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월든)
이 집으로 이사 왔을 때였다. 창문에 방범창이 있었다. 안전상의 이유로 달았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방범창 겉에도 대나무 발을 쳐놓은 것은 다소 특이했다. 여름 햇볕을 가리는 용도일까 싶었지만, 안방의 방범창 선반에는 화분까지 하나 놓여있었다. 나에겐 쓰레기였다. 보자마자 버릴 걸 그랬다.
어느 조용한 아침, 안방 침대에 누워있는데 낯선 소리가 들렸다. 퍼덕퍼덕. 자박자박자박. 평소처럼 대나무 블라인드가 바람 때문에 플라스틱 방범창에 부딪히는 것일까. 아니었다. 빗방울 소리도 아니었다. 서늘한 기분에 벌떡 일어나 창문을 쏘아보았다. 이중 창문인데도 차마 열지 못했다. 반투명 필름이 덧대져 있는 창 뒤로 불길하게 희뿌연 물체가 어른거렸다. 아~ 뭐야! 크기는 자그마한데 왜 나는 무서운 건지, 더럽고 화가 나면서도 울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비둘기가 자꾸 날아온다고 하자 그날 밤 남편이 나 대신 화분을 버렸다. 그제야 안심하고 창을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었다.
몇 달이 흘렀다. 놈들의 눈에는 여전히 우리 집이 만만했다. 방범창에 둘러싸여 있는 대나무 햇빛가리개가 그토록 유용해 보였나. 또 왔다, 또 왔어. 톡톡톡 소리가 났다. 심정 상으로는 저벅저벅저벅 휘젓고 있는 수준이었다. 자신도 지구의 당당한 세입자라는 듯이 말이다. 이중창을 다 열어도 방충망이 있어서 침입자가 방 안으로 들어올 리는 없다. 그래도 이중창 중 반투명 필름이 붙여진 창문만 열고, 투명한 창을 향해 베개를 집어던졌던가 긴장한 나로서는 혼신의 힘으로 쫓아냈다. 몇 시간 후에도 다시 날아 올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조심스레 방충망까지 열어서 방범창의 선반을 확인했다. 짧은 나뭇가지들이 우수수 흩어져 있었다. 그놈 짓이지 뭐겠는가. 한숨이 터져 나왔다. 물론 내 손으로 치워도 되지만, 그날도 깔끔이 남편이 가지들을 쓸어줬다. 이때 대나무 가리개를 폐기했어야 했는데!
결전의 날은 이튿날 아침이었다. 포기를 모르는 침략자가 다시 창가에 온 것이다. 이전보다 더 큰 힘으로 큰 베개와 큰 방석으로 때려잡을 듯 창을 공격하니 ‘슝’하고 사라졌다. 이러다 유리창이 깨질 지도. 나뭇가지 치웠는데 왜 또 오는지, 싫고 싫고 너무 싫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방충망을 또 열어봤는데……. ‘비둘기가 알인지 돌인지 뭔지 놔두고 갔다.’ 그날따라 일찍 출근해 버린 남편에게 망연자실한 심정으로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나의 울분이 그에게도 잘 전달됐는지 구시렁거리는 게 들리는 듯했다. 순간, 불안감이 휘몰아쳤다. 알을 품기 위해 지치지 않고 다시 돌아올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날 오후쯤 마침내 비둘기와 눈이 마주쳤다. 투명 창 하나를 가운데 두고서. 난 정말 기겁했다. 그런 눈을 사백안이라고 해야 할까. 새 눈알 하나가 뭐가 공포스럽나 싶겠지만, 사람의 키 높이에서 맞닥뜨린 경험은 결코 잊을 수 없다. 귀신이나 악마라도 본 듯 내게서 괴성이 터져 나왔고, 심장박동은 올라갔고, 손은 후덜덜덜 떨렸다. 남편은 퇴근하자마자 알도 처리하고 방마다 둘러져있는 대나무 발을 모두 부숴버렸다.
