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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가는 길

진천 가는 길

왕나경


작은 딸이 첫아이를 낳았다.

어여쁜 공주님을 만나러 나는 충북 진천으로 향했다. 휴가를 겸한 첫 방문. 마음은 어느새 출렁이는 바다처럼 설렘으로 가득했다.


엄마는 언제나 엄마다.

밑반찬을 준비하고, 쇠고기 미역국을 정성껏 끓였다. 하루 전날 얼려 두었다가 아이스박스에 차곡차곡 담아 챙겼다.

광양에서 순천 방향으로 남해고속도로에 올랐다.

하늘은 높고 바람은 뜨거웠지만, 우리는 여행자의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남원 방향 나들목을 지나며 딸을 만나러, 아니 손녀를 마주하러 가는 길은 그저 설레고 행복했다.

고속도로 곳곳, 새로운 다리들이 한창 공사 중이었다.

어디로 이어질까. 누구의 삶과 삶을 연결할까.

삶이란 길도 늘 공사 중인 도로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헐고, 다시 짓고, 또 이어지며 조금씩 나아가는 것.


벌곡 휴게소에 들러 잠시 숨을 골랐다.

익산 미륵사지 휴게소 벽면에 그려진 넝쿨 벽화가 눈에 들어왔다.

햇살은 정점에서 세상을 끌어안고 있었고, 우리는 서울 방향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푸르른 하늘 아래, 도로 위의 온도는 살을 에는 듯했지만 지치지 않았다.

타이어도, 차도, 햇빛도 다 고맙기만 했다.


신탄진 휴게소 표지가 나타나고, 서울·대전 갈림길에서 우리는 신탄진 방향을 따라 직진했다.

호남에서 경부, 다시 중부고속도로로 갈아타며 도로는 끊임없이 우리를 진천으로 이끌었다.

강서, 서청주, 그리고 마지막 오창 휴게소를 지나 드디어 진천 IC.

작은 딸이 결혼한 후 처음으로 찾아가는 그곳.

충북 진천, 꽃동네. 혁신도시. 그 이름만으로도 설렘이 가득했다.


지하주차장에 들어섰지만 낯선 구조에 15분쯤 헤맸다.

다시 지하주차장을 나와 딸아이가 사는 동호수를 찾았다.

주차장 입구에는 차들이 길게 줄지어 있었다.

넓은 주차장을 두고, 입구에 차를 주차해둔 모습이었다.

충청도의 시간은 그렇게도 유유하다.

딸이 마중 나오지 않았다면 우리도 입구에 주차를 했을지도 모른다.


딸의 집은 반듯했다.

단정한 살림살이, 정갈한 방안.

그리고 그 안에 고요히 잠든 아이.

태명이 찰떡이었던 손녀딸, 이제는 안이솔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아기.

요람 속에서 인형처럼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 작고 여린 숨결에 눈물이 났다.

너무도 예쁘고, 너무도 귀하다.


얼마 만에 안아보는 아이인가.

사랑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충만한 순간.

이솔아, 고맙다. 이 세상에 와줘서.

할미의 품이 네게 따뜻했으면 좋겠다.


이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생각하니

문득, 나도 그렇게 나이 들어가겠구나.

어느 날, 나도 우리 친정엄마처럼 은빛 머리로 뒤돌아서리라.

그 시간마저도 감사히, 겸허히 받아들이리라.


무더운 여름도 곧 지나가리니,

가을은 이미 창문 너머에 와 있다.

삶이란 계절도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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