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뿔도 단김에 뽑는다고 친구와 여행을 다녀온 후 저는 바로 다음날 스피치 학원을 등록했습니다.
문제는, 그 당시 수학학원에서 강사로 일을 하고 있던터라 일을 그만둬야만 학원을 다닐 수 있었는데 돈을 벌어야하는 상황인지라 새로 일을 구해야만 했습니다.
그때 생각나는건 '수학과외를 3-4명만 하면 충분하겠다' 였습니다. 학원과 달리 과외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일을 할 수 있고, 학원보다 훨씬 적게 일하고 많이 벌 수 있으니 딱이겠다 싶었습니다. 문제는 당장 과외 3-4명을 구하는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거죠.
제가 지난달 수학학원을 오픈하려고 블로그에 열심히 써둔 글이 이렇게 효자 노릇을 할지 누가 알았을까요? 맘카페에 제 블로그와 함께 소개글을 올리자마자 과외문의가 빗발쳤습니다. 그렇게 1-2주만에 과외 학생 3명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뭐든 열심히 해두면 언젠가는 쓰인다는 말이 진짜였습니다.
마치 순항하는 배처럼 모든 것이 계획대로 착착 순조롭게 흘러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세상이 절 도와준다고 느꼈죠. 하하
뭘 하든 잘 되겠구나 하는 자신감과 함께 저는 2024년 2월부터 5월까지, 4개월간 주2회 스피치 학원을 강남까지 다니게 되었습니다.
스피치의 기본을 알려주는 수업과 함께 뉴스 아나운서 / 엠씨 / 스포츠 아나운서 / 리포터 / 내레이션 / 강사 등등 각 분야의 말하는 직업을 모두 경험하게 해주는 과정을 수강했고,
자기소개 강의, 이미지 컨설팅 등등 강사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중 가장 흥미로웠던 수업은 < 1분 자기소개 영상 > 을 만드는 수업이었고,
제게 가장 지루했던 수업은 뉴스 리딩, 내레이션 수업이었습니다.
대본을 리딩할 때 내가 직접 느끼는 감정이 아니더라도 그 대본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감정'을 생생하게 내 말에 담아 전달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직접 겪지 않은 일을 생생히 내 일 처럼 전달하는 것에 큰 재주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에는 큰 흥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특히 누군가가 적어둔 대본을 그대로 읽는 행위에는 도무지 매력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대본을 보고 그냥 읽는 거라면 AI가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사람이 절대 흉내낼 수 없는 나만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을 느껴가는 수업들이었습니다.
자기소개 1분 멘트는 밤을 새서라도 준비하고, 과외를 하러 다니는 길에서도 혼자 중얼거릴만큼 열심히 하면서도 뉴스 리딩 연습은 지독히도 안하는 절 보면서 제 관심분야를 확실히 알게되었네요.
단지 제 꿈이 <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일 >인줄 알았는데, 진짜 제가 하고 싶은 일의 '본질'은 다른 사람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닌 < 내가 배운 것을 전달하는 일 >에 더 가까운 것이더라구요.
전 '리딩'보다는 '교육'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을, 이 학원을 다니면서 하나씩 직접 해보지 않았더라면 절대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역시 사람은 뭐든 직접해봐야 아는 것 같습니다.
전 4개월의 과정 끝에 자연인에서 탈출하기, 그리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방향성 정하기, 이 두 가지의 목표를 모두 이뤘습니다. 덤으로 주변 친구들에게 예뻐졌다, 말투가 완전 바뀌었다, 다른 사람같다 등등 많은 칭찬을 들었습니다.
이 정도면 돈이 아깝지 않을만큼 아주 만족스러운 4개월이었네요.
하지만, 학원 과정이 끝난 후 이제 저는 홀로 제 꿈을 향해 걸어가야했습니다.
그동안 학원에 다닐 때에는 절 도와주는 선생님도, 매 시간 받는 피드백도, 같은 꿈을 향해 달려가는 반 친구들도 있어서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안정감이 있었는데, 이젠 정말 저 혼자 개척해야할 일만 남았더라구요. 생각보다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학원을 다니면서 안정감을 느끼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모든 것이 순탄하게 흘러왔던 것처럼, 이 길이 내 길이라면 앞으로의 길도 잘 흘러갈거라는 믿음으로 조바심 내지 않고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것말고는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학원 다니기 전과 크게 다르지 않게 매일 운동하고 책 읽고 블로그에 글을 쓰고 과외를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