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눈 떠보니 모든게 갖춰져있었다

by 느뇽

보증금 300 / 월세 24. 약 8평의 사무실.

이전에 여기를 사용하신 쌤이 10년 넘게 쓰셔서 월세를 안올리셨는데, 감사하게도 그 월세 그대로 계약하게 되었습니다. 가격만 들으면 거의 무너져가는 상가일 것 같지만, 집 값 비싸기로 유명한 동네의 시내 중심 상가건물 3층입니다. 정말 행운이 따로 없죠 !


매달 40만원 정도는, 학생 1명만 받아도 충분히 충당 가능하니까 부담 없이 계약을 했고,

괜히 부모님께서 걱정하실까봐, 그리고 어차피 학원 차리는게 아니라 개인 사무실 겸 과외 몇명 하는거니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워낙 믿는 선생님께 넘겨받는 사무실이라 사기 당할 걱정도 없었고, 처음에는 학생 2-3명만 더 모집해서 1:2 과외 정도 해볼 생각이었습니다.


뭐든 열심히 해두면 언젠가는 쓰일 때가 온다고, 1월 쯤 학원 오픈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해둔 것이 하나씩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맘카페에 올린 홍보글을 보고 생각보다 많은 상담 문의가 왔습니다....


지금부터 상상치 못할만큼 빠른 전개로 흘러갑니다. 잘 따라오실 수 있죠?

이 모든 것이 약 10일 사이에 일어납니다.


제 블로그 링크와 함께 홍보 글을 올리자마자 5명의 학생이 모집되었습니다. 아직 8월까지는 계약상 제 공간이 아니었기에 학생들 집이나 외부 카페에서 상담을 진행했습니다. 상담한 학생들 모두 9월부터 제 공간으로 수업을 들으러 온다더군요.


순간 멍했습니다.


일이 왜 이렇게 되고 있지? 이제 어떻게 하지?

정말 가볍게 몇명 과외 해보려고 한건데. 일단 모집 되었으니까 해야지 뭐.


별의 별 생각들이 다 스쳐갔습니다.


더 이상 숨겨봤자 곧 들통이 날 것 같아서 가족들에게 말을 했습니다.


너무 싸고 괜찮은 공간이 생겨서 계약을 했고 학생을 모집했는데 벌써 5명이 온다고 했다.

아무래도 셀프 인테리어를 좀 해야할 것 같다.

마치 순항을 탄 배에 돛이 달린 것처럼 세상 모든 것이 절 원장으로 만들기 위해 흘러갔습니다.

물론 저는 아직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난 별로 안하고 싶은데......." 이 생각을 매일 했었죠.


저에게 학원을 넘겨주신 선생님께서 정수기와 책상, 의자, 책꽃이, 냉장고, 전자레인지 모두 주고 가셔서 당장 학원으로 운영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갖춰져 있었고, 마침 외숙모께서 새 프린터기가 생겼는데 쓸 곳이 없어서 고민중이었는데 딱이라며 프린터기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친구가 도와주어서 벽에 페인트 칠을 새로 하게 되었고, 아빠가 바닥에 장판을 깔끔하게 교체해주셨습니다. 동생이 간판을 만들어주어서 핸드메이드 간판도 생겼습니다.


말 그대로 눈 떠보니 학원이 뿅 탄생해있었고, 학생도 생겼고, 전 이제 빼도 박도 못하게 도망도 못가고 여기서 수업을 해야하게 생긴거죠.


제 기분이요? 절망 그 자체였죠.


내가 그렇게 수학 가르치기 싫어서 수학 학원 근처에도 안가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수학 교습소를 차리게 된걸까, 이게 진정 내 길이 맞을까 이런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번 했습니다.


2024년 8월 19일 상가를 계약했고, 약 10일간 셀프 인테리어 끝에

2024년 9월 2일 월요일, 저는 수학 교습소를 오픈하고 첫 수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전 수학 교습소 원장이 되었습니다.



장판 교체중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04화덜컥, 상가를 계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