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책과 나 15화

나의 모국어

(feat. 초급 한국어)

by 최고수정

착하고 순진하고 뻔한 한 남자가 있다. 문지혁이다. 장편소설 <초급 한국어>의 주인공이다. 소설의 작가 이름도 문지혁. 나는 자서전과 소설의 중간 지대에 위치한 ‘오토픽션’이라는 장르를 이 소설을 통해 접했다. 작가의 진짜 삶과 경험이 녹아있다는 점이 나에겐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형식이 뭐든 간에 이 작품은 물건이다. 지혁이 짠하면서도 웃기면서도 응원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작가든 주인공이든 인물에게 애정이 갔다. 우스꽝스러운 장면들도 꽤 많아 피식피식 웃으며 가볍게 잘 읽을 수 있었다.


일단 제목에 ‘한국어’가 들어있다. 초반부에 한글의 자음과 모음도 나열돼 있다. 주인공이 미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강사니까 그럴 만도 하다. 영어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의 난감함이 자주 그려지는 데 이것을 유쾌하게 담아낸 것이 작가이자 주인공의 매력이다. 그나저나 그는 외국어로 글을 쓰는 이른바 ‘이민작가’가 되는 것이 목표다. 비록 주위의 반대에 부딪히지만. 주인공이 매일 한국이 아닌 곳에서, 한국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 한국인이라는 설정만 적응되면 내용은 일사천리로 넘어가게 된다. 기왕이면 자주 등장하는 영어 단어들이 빨리 익숙해지면 좋다.


실제로 작가는 뉴욕대에서 인문사회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배경은 맨해튼이지만 소설의 내용은 철저하게 한국에 대한 것으로 느껴졌다. 특히 어머니와의 일들이 내겐 핵심으로 보였다. 모국에서 성장기를 보낼 때 있었던 일, 모국어를 사랑하고 작가라는 꿈을 가지는 동안 벌어졌던 일 등 작가는 계속 한국에서의 과거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급기야 그는 어머니를 ‘나의 모국어’라고 지칭하게 됐다. 이 소설의 ‘차례’ 다음 장에 “나의 모국어, 어머니께”라고 적혀있는데 이걸 기억하고 책을 읽으면 더욱 감동적일 것 같다. 외국에서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현재와 자신의 과거를 이어 붙이는 작가의 솜씨가 탁월했다. 다큐멘터리와 달리 허구적 장치를 적재적소에 배치했기 때문일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머니’라는 주제는 여러 예술에 영감을 준 키워드다. 나무위키는 여성이 아이를 낳았을 때 아이의 입장에서 그 여성을 부르는 호칭이라고 되어있다. 이 소설에서 문지혁은 자신의 정체성을 아이로 규정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봤다. 우쭐하고 싶어서 작가가 되고 싶다는 주인공의 마음도 엄마의 심정으로 이해가 잘 갔다. 그 외에도 독자들의 배꼽을 잡게 할 멍청한 일(카지노 장면)이라든가, 뉴욕의 갱들이 등장하는 장면이라든가, 자잘한 에피소드들이 귀엽고 측은하게 공감이 잘 갔다.


이 소설은 사랑했던 모국어의 단어 하나를 영원히 잃어버릴 때까지 지혁이 타국에서 겪었던 일에 대해 쓰여있다. 다 읽고 나면 독자 자신의 어머니를 더 사랑하게 되거나, 한국어를 더 사랑하게 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라고 단언한다. 작가라는 직업을 사랑하게 될 수도 있다. 적어도 어머니에 대한 그 어떤 생각이라도 머릿속에 맴돌지 모른다. 독자의 어머니가 생존해 있든 아니든.


폭풍 눈물은 덤이다. 마지막 장에서 나는 갑자기 눈물 호스가 터져버려서 난감했다. 내 인생에서 아버지라는 단어가 없어진 순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뭐길래 무려 20여 년 전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문지혁이 느꼈을 그 암담함과 슬픔을 위로해 주고 싶었다. 임종 때 곁에 있지 못했다면 그건 그것대로, 고된 간병 생활이 떠오른다면 그건 그것대로 어떤 형태로든 독자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참, 책을 다 읽었을 때의 유의점을 하나 더 짚고 가겠다. 작가의 다음 소설 <중급 한국어>가 매우 궁금해진다는 사실이다. 물론 다른 작품들도 아주 많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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