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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낯설어도

by 아나스타샤

결혼 전까지 나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굳이 식단을 신경 쓰지 않아도, 밤이고 낮이고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았다. 잠만 잘 자도 몸무게가 1~2kg은 그냥 빠질 정도였다. 그때는 살이 조금 쪘으면 하는 생각으로 먹어 댔다. 지금 생각하면 보기 싫을 정도로 말랐었다. 그 시절 나를 보던 아주머니들이 하는 단골 맨트가 있었다. "나도 아가씨 때는 허리가 한 줌이었어. 개미허리. 애 낳고, 나이 먹고 이렇게 된 거지." 당시 이렇게 말하는 아주머니들의 체형은 바뀔 대로 바뀌어 있어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어느새 옛날 아주머니들 말에 격하게 공감할 나이가 되어 있는 나는 '예전에 나도 날씬했었어.'라는 말을 굳이 입 밖으로 뱉지 못한다. 하나마나한 말이 될 테니까. 요즘을 살고 있는 나는 나잇살이라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곤 한다.


20대 때부터 허리가 좋지 않았던 나는 여기저기 군살이 붙으면서 허리 통증으로 고생했고 면역력이 떨어지거나 무리하게 되면 어김없이 허리가 아파왔다. 자연스레 몸뚱이를 살살 다루는 습관이 몸에 익었다. 몸을 아낄수록 체력은 점점 약해지는 듯했다. 전문적인 운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나는 자세교정과 속근육 발달에 좋다는 필라테스를 해보기로 했다. 몸이 유연한 편이었던 나에게도 필라테스는 결코 만만한 운동이 아니었다. 부드럽고 온화한 동작처럼 보이지만, 제 할 일을 하지 않고 숨어있는 근육들을 찾아내어 혼쭐 내곤 했다.


나는 허리가 좋지 않은데도 난도 높은 동작을 욕심 내서 해내곤 했다. 결국 나의 과욕 때문에 몸에 무리가 와서 필라테스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앉아 있으나, 누워 있거나, 서거나 어떤 자세를 취해도 허리로 전해지는 통증 때문에 나의 삶은 고통받고 있었다. 결국 통증의학과에서 주사치료를 받고서야 통증에서 벋어날 수 있었다.


시작하면 비교적 꾸준히 해내는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운동은 그렇지 못했다. 통증이 무서워서 주저하기를 반복했다. 근육은 빠지고 지방은 늘어나기 시작했고 몸은 둔해졌다. 순환도 되지 않아 찌뿌둥한 날들이 많았다. 마치 방치턱처럼 몸 곳곳에 뭉쳐 있는 살들을 보면 이대로 안 되겠다 싶었다. 몸에 균형을 바로 잡고 자연스레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되는 자세교정수업을 한번 받아 보았다.


자세교정을 받은 다음날부터 움직일 때마다 오른쪽 갈비뼈 부근이 약간(최대통증 10이라면 3 정도) 불편했다. 숨 쉴 때마다 쑤시는 듯한 통증 강도가 5 이상으로 움직임마저 불편했다. 갈비뼈에 금이 가지 않고서야 이렇게 아플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도무지 이해가지 않는 부위에서 보내는 신호였다. 잠을 잘 때도 오른쪽으로 눕거나 왼쪽으로 누울 때 찢어지는 압박 통증으로 깊은 잠을 자기 어려웠다. 토요일쯤 되니 강도는 8 정도로 운전을 할 때나 몸을 움직일 때마다 '으악'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토요일이라 병원진료는 이미 마감됐을 시간이고 월요일까지 참기 힘들 정도로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했다. 약국에서 약이라도 사서 주말 동안 버텨보자! 오래돼 보이는 허름하고 작은 약국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차를 주차하고 입구에 들어서려는데 나뭇가지 줍기와 빗자루질로 주변 정리를 하고 있는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가 보였다. 잔뜩 구겨진 얼굴을 하고 있는 나를 본 할아버지는 어떻게 왔냐고 물었다. 나는 옆구리가 아파서 왔다고 했고 할아버지는 어혈이 뭉쳐서 그렇다는 말을 했다. 나는 할아버지 말을 스치듯 듣고 약국 문을 열었다. 열린 문틈에 대고 할아버지는 "약 3개 드려."라고 외쳤다. 약국 안으로 들어가니 친근한 인상의 할머니 한분이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의 말을 들은 할머니는 망설임 없이 약 3종류(근육이완제, 소염진통제, 어혈을 풀어주는 한방약)를 꺼내 놓으며 약 잘 들을 테니 안 아프면 먹지 말라고 당부했다.


집에 오자마자 약부터 꺼내 먹었다. 통증이 가라앉길 바라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자는 동안 왼쪽으로 누웠다가 오른쪽으로 눕는 동작을 반복해 보았다. 통증이 사라졌다. 한번 복용으로 이렇게까지 말끔하게? 며칠 만에 꿀잠이었다. 개미허리에서 올록볼록 살들이 붙었고, 이제는 어느 날은 날개뼈, 어떤 날은 정강이, 고관절 곳곳에서 보내는 신호들로 고생하기도 한다. 내 몸도 지금의 내 나이가 처음이라 적응해 가는 시기가 있단다. 몸이 내 나이에 적응하면 그러려니 된단다.



사진출처 : pexels-pnw-pr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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