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말이 마음을 멈추게 했다.(2)

작은 말과 행동 속에서 다시 배우는 하루의 마음

by 뮤렌

2화. 열심히 안 할 때도 있어요.

아이의 한 문장이 내 하루의 속도를 바꿨다


KakaoTalk_20251107_211415952.jpg 왜 뭐든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저녁을 먹고 나면 집 안에는 조용한 긴장이 깔린다.

아이들의 숙제 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나는 늘 같은 말을 반복했다.

“얼른 집중해. 집중하면 금방 끝나.”


그 말을 할 때면, 이 숙제가 아이의 것인지, 아니면 나의 하루를 정리하려는 의식인지 가끔 스스로도 헷갈렸다.


단어 외우기를 펼친 아이는 금세 몸을 배배 틀었다.

귀여운 얼굴에 ‘하기 싫어요’가 가득 적혀 있었다.

옆에 앉아 있는 나도 마음 한쪽이 근질거리는데 아이는 그보다 훨씬 힘들겠지.

알면서도, 또 무의식처럼 입을 열었다.

“조금만 더 해보자. 여기까지만.”


그날 밤, 아이의 일기장 한 페이지에 적힌 짧은 문장을 발견했다.


“엄마, 열심히 안 할 때도 있어요.”


삐뚤삐뚤한 글씨였지만, 문장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하게 단단했다.

그 말을 읽는 순간, 내 가슴 한가운데에 툭, 작은 돌멩이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문장은 아이의 목소리 같으면서도 동시에 나 자신에게 건네는 오래된 질문 같았다.

‘너는 왜 그렇게 늘 바쁘게 굴어?’

‘왜 아무것도 안 하는 순간을 두려워하니?’


돌아보면 나는 멈추는 일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잠깐 쉬면 ‘게으른 사람’이 된 것 같고, 오늘 미루면 내일의 나는 더 많은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고 믿으며 살았다.

그 조급함을 아이가 눈치챈 걸까.

아니면 내가 아이에게 그 속도를 그대로 전한 걸까.


아이의 단 한 문장이 내가 잃고 있던 여유를 들춰냈다.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어떤 계획도 의무도 내려놓았다.

아이 옆에 나란히 누워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이렇게 포근한 것이었나.

천장에 비친 희미한 불빛이 우리 둘 사이의 조용한 평화를 밝혀 주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그래, 열심히 안 할 때도 있어도 돼.

엄마도 사실… 항상 열심히만 하진 못하더라.”

그러자 아이는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럼 오늘은 쉬는 날이네?”


그 말에 괜히 웃음이 났다.

마음 안에서 고집처럼 굳어 있던 긴장이 스르륵 풀리는 기분이었다.

‘쉬어도 괜찮다’는 허락을 아이에게서 받는 느낌.


그날 이후로 나는

잠깐 멈춰 서는 시간을 더 자주 만들어보려고 한다.

커피가 식어갈 때까지 잡아두는 여유,

창밖의 바람을 괜히 오래 바라보는 멍한 순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밤의 고요까지도 이제는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준다.


그리고 그때마다 아이의 그 문장이 조용히 마음 안에서 걸어 나온다.


“엄마, 열심히 안 할 때도 있어요.”


그래요.

그럴 때도 있는 게 인생이고, 그런 날이 마음의 결을 조금 더 부드럽게 다듬는다.


아이 덕분에 나는 천천히, 하지만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는 중이다.

조금 느려도 괜찮은 사람으로 다시 돌아오는 연습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