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어린 왕자)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여러분이 새로 사귄 친구에 대해 어른들에게 말하면, 어른들은 결코 본질적인 것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중략) 어른들은 “걔는 몇 살이니? 형제가 몇이니? 몸무게는? 걔네 아빠는 얼마나 번대?”라고 묻는다. 그러고는 그것만으로 그 아이를 안다고 생각한다. (중략) 어른들은 그런 식이다. 그렇다고 어른들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에게 아주 관대해야 한다. 그러나 물론 우리는 인생을 이해하므로 숫자 같은 것은 우습게 여긴다! - <어린 왕자> 中 -
내가 어떤 친구를 새로 사귀었을 때다. 그는 나를 잘 몰랐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여튼 호감을 가진 채 서로를 알아가던 어느 날 사건은 발생했다. 그런 날을 데이트라고도 부른다지? 직장인이던 나는 휴일에 한 번쯤 가보고 싶었던 명소를 골랐다. 거기서 만나자고 했다. 종로에 있는 경교장이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집무실이자 임시정부 숙소였던 곳이다. 새로 복원돼 시민들에게 개방되다는 소식에 호기심이 몰려왔다.
관람객들은 많이도 찾아왔다. 남녀노소가 골고루 모여들었다. 그는 이런 사적에 오자고 한 걸로 나의 근현대사에 대한 관심을 어느 정도 파악했을지 모른다. 그렇게까지 큰 그림을 그리지 않았던 나는 그냥 집중해서 관람해 나가고 있었다. 내가 좀 더 살펴보고 싶은 사물마다 그가 기다려주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관람객들은 다닥다닥 붙어 다니는 수준이었다. 어느 순간, 뒤에 있던 중년 여성이 나에게 전시물에 적혀 있는 글자를 물어봤다. 한자를 몰라서라기보다 시력이 안 좋아 보였다. 당연하다는 듯 이러저러한 짧은 설명을 덧붙인 나는 또 다른 전시 공간으로 갈 길을 이어갔다. 내겐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날의 데이트를 마칠 때쯤 그는 아주 신기한 걸 발견했다는 듯이 내게 말했다. “참 친절하신 것 같아요.” 그런 말은 자주 들어보지 못했다. 생면부지의 사람이 말을 걸어올 때 내 본질이 드러났던 걸까. 그냥 ‘잘 모르겠어요’라고 눙치고 무시할 수도 있는데 굳이 시간을 들인다는 점이 그의 눈에 띄었다. 나는 내가 원래 그런 성향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친절’이라는 낯선 단어를 듣고 나의 기질을 깨달았다. 나는 누가 도와달라고 그러면 잘 도와주는 편이다. 사실 그랬다. 거절을 잘 못한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건 껍데기일 뿐이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나는 <어린 왕자>의 이 문장에서도 힌트를 하나 얻었다. 본질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어른들이 좋아한다는, 눈에 잘 보이는 ‘숫자’는 본질적인 것을 잘 알려주지 못한다. 나와 관계된 그 어떤 숫자가 나의 천성을 드러내고 있단 말인가. 예를 들어 어떤 썸남이라도 나의 나이는 알고 있다. 형제가 몇 인 지도. 키나 몸무게도 대략은 알 수 있다. 아버지의 연봉이나 월수입까지 공개할 단계까지는 아니었지만, 경교장 데이트남에게는 나도 몰랐던 나의 본모습 한 가지가 보였다. 숫자를 통해서는 아니었다.
어린 왕자와 비행사의 숫자 이야기를 듣고, 나는 눈에 보이는 숫자에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지 떠올려봤다. 사람을 사귈 때도 숫자 같은 것을 중요하게 보는지, 우습게 여기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친구의 본질을 숫자 없이도 파악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