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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인베이글 Oct 11. 2019

운동회, 너무 재미있잖아~

이렇게까지 가슴이 뛸 지 몰랐다. 하마터면 터지는 줄. 내 심장이 공연 난타의 북이 된 것 마냥 둥둥둥둥둥 뜀박질을 했다.


오늘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의 운동회였다. 첫째는 5학년, 둘째는 1학년. 학교에서는 격년으로 운동회를 진행한다. 한 해는 운동회, 한 해는 예술제. 2년에 한 번 열리다보니 학부모들의 참여율도 높다.


1부는 저학년 위주로 꾸려졌다. 둘째는 밤톨 같은 머리의 남자애와 짝을 이뤄 한복을 입고 꼭둑각시 춤을 췄다. 1학년어떻게든 태가 난다. 작고 귀엽고 어설픈 몸. 첫번째 공연을 할 때 학부모는 멀찌감치 떨어져 관람해야 했지만 사진과 영상을 찍고 싶어하는 부모들을 위해 한 번 더 앵콜 공연을 하고 그때는 운동장 안으로까지 들어가 아이들 얼굴을 바로 앞에서 담을 수 있게 해 주었다. 1학년 때까지만 누릴 수 있는 배려. 음악에 맞춰 율동을 하는 아이를 보니 귀엽고 사랑스러운 마음 뿐이다.


공기를 넣어 빵빵한 구조물을 만들고 그 안에 있는 4개의 큰 원을 통과하며 달리기를 할 때는 너무나 조바심이 났다. 잘 해야 할텐데. 앞서 달린 아이들은 운동화가 벗겨지기도 하고 한 원에 두 명이 들어가 서로 엉키기도 했다. 기껏 원을 통과해놓고 방향감각을 잃은 듯 다시 출발선으로 달리는 아이도 있었다. 한 명이 그렇게 하니 나머지 세 명도 다같이 주루룩. 귀여운 1학년들이다.

내가 더 신났던 즐거운 운동회

마침내 우리 아이의 순서. 원 통과 지점까지는 1등으로 달렸는데 그곳을 통과한 후 야무지게 결승선까지 내달리지 못하고 쭈뼛쭈뼛하는 바람에 3등으로 골인했다. 아, 그 아쉬움이라니...표정을 감추고 연신 아이를 향해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들었다.


학부모가 참여하는 경기도 있었다. 4명이 짝을 이뤄 사다리처럼 생긴 말망말랑하고 길쭉한 물건 안으로 몸통을 넣고 저 앞에 목표지점을 돌아 오는 경기. 내 생애 그렇게 열심히, 전투적으로 달린 적이 또 있었을까 싶다. 우리 아이를 위해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는 마음. 출발점에 돌아와서도 콩닥콩닥 가슴이 계속해서 뛰었다. 아쉽게도 청군의 승리. 아이 얼굴며 연신 손을 흔들었는데 아이는 경기 결과에 실망해 울먹울먹 금방이라도 울 듯한 얼굴다.


저학년들의 경기가 끝나고 오후는 고학년의 순서였다. 첫째 아이는 계주 선수로 참여하는데 몇일 전부터 절대 오지 말라며 날카롭게 굴었다. 엄마, 아빠가 보면 긴장 돼 못 달릴 것 같다나. 아빠 보고 싶은데...하며 몇 번을 부탁해도 절대! 노! 강경했다. 그 모습을 보던 "아내는 애가 싫다잖아. 정말로. 아빠들은 애가 싫다는데 꼭 저렇게 자기 원하는 대로 한다니까. 그러다 아빠랑 딸이 멀어지는 거야"라고 잔소리를 했다.


그렇게 우리는 아이 경기를 보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나. 눈이 마주치면 사단이 날 것 같아 아이에게는 치사해서 안 본다고 해 놓고 양복을 입은 덩치 큰 남자 뒤로 가 숨죽이고 경기 볼 채비를 했다. 자식을 자식으로 부르지 못하는 이 상황이라니.

위장막이 되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침내 계주 스타트. 딸이 속한 백군이 200점 뒤지고 있었는데 마지막 순서인 계주에 할당된 점수는 201점. 이 경기만 이기면 단박에 역전을 하는 상황이었다. 관중석에서도, 아이들 무리에서도 환호가 끊이지 않았고 뜨거운 열기 속에 마침내 첫번째 선수가 내달리기 시작했다. 아, 그때부터 내 심장은 이미 통제 범위를 벗어났다. 한 선수 한 선수 바톤 터치가 끝나 마침내 딸이 달리기를 할 때는 발을 동동 구르며 안절부절 못했다. 딸은 숨도 안 쉬고(물론 쉬었겠지만 그렇게 보였다)내달려 격차가 상당했던 청군을 많이 따라잡았다. 그 모습을 숨어서 지켜봤다는 게 좀 웃기지만 여튼 딸이 그렇게 잘 달릴