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담론은 은폐를 위한 담론이다

by 김명준

실제로는 미국, 중국이 압도적으로 큰 책임이 있는 나라인데 지구를 지키자는 뜬구름이나 잡는 단어로 마치 모두의 책임인거 처럼 만들어놓는다. 지구는 행성일 뿐인데 뭘 지킨다는 말인가? 비트겐슈타인이 이걸 봤다면 언어의 오용에서 비롯된 파리병이라 불렀을거다. 그들이 기후위기를 주장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장하준 교수가 말한 사다리 걷어차기다. 다른 하나는 홀로코스트와 부조리를 은폐하기 위한 같잖은 시도다. 80년 동안 홀로코스트 없었다? 그건 다 오만하고 가증스러운 선진국 얘기에 불과하며 개도국은 여전히 현재진행중이다. 개도국에게 기후위기 담론 따위가 눈에 들어오겠는가? 그리고 선진국 역시 홀로코스트에서 예외는 아니다. 케르테스 임레가 말했듯 홀로코스트는 문명의 실패가 아니다. 오히려 문명의 본질이다.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게 홀로코스트고 작년 계엄령이 그걸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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