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우리도 매도자가 되길 고대하며
2025년 여러모로 굵직한 결정을 많이 하게 된 해였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인생 첫 내 집 장만이다.
지금 전세로 있는 집의 만기 몇 달 전부터 남편을 끌고 집을 보러 다녔다.
처음 집을 보러 갔을 때는 패딩으로 몸을 꽁꽁 싸맬 정도로 추운 날씨였는데,
어느새 반팔 차림의 여름이 되었다.
부동산과 관련된 유튜브도 이것 저것 보고, 책도 좀 뒤적여 보고,
부동산 어플과 인터넷 서칭을 총동원 하기도 하고,
남편과 매일 저녁을 먹으면서 어떤 집을 사야할지 한참을 (답이 없는) 토킹하기도 했다.
요새 워낙 부동산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에 비하면 우리는 부린이 레벨이다.
그래도 집을 계속 보러다니고, 자잘한 지식을 주워넣다보니 꽤 경험치가 오른 느낌이었다.
위치는 두 군데 정도로 정해놓고, 그 안에서 여러 아파트들을 대조군으로 뒀다.
각 아파트 별로 우리가 생각하는 적정 가격을 정해놓고, 그에 맞으면 매수하자 했다.
하지만 아파트 가격은 우리의 예상과 그럴싸한 계획을 얄밉게 피해간다.
괜찮은 곳 하나를 발견하여 네고를 하다가 중간에 운 나쁘게 얼그러지기도 하고,
조금 더 타이밍을 기다려보자 했다가 매물들이 한꺼번에 쑥 빠지기도 하고,
용기내어 마음을 먹고 예산을 더 올려보자! 하고선 가보면 가격이 같이 올라가있고,
여러모로 마음이 요동치는 요 몇 달 간이었다.
A는 신축이라 좋지만, 동네가 좀 아쉬움
B는 준신축이지만 우리 예산에 안정적으로 들어옴
C는 거의 신축이고, 동네도 제일 좋고, 그러나 비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택지의 장단점이 각기 달라서 어떤 기준으로 결정해야 할 지도 어려웠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핸드폰에 관심 매물단지 알람이 울려댄다.
시간이 속절없이 흐르니, 이렇게 알림 설정해놓는 것이 의미있을까? 라는 허무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던 중 이번 주 초에 새로운 매물들이 올라왔다.
가격 조정이 가능하다면 우리 예산에 들어올 법한 물건들이다.
지금 타이밍에 최대한 빨리 봐야겠다 라는 생각에 남편과 7개월 딸래미를 데리고 집을 보기로 했다.
애기 밥 시간을 계산하여 그에 맞춰 집을 볼 수 있도록 압축적으로 스케쥴을 만들었다.
그 빡빡한 스케쥴을 소화하기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줄 알았는데, 예상 외로 재밌고 뿌듯하다.
울 딸래미가 복덩이인지 보는 내내 날씨도 좋았고,
남편과 나 둘만 다닐 때보다, 이상하게 부동산 사장님과 집주인과의 스몰톡 분위기도 상냥하다.
우리 셋이 다 같이 살 집을 찾는 줄 알았는지 (낮잠도 못 자는 상황이었는데) 딸이 한번을 울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가계약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우선 한 단계 통과한 우리 가족을 쓰담쓰담 해주고 싶다. 고생했어.)
이번 경험을 통해서 느낀 점은 (철저히 실거주 목적에서)
1) 집을 고르는 과정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심리적인 요소가 아주 크게 작용하네?
각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다르기에, 같은 집이라도 호불호가 크게 나뉘는게 신기했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객관적으로) 입지가 좋은 집의 기준이 있겠지만
나에겐 너무 매력적이지만 누군가에겐 사고 싶지 않은 집일 수 있다는 점이다.
한가지 예로, 남편은 화장실 2개의 존재가 매우 중요하다.
나는 화장실 개수는 상관없지만 집의 밝기가 중요하다.
2) 생각보다 타이밍, 운이 중요하구나
물론 기본적으로 계속 가격 흐름을 봐온 사람이 그 기회를 잡는 것이겠지만
이론을 알고 계획을 세워도 외부변수가 많아서 어느 정도 운 좋게 타이밍이 맞아야 되겠다 싶다.
그래서 결론은 특정 집 하나에 집착하지 말고, 놓쳤다고 너무 억울해하지도 말고,
그냥 (마음을 좀 비우고) 때를 기다려야겠구나 싶다.
3) 예산/가격보다도 내가 얼마정도로 이 집의 가치를 매기는지가 포인트
A 집은 예산에 들어오고 안정적으로 대출금을 갚아 나갈 수 있고
B 집은 예산을 넘어선 가격이지만 대출금을 기꺼이 갚아 나가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
남편과 이 얘기를 하면서 둘이 많이 웃었다.
그러니까 이상하게 대출금을 더 비싸게 갚아 나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집이라면! 좀 더 고생하면서 살만하지 않아? 라는 욕심이 우리의 마음에 존재하구나 깨달았다.
우리 가족 나름 장기 프로젝트 "생애최초 집 마련"을 진행하면서 부동산을 많이 배우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남편과 내 자신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된 시간이었다.
같이 돈을 모으는 재미, 서로 원하는 니즈를 표현하고 절충해가는 과정,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 라고 둘이 머리 맞대고 우리 가족의 전략/계획을 그려갔던 시간,
이런 요소들이 좋았다.
그 때 그 시간 속에서는 앞으로 어떻게 하냐고 징징대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했지만
밤에 잠들기 전 이불 속에 들어가 누우면.. 우리 좀 멋진걸? 하면서 씩 미소가 지어졌다.
언젠가 우리가 매도자 되는 날을 꿈꾸며 이번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