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다시 걷기까지
왕나경
무릎 통증이 시작된 뒤로 나는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며 진단을 받았다.
걷는 일이 불편해지자 소문난 곳들을 찾아다녔고, 병원마다 다시 엑스레이를 찍고 다시 검사를 받아야 했다.
무릎이 퉁퉁 부어오를 때면 차가운 주사액이 관절 안쪽으로 스며들었고, 바늘 끝에서 퍼지는 싸늘함은 내 하루의 무게를 그대로 말해주는 듯했다.
며칠은 견딜 만했지만 통증은 숨 고르듯 자주 찾아왔다.
결국 MRI를 찍었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이주일 분량의 약만 처방했다.
약효가 돌면 잠시 통증이 누그러지는 듯했지만 곧 다시 붓고 아파왔다.
이것이 치료가 아니라 통증을 잠시 눌러두는 일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치료로 이름난 병원들을 더 찾아다녔고, 마침내 “수술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들었다.
줄기세포, 반관절, 온관절…
여러 수술법이 차례로 설명되었지만 귀에는 빗물처럼 스쳐 지나가기만 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창밖의 회색빛 하늘을 바라보며 문득 마음이 쓸쓸해졌다.
몸을 아끼지 않고 평생을 성실히 살아온 것, 몇 차례 크게 넘어지며 받아낸 충격들…
그 모든 시간이 지금의 내 몸을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늘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하루를 살아내고 싶었다.
그 균형을 잡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풍족하진 않아도 모자람 없이 살아왔다.
무엇이든 마음을 다해 했고, 부족한 현실은 비움으로 견뎌냈다.
그 과정에서 얻은 작은 깨달음과 평온이 나를 행복한 사람이라 믿게 했다.
그런 내가 지금, 내일의 수술을 앞두고 있다.
두려움, 걱정,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작은 기대감까지 마음속에서 포개져 흔들린다.
‘다시 걸을 수 있다’는 희망 하나가 저 먼 불빛처럼 가슴 깊은 곳을 환하게 비춘다.
아무렇지 않게 걷던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새삼 깨닫는다.
어제 새벽이었다.
잠에서 막 깨어난 순간,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듯했다.
사실은 방이 돈 것이 아니라 내 머릿속 균형이 무너진 것이었지만, 눈앞이 흔들리자 본능처럼 “엄마야!” 하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곧 간호사 선생님이 달려왔다.
스탠드 불빛이 흰 벽에 길게 번졌고, 그 빛 아래서 내 심장은 눈발처럼 싸르르 녹아내리는 듯 아렸다.
수술을 앞둔 예민한 마음이 새벽의 고요 속에서 몸을 흔든 것이리라.
창문을 조금 열자 서늘한 새벽 공기가 코끝에 닿았다.
나는 더 이상 잠을 이루지 못한 채 하얗게 아침을 맞았다.
멀리 복도에서는 푸드득, 청소 도구가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곧 아침밥이 들어올 시간이다.
그 일상적인 순간조차 오늘은 낯설었다.
수술 후 다시 걷게 된다면—
땅을 딛는 그 작은 감각 하나하나가 얼마나 감사한 일일까.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돌길의 거칠음, 바람이 스치는 소리,
걷다 문득 느껴지는 공기의 맛까지도
모두 처음처럼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까.
나는 다시 걷고 싶다.
가고 싶은 길도, 만나야 할 사람도,
해야 할 일이 아직도 많다.
예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두 발로 온전히 나를 지탱하며 하루를 걷고 싶다.
그 소소한 기쁨을 되찾기 위해
나는 기도하며 내일을 받아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