마음 한구석에는 그놈이 복수라도 하러 또 쳐들어오는 건 아닌지 걱정마저 들었다. 다음 날 나는 부랴부랴 옷가지며 세면도구며 짐을 쌌다. 캠핑에 나서려는 남편의 일정에 따라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유해 조류가 또 들이닥칠지 모르는 집에 도저히 혼자 있을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한 마리의 침입자를 피하려고 새들이 지천으로 깔린 숲으로 도망갔다.
나의 이 비둘기 혐오증(?)은 정상인 걸까 비정상인 걸까. 공원에서 보는 무리까지 이런 감정이 드는 건 아닌데. 내 집에서 부딪치는 문제는 차원이 달랐다. 캠핑에서 돌아오자마자 칼 추진력의 남편은 주섬주섬 택배 상자를 뜯었다. 그걸 들고 안방으로 가더니 부산스레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창틀이나 에어컨 실외기 주변에 두는 비둘기 전용 퇴치 장비를 붙이는 거였다. ‘버드 가드’라는 이름의 도구를 내 보디 가드가 설치한 뒤로 온 세상이 안전해졌다.
그즈음 심취해 있던 책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이었다. 버드 가드가 부착된 창문 앞에 다소곳이 그 위엄을 자랑하며 놓여있는 고전 중의 고전 <월든>. 이 책은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야생동물은 물론 온갖 자연에 빠져들어, 인생의 참 묘미를 찾고자 했던 한 사상가의 체험보고서다.
작가는 자신의 오두막에 찾아오는 사람뿐 아니라 작은 생명체까지도 방문객으로 표현했다. 물새 한 마리와도 금방 막역한 친구가 됐다. 특히 12장 이웃의 동물들 편에서 일부러 보트를 타고 나가 되강오리와 숨바꼭질을 펼치며 노는 대목이 압권이었다. 그 놀이는 일생일대의 승부라도 되는 듯 숨이 막히면서도 아찔했다. 마치 연애를 갓 시작한 연인들의 ‘나 잡아봐~라’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인간과 조류의 밀당 한 대목을 소개한다.
호수 표면이 가장 널찍하고, 보트와 자기 사이의 거리가 최대한 멀리 떨어지는 곳을 노렸다. 새는 아주 신속하게 결심했고 곧바로 행동에 옮겼다. 새는 즉각 나를 호수의 가장 넓은 부분으로 유도함으로써 더 이상의 추격을 불가능하게 했다. 새가 뭔가를 생각할 때면 그 생각이 어떤 것인지 짐작하려 애썼다. 그것은 호수 표면 위에서 벌어지는 인간과 되강오리 사이의 멋진 게임이었다. (중략) 그는 수면에 도달하여 빠끔 머리를 내밀고 주위를 정찰하더니 곧바로 다시 잠수했다. 노를 멈추고 다시 나타나길 기다리는 동안, 새가 어디서 불쑥 솟아오를지 맞춰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거듭 실패했다. 눈에 힘을 주고서 수면의 어느 한쪽을 열심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 등 뒤에서 불쑥 솟아올라 이 세상 것 같지 않은 웃음을 터뜨리며 나를 놀라게 했다.
이 둘의 멋진 게임을 보는 내내 나는 연인 사이의 애정을 보았다. 그것도 아니라면 막냇동생 대할 때의 인자함이라고나 할까. 기꺼이 너의 장난과 대담함을 받아주겠다는 작가의 태도가 나에게는 느껴졌다. 소로는 초월주의 철학자로 분류되는데 <월든>을 통해 나는 ‘초월주의’에서 말하고 있는 인간과 자연에 내재해 있는 선함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됐다. 쉬운 말로 순수함을 말하는 듯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모든 자연과 혼연일체가 된 작가의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부러웠다. 내 창 앞에 날아온 새를 악귀 보는 듯했던 나와는 달랐다. 확실히 난 철학자는 못 될 인사다. 조류는 절대 사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