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책과 나 17화

추리소설을 읽다

(feat. 가재가 노래하는 곳)

by 최고수정

델리아 오언스의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주인공은 ‘습지 소녀’라는 뜻의 마시 걸(Marsh girl)이라는 별명을 가졌다. 습지의 미개한 유인원 계집일 수도 있고, 명문대 명예박사 학위를 가진 생물학자일 수도 있다. 그 둘은 종이 한 장 차이였다. 야생의 동물처럼 신발을 신지 않고 10대 중반이 될 때까지 글을 읽을 줄 몰랐던 점을 보라. 원시적으로 보이지만 동시에 새들의 깃털 표본을 끈기 있게 수집하고 기록하는 데 가치를 둔 열정 있는 사람이었다. 그를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카야로 불렸다. 이 소설은 그의 일생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추리소설의 모양새를 갖고 있다. 초반에 체이스 앤드루스의 시체가 늪에 누워있다는 내용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일단 사고사인지 살해된 것인지 읽는 사람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작가는 이 떡밥 하나를 풀어주기 위해 455페이지라는 책 두께를 거침없이 감내했다. 카야와 체이스의 관계를 보여주기 위해 이들의 성장 과정과 카야의 첫사랑까지도 빼놓지 않았다. 1952년 같은 아주 먼 과거로 한 번, 1969년 같은 현재의 수사 단계로 한 번, 한 꼭지씩 왔다 가는 형식을 취했다. 이런 방식 때문인지 작가의 필력 때문인지 하루 이틀 만에 거뜬하게 완독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왜 추리소설을 읽는지 알게 됐다고나 할까. 결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길고 긴 여운도 남겼다.


생물학자가 책의 주인공이라고 해서 어려운 학명의 동식물이 계속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카야가 여섯 살 때 엄마에게 버림받은 열악한 환경 속에 던져져 있다고 해서 작품의 분위기가 암울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그는 고립된 채 살아남지만 히키코모리는 아니었다. 생태학적인 관찰에 몰두하는 모습에서는 지식에 대한 내 갈망이 해소되는 듯한 느낌도 받았기 때문이다. 인물의 심리를, 습지라는 배경에 대입해 묘사하는 작가의 실력은 감격이 절로 나올 수준이었다. 특히 은밀한 습성을 가진 ‘나이트 헤론’이라는 조류를 가져온 것은 신의 한 수에 가까웠다.


자연과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꼭 읽어야 하는 책으로 규정하고 싶기도 하다. 작품의 중반부부터 나는 아예 작가가 카야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다.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고서는 이런 훌륭한 문장들이 나올 수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만큼 깊이 빠져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동물행동학 박사인 작가는 암컷과 수컷의 행태 가운데 칠면조, 공작, 사마귀, 반딧불이 등을 소설 속에 녹여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게 했다. 곤충에 대한 소소한 사실들은 깨알 재미를 안겨주기도 했다. 음흉한 섹스 도둑이라 불리는 생물이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아주 먼 곳이라는 뜻이다. 정확히는 뭇사람들을 피해 깊이 숨을 곳이다. 카야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평생을 지냈다. 갈매기가 유일한 친구일 때가 많았다.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빅 레드 갈매기에게 줄 먹이를 꼬박꼬박 챙겼던 카야. 동물들과는 어마어마한 친화력을 발휘하는 그였다. 왜 습지에서의 삶을 고집했을까. 늪의 생물들이 좋아서였을까, 사람으로부터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였을까. 그러나 우리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 의지할 존재는 필요하다. 도망갈 수 있는 곳은 없다. 독자들도 그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10대에게 자립심을, 20대에게 운명적인 사랑을, 30대에게 성취감을 일깨워 주려고 작가가 이 소설을 쓴 것 같다. 카야가 예순여섯까지 생존한 것으로 볼 때 화려한 수상경력과 같은 명예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간과할 수 없다. 60대까지도 배우려면 충분히 배울 수 있을 가치들이 이 책에 많이 나온다. 형제애라든가, 이웃 간의 신뢰라든가. 하여튼 이 소설은 전방위적이다.


사실 나는 이 소설을 읽기 전에 결말을 알고 있었다. 친구들과 모여 자신의 인생 영화에 대해 열변을 토했을 때였다. 친구 중 한 명이 2022년 영화로 개봉된 적이 있는 이 작품을 언급했다. 범인이 사건의 증거인 조개껍데기를 소유하고 있었던 사실이 영화 후반부에 나온다고 알려 줬다. 나처럼 스포일러 당하지 않았더라도 대다수의 독자가 살인자를 예상하고 소설을 읽었을 수 있다. 추측이 맞든 틀리든 소설의 흡인력은 대단하다. 카야의 심장이 터질 때는 내 가슴도 울렁거렸고, 체이스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카야의 신세가 가여울 때는 한없이 가여웠다. 후반부가 법정에서의 내용들로 주로 채워진 것을 감안하면, 어쩌면 예비 법조인들에게도 이 책은 필독서가 되어야 할 것만 같다.

keyword
이전 16화사랑이 춤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