렀다. 그럴 때면 누나가 나를 업고 개천을 건너곤 했다. 누나는 힘도 세서 나를 업고도 안전하게 물을 건널 수 있었다.
나는 누나의 등에 바짝 달라붙어 물소리를 들으며 건너갔다. 누나의 등은 따뜻했고 든든했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었다.
나를 괴롭히는 아이가 있으면 누나가 당장 응징을 해주었기 때문에 학교생활은 그리 고단하지 않았다. 누나의 존재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안전했다.
"야, 우리 동생 왜 때려?"
누나가 나타나면 나를 괴롭히던 아이들은 금세 사라졌다.
하지만 우리 학교 환경은 만만치 않았다. 한 반이 90명이었고, 그중 30명이 고아였다. 인근 고아원에서 함께 몰려오는 고아들의 위세는 학교 내에서 상당했다. 자칫하면 곤욕을 치를 수도 있는 환경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에게는 특별한 보호막이 있었다. 엄마가 미군부대에서 일하면서 가끔 가져오는 통조림과 과자를 고아들의 리더에게 나누어주고 나서부터는 반의 누구로부터도 안전했다.
"이거 너희들 줄게."
누나가 과자를 나누어주면 고아들도 우리를 친구로 받아들였다. 그것은 일종의 보호비 같은 것이었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평화로운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겁이 많았다. 앞산 비행장 가는 길에 철봉이 몇 개 있었는데, 학교에서도 그랬고 나는 철봉이 무서워 죽을 지경이었다.
누나는 철봉대로 발을 걸고 쉽게 철봉 위로 올라가 봉을 배에 걸치고 거꾸로 돌아 내려오는 것을 잘 했다. 반면 고소공포증이 있었던 나는 낮은 철봉 위에도 올라가지 못했다. 보다 못한 누나가 어느 날 나를 철봉대에 끌고 가서 철봉 위에 배를 걸쳐놓고 메뚜기를 잡으러 갔다. 나는 내려오는 것이 무서워 철봉 위에서 엄청 울었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이 '죽다 살아난' 경험을 엄마에게 고자질했을 때, 누나는 신나게 얻어맞았다. 누나도 물론 놀람 때문에 아무 말 없이 매를 받아들였다. 내가 거기에 그렇게 매달려 내려오지 못하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나는 철봉과의 본격적인 싸움을 벌였다. 친구들과 방과 후 매일 철봉과 평행봉이 있는 모래판에서 놀았다.
어린 시절의 공포가 기억났고, 자존심으로 이를 극복해보고자 하는 굳은 마음이 생겼다. 그 덕분에 철봉에 매달려 흔들어 멀리뛰기 내기를 할 정도로, 철봉에 있어서만큼은 용감한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
아마도 이것이 내 인생 최초의 '남자라는 의식'의 위기 극복 사례가 아닐까 생각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누나는 나에게 단순한 보호 이상의 것을 주었다. 용기를 내는 법, 친구를 만드는 법, 그리고 두려움을 극복하는 법까지.
누나의 따뜻한 등에서 느꼈던 안전함은 훗날 내가 혼자서도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었다. 그리고 철봉에서 느꼈던 공포를 결국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누나가 보여준 용기 덕분이었을 것이다.
한 살 반 터울의 작은 누나, 하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수호자였던 그녀에게 이제는 내가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따뜻하다. 그 모든 순간들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어준 소중한 시간들이었음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