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과 비하인드 스토리 (2)
어느 해였다. 그해는 내가 단비를 낳고 일 년 육 개월이 지나 단비를 서울 아빠의 집에 보내고 나서였다.
매일 밤 눈물로 밤을 지새우던 나를 불러낸 것은 친구 석천이었다.
석천이는 나를 피시방으로 데리고 가서 그 당시 세이클럽이라는 사이트에 가입을 시켰다.
그때 가입한 내 아이디가 danbi16이었고, 그 아이디가 내 평생 아이디가 되었다.
석천이는 내가 여고시절 문예부 부원으로 활동할 때 알게 된 대구 협성고등학교 문예부 부원이었다.
뭔가 나에게 새로운 재미를 알려주고 싶었던 석천이의 권유로 세이클럽에 가입한 나는 그곳에 있는
문학 동아리 모임에 가입하여 활동을 하였다.
밤새 집에서 컴퓨터로 글을 쓰던 내가 꼴 보기 싫었던 친정아빠는 나보고 컴퓨터 들고나가라고 했고
그 말에 욱해서 집을 나온 나는 갈 곳이 없어서 친정집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차박을 했는데
동생이 전화가 왔다.
"언니야. 아빠가 동네 쪽팔리니까 주차장에서 자지 말고 방 얻어서 나가라고 한다. 내가 방하나 얻어줄까?"
그리해서 얻게 된 월세방.
그 월세방은 대구 대명동 앞산 순환도로 인근에 자리하고 있었다.
다행히 집의 출입구가 주인집과 달리 있는 작은 쪽방이었다.
방 두 개 작은 욕실 하나. 그리고 쪽문을 열면 있는 길쭉한 주방.
하나의 방은 침대만 있었고, 들어가면 있는 방 하나에는 컴퓨터를 두고 늘 글을 썼다.
그 당시 내가 쓰던 글이 뭐 대단한 글도 아니었다. 전문 작가도 아니었기에
어찌 보면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일 정도였고, 그 당시 나의 직업은 요리사였다.
시집을 출판하긴 했으나 시인이 밥을 먹여 주는 것도 아니었으니. 정확하게 직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요리사였다. 지금이야 말이 좋아 요리사, 혹은 셰프라고 하지만 쉽게 말하면 그냥 주방장.
다행스럽게도 그 집주인인 노부부는 너무나 사람 좋은 분들이었다.
단아하고 조용해 보이는 육십 대 할머니는 늘 자신의 남편을 지칭할 때
'우리 선생님'이라고 말씀하셨다. 알고 보니 두 분은 모두 전직 교사였다.
할머니는 가정선생님이었고, 할아버지는 영어 선생님이셨다.
그리고 두 분은 늘 믿음 강하신 분인지라, 내가 월세를 내기 위하 주인집에 봉투를 들고 갈 때마다
교회에 다녀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꽤 지루하였지만 너무나 좋은 인상으로 하시는 전도라 그저 고개만 끄덕끄덕 거리고 나오기가 일쑤였고
몇 달이 지나고 나서부터는 계좌로 송금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밤새 글을 쓰며 카페 생활을 하던 나.
그리고 지쳐 쓰러져 잠을 자고 일어나면 출근하기 바빴던 그때.
집 보증금을 내준 내 동생은 마치 그곳이 자기 집인 양. 술 먹고 들어와 잠을 자기 일쑤였는데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침실에서 자고 있는데 그날따라 나도 침대에서 잠을 자고 싶었다.
동생 옆에 가서 잠을 자고 있는 아침 8시. 이상한 욕설이 내 귀에 들어왔다.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설이 오갔다.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이 소리는 옆방이자 주인집에서 들리는 소리인데. 그리고 그 단아하고 조용하신 할머니의 목소리인데
너무나 놀라서 잠이 깬 내가 동생을 흔들어 깨웠다.
"야.. 이거 무슨 소리고?"
그러자 동생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언니야. 신경 꺼라. 원래 아침마다 저런다. 요즘 딸내미 치운다고 맨날 싸움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욕이 참 찰지다 아이가!"
늘 작업실 방에서 잠을 자던 나는 아침마다 그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는데
간간히 와서 내 침실에서 잠을 자던 동생에게는 익숙한 소리였던 것이다.
순간 웃음이 났다.
우리 선생님, 우리 선생님, 하시던 그 할머니가 저런 욕을 한다고?
이 발칙한 할머니를 보았나. 할아버지의 고성방가도 만만치 않았다.
십 원짜리와 개돼지가 나오는 그 찰진 욕설을 듣고 나는 인간의 이중성이 어떤 건지 첨으로 느꼈다.
그리고 재미있었다.
이 신박한 경험이 나에게 연극[집도 절도]을 집필하게 했다.
집도 절도는 집도 절도 없는 노인네가 집을 가지고 젊은 세입자에게 사기를 치는 이야기이다.
2006년 대구 시립극단에서 젊은 연출가 작가전 삼인삼색의 작품으로 출품하였고
그 당시 꽤 쟁쟁한 작가와 연출가들과 경합을 펼쳤는데 당당히 흥행에 1위 했었던 작품이었다.
지역 신문이지만 대구 매일신문 1면이 문화로 도배되었고, 기사 내용은 오분에 한 번씩 웃음이 나오는 코미디극이라는 칭찬일색.
사실 이 작품을 쓰게 된 배경은 집주인의 발칙한 이중성이었지만. 나로 하여금 코미디극을 쓰게 된 배경은
이 작품을 집필하기 전 [라이어]란 작품을 보고 나서였다.
지방에서 살던 내가, 연극에 관심 없었던 내가 극작가로 데뷔하고부터 연극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보게 된 작품 [라이어] 얼마나 웃으면서 봤는지 나도 이런 코미디 극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서부터 이 작품이 기획되었다.
그리고 라이어란 작품이 내게 또 다른 인연으로 다가오게 될지는 그때 당시에는 알 수 없었다.
인생은 이렇게 재미있다.
어릴 때 본 윤석화의 목소리란 연극을 보고 나서 나도 연극배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었는데
나는 극작가가 되었고. 그리고 연극 작품의 배우로 출연도 하게 되었고.
어느 날 살게 된 집에서의 일화가 내 작품으로 탄생되기도 하고
그래서 나에게는 머릿속의 그 어떤 창작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일상이 되었다.
극의 소재는 언제나 내 삶 속에 있었던 것이다.
집도 절도처럼.
그리고 이 집도 절도는 내가 서울 대학로로 오게 되었을 때 내게 또 다른 많은 사연들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