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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보너부리 May 02. 2023

내 글의 최종 독자

<엄마, 이제 작가다>

열한 살 때 돌아가신 아빠를 여전히 사랑한다. 아빠의 마지막 나이와 가까워지면서 아빠를 많이 떠올리게 된다. 다시 만난다면 우리를 두고 떠나며 괴로웠을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싶다. 매일 정신없는 일상이라고 불평하지만, 아빠는 우리와 함께 하는 이런 일상을 간절하게 원하지 않았을까?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지 못하고 떠나는 마음은 어떨까?


눈을 감아도 아빠의 얼굴은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다. 아빠의 목소리도 함께 했던 기억들도, 그 자체는 희미하다. 하지만 주로 원망의 대상이자, 때로는 추억의 대상으로 아빠는 늘 우리 곁에 있다. 딸들을 사랑한 아빠로, 술을 좋아하는 한량 아저씨로, 꿈에 나타나 복권 번호도 알려주지 않는 할아버지 귀신으로, 돌아가신 지 딱 30년이 된 지금도 가족들의 대화 속에서 아빠는 함께이다.


아빠에게 당신은 우리 삶에서 그리 멀리 있지는 않았다고 전할 수 있는 날이 올까? 훌륭한 어른은 아니더라도, 당신이 만들어 준 추억과 이야깃거리 덕분에 우리 가족은 늘 가까웠으니 그걸로 되었다고.


끝까지 내 곁에서 지켜줄 것이라 생각했던 대상이 갑자기 사라졌을 때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수만 번을 계획해도 삶은 나를 예상치 못한 곳에 던져 놓는다. 나와의 이별도 언젠가는 그렇게 다가올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매일 죽음을 각오하고 살아간다. 그럼에도 사람은 본인이 누리지 못한 것을 간절히 바라나 보다. 이들의 인생에서 내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 참 두렵다. 딱 한 가지 이기적일 수 있다면, 아이들의 삶에 오래오래 머물러 주고 싶다. 


아이들의 삶에 오래 함께 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리고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함께 한 추억도, 아이들을 웃게 해 줄 이야깃거리도 조금 더 남겨 두고 싶다.


일기를 블로그에 몇 편 올렸다. 책을 모으는 것은 좋아하지만, 바쁜 일상과 피곤함을 핑계로 쌓아 놓기만 했다. 온라인 강의를 듣고 글쓰기를 몇 번 시도했지만, 지속하기가 어려웠다.


내 글을 타인이 본다는 것이 정말 부끄럽다. 대단하고 멋진 글을 쓰는 작가가 되리라는 기대는 아예 하지 않는다. 단지 꾸준히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고민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스스로 칼을 채운다고 생각하고, 브런치 작가를 신청했다.





내 글의 최종 독자는 아이들이지 않을까 싶다.
엄마의 글이 아이들에게 삶의 그늘막이 되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아이들이 삶의 어려움과 맞서야 할 때 쉽게 꺼내고 기댈 수 있는, 마음을 단단하게 지탱해 주는 무언가가 있었으면 한다.  
떠난 뒤에도 아이들이 원할 때마다 ‘잘 살고 있다.’ 응원하고, ‘서로를 보살피라.’는 잔소리를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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