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여름)
여성들이여, 자신의 보석함을 당장 들여다보길. 선물 받은 액세서리가 단 하나라도 있는가. 누구에게서 받았나. 이디스 워튼의 장편소설 <여름>을 다 읽고 나니 남자가 여자에게 골라주었던 반짝이는 브로치가 머리를 빙빙 돌아다닌다. 소설은 미국 문단에서 여성의 성적 열정을 다룬 최초의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나는 젊은 여성이 사랑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랑은 두렵고 조심스러우면서도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주게 되는 것이다. 성장소설이라고 하면 왠지 감동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그냥 읽는 사람을 열여덟의 소녀가 되도록 변신시켜준 작품이라 하고 싶다.
채리티는 어린 시절 로열 변호사가 ‘산’에서 데리고 왔다. 그녀는 산속에서 거주하는 부랑자 집단에서 태어났다. 이교도처럼 무리 지어 사는 그들은 마을에 세금도 내지 않고 경찰의 관리도 받지 않았다. 채리티의 후견인이자 동거인인 로열 씨는 ‘노스도머’라는 작은 마을에서 가장 명망 있는 인물이다. 그녀가 도서관의 사서로 근무하도록 힘을 써 주기도 했다. 돌무덤 같은 작은 도서관에 박힌 소녀가 모든 게 지긋지긋하다고 느낀 초여름의 어느 날, 루시어스 하니라는 젊은 건축가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녀를 잡아채어 새로운 세계로 데리고 간다.
사랑이 핏속에서 즐겁게 춤을 추는데 어디에서 태어났건, 누구의 자식이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 문장은 작가가 독자에게 던지는 너무나 자명한 명제였다. 대도시에 살든 소도시에 살든, 부모가 있든 없든 누구에게라도 사랑이라는 감정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거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실제로 자연에 대한 묘사는 소설의 분위기를 좌우했다. 환상적이면서도 투명해서 작가의 색깔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산은 물론이고 들판, 골짜기, 언덕바지, 풀, 하늘, 달빛 등은 채리티의 감정 변화를 전달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하니는 산간 지역의 가옥에 관한 책을 쓰기 위해 마을에 오게 됐는데, 작가는 두 사람이 외딴집을 찾아다닐 때 보였던 자연경관들을 훌륭하게 그려냈다.
작가 이디스 워튼은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가 가져온 어휘들은 내 마음속을 뿌리가 드러나도록 헤집어 놓고야 말았다. ‘금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일몰’이라는 표현에도 나는 녹아내렸다. 약한가? ‘매가 날개를 움직이지 않고 하강하듯 자전거를 타고 떠내려가 그를 만났다’라는 비유는…… 작가는 산불처럼 활활 타올랐던 두 사람의 시간 한가운데로 나를 몰아넣는 데 아주 성공했다.
소설의 절정은 채리티와 하니가 호수 위 불꽃축제를 즐기는 부분이었다. 브로치를 선물해 주는 핵심적인 장면도 여기에 나온다. 문제는 이 사랑이 결혼으로 성취될지 의심하며 읽게 된다는 점이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 없이 겨울이 나타났다고나 할까. 불꽃놀이 후 두 사람의 밀회 장소에 뜬금없이 로열 씨가 등장했을 때다. 인물들의 갈등이 최고조로 폭발하는 부분이었다. 정작 채리티는 자신이 곤란에 빠진 줄도 모르는 상태였다. 어리고, 어쩌면 어리숙하고, 욕망에 충실했던 그녀의 결과가 슬며시 예상되며 씁쓸함이 몰려왔다.
성적 묘사와 관련해서, 직접적인 표현이 난무한 것은 아니었다. 기껏해야 남자가 여자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정도다. 오히려 너무 은밀해서 한참을 해석해야 하는 대목도 있었다. 은신처에서의 성관계마저 생략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하니와의 추억이 자궁에서 자라고 있다고 적혀 있는데도 나는 상징으로만 받아들였다. 그만큼 이 소설은 여성의 성장과 자유에 대한 작가의 가치관을 상징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후반부에 채리티는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비책으로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산’에 올라가게 된다. 그녀는 현실과 공상 사이에서 헤매지 않고 철저하게 현재를 택하는 사람이 되어 갔다. 과거 로열 변호사는 채리티의 어머니가 살고 있는 그런 종류의 삶에서 소녀를 구해냈다. 두 번째 함정에서도 그녀를 구하려고 뛰어든 사람은 로열 씨였다. 그러나 채리티는 사랑의 징표였던 푸른색 브로치를 결코 팽개칠 수 없었다. 그 색깔은 결국 하니의 신부가 되는 여자의 눈동자 색일 뿐이었는데. 불쌍한 채리티여, 슬픔을 추스르고 담대하게 나아가길.
이 소설 <여름>을 읽기 전과 후에 나는 확실히 바뀌었다. 사랑과 이별의 정수를 목도했기 때문일 것이다. 무도한 세상에 겁 없이 덤벼든 열여덟의 채리티도 되었다가, 아이를 가진 채 선택의 갈림길에 선 채리티도 되었다. 사랑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몸을 실어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것은 후회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다행이기도 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