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파과)
장편소설 <파과>를 읽었다. 상하거나 흠집 난 과일을 말하는 파과. 얼마 뒤 나는 글쓰기 강의를 들으러 갔다. 강사가 직유법을 사용해서 ‘피곤하다’는 단어를 묘사하라고 했다. ‘어린이날 3시간 동안 키즈 까페에 다녀온 우리는 파과된 바나나 2송이 같았다’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책 내용이 어찌나 인상깊었는지 나는 전혀 모르던 어휘를, 비유할 때 사용하는 경지에 다다랐다. 소설의 주인공은 노년 여성인데 ‘아직 싱싱하게 살아있다’는 걸 펼쳐 보이는 작가의 방식이 손에 땀을 쥐게 하면서도 통쾌했다. 그렇게 나는 이 책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본격적으로 책을 잘 읽어보겠다고 독서동아리를 만들었다. 하필 문장이 길고 어려운 작품을(W.G. 제발트. 토성의 고리) 함께 읽을 때였다. 한 문장이 3~4줄까지 이어졌는데 책을 읽으면서도 다 읽고 나서도 작가의 긴 호흡이 아주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파과>의 구병모 작가가 생각났다. 그도 문장을 길게 쓰면서 사람의 혼을 쏙 빨아놓는 능력을 가졌으므로. 독서토론 하면서 나도 모르게 회원들에게 소설 <파과>와 구병모의 문체를 언급했다. 그 중 한 명이 이해가 간다며 적극적으로 공감해 주었다. 반갑고 고마웠다. 그날 이후 구병모의 스타일을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올해 4월에도 나는 책 읽기 수업을 신청했다. 수강생들은 작은 모둠을 구성해 독서 경험을 나누었다. 여기서 나는 짝꿍을 한 명 만들었다. 매주 옆자리에 앉아 책 수다에 열을 올렸다. 아무거라도 던져보자는 심정으로 “이 작품 아세요?”라며 나는 또 <파과>를 입에 올렸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 잘 알고 있다며 이번 봄에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 대답을 듣는 데 나는 거의 붕괴되었다. 이렇게 가까이 공통 화제로 대화가 되는 이가 있을 줄 몰랐기 때문이다. 얼마 전 영화 <파과>의 개봉 소식을 알게 됐을 때처럼 가슴이 마구마구 뛰었다. 줄거리는 어렴풋했고 중심인물 한 두 명만 기억하고 있는 주제에 나는 이 작품이 인생 책 TOP3라도 되는 양 호들갑을 떨었다.
바로 그 다음 주. 행운이 눈앞에 당도했다. 글쓰기 습관을 만들어보려고 스터디를 시작하기로 했을 때다. 모임 장소에 들어서자마자 주위가 어둡게 변하면서 책상 위에 조신하게 올려져 있는 책 한 권에서 광명이 발했다. 그 소설이었다. 도서관이 동아리 사업을 통해 참여자들에게 무상 제공하는 책 중 하나였다. 새로 들어간 곳에서, 마침 이 책의 주인이 결석하는 바람에, 내 손에 들어왔다. 이날의 서기 역할을 하는 조건으로 나는 몇 년 만에 <파과>를 다시 읽게 됐다. 새 책인 데다 표지까지 양장본으로 바뀐 걸 가방에 넣는 데 기분이 오묘했다. 마치 짝사랑남에게 프로포즈 당한 상황. 미친 듯이 헛웃음이 났다.
계속 말을 하면 좋은 일이 생기는 걸까. 그렇다면 가지고 싶은 행운을 주구장창 읊어볼까. 적어도 좋아하는 것은 계속 좋다고 떠들고 다닐 것이다. 그 어떤 눈치도 보지 말고. 혹시 아는가. 이 글도 행운의 연쇄작용을 일으킬지. 깜짝 행운이 다가오도록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더 살펴보고 싶다. 취향이 확실하면 확실해질수록 감동은 깊어질 수밖에! 참, 재독한 소설은 여전히 황홀한 수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