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 같았던 20분

by 은색연필

열 살 무렵이었나. 외가 제사에 아빠와 단둘이 갔던 날이 있다. 부모님은 한 동네서 나고 자랐다. 그 덕에 외가에서 친가까지는 어린 내 걸음으로도 20분 남짓이었다.


자정에 시작한 제사가 끝나고도, 아빠는 자리에서 일어날 기색이 없었다. 향 냄새와 전 냄새, 술 냄새가 어지러이 섞인 공기 속에서 졸음이 밀려왔다. 눈꺼풀이 무거웠다. 나는 몹시 친가로 가고 싶었다. 외할머니 집에서 잠을 자 본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만 가자고 아빠를 재촉했다. 아빠는 그냥 여기서 자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술잔을 주고받으며 아빠의 얼굴은 점점 빨갛게 익어만 갔다.


밤의 시골길이 어떤지 아무 생각이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 나는 겁도 없이 혼자 길을 나섰다. 한달음에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으르렁. 캉캉."


당시엔 개를 묶어두지 않는 일이 흔했다. 어느 집에서 개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동시에 동네 모든 개가 약속이라도 한 듯 한꺼번에 짖어대기 시작했다. 시커먼 그림자들이 코앞까지 달려와 조그맣고 혼자인 아이를 향해 맹렬히 짖어댔다.


온몸에 털들이 모두 뾰족하게 곤두섰다. 시골의 밤공기는 개들과 합세해 내 목덜미를 서늘하게 잡아챘다.


멀뚱히 떠 있는 달빛만이 유일한 길잡이였다.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뛰면 안 돼. 뛰면 안 돼. 절대로 뛰면 안 돼.'


뛰면 개가 달려든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었던 모양이다. 작은 여자아이 하나쯤 여러 마리 개가 순식간에 해치워버릴 것만 같았다. 아무도 모르게.


걷는 법을 잊지 않으려 애썼다. 벌벌 떨리는 다리를 한 걸음씩 움직일 때마다 사나운 송곳니가 내 다리를 파고들 것만 같았다. 숨을 참았다.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눈썹에 힘을 주었다.


영원할 것 같던 어두운 길이 끝나고, 마침내.


"으앙~~~ 할머니~~~ 할머니~~~"


익숙한 친가 마당에 들어서자, 참았던 울음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동네 개들이 다 들으라는 듯 더 큰소리로 울었다. 나도 내 편이 있다고.


안방에 불이 켜지고, 잠이 깬 할머니가 황급히 문을 열었다. 놀란 할머니 눈이 두 배는 커졌다.


"아이고~ 세상에! 이 밤에 너 혼자 어떻게 왔냐?"


나는 곧장 할머니 품으로 뛰어들었다. 따뜻한 온기가 하얗게 질린 얼굴을 서서히 녹여내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서야 귓가를 때리던 심장박동 소리가 잔잔해졌다. 그제야 익숙한 할머니 냄새가 났다. 이불의 감촉도 살아났다. 스르르 잠으로 빠져들었다.


어른이 된 후에도 가끔, 깜깜한 밤을 만날 때가 있다. 도망치고 싶어 심장이 쿵쾅거릴 때면, 나는 자꾸 그 밤으로 돌아간다.


뛰지 않았다. 열 살짜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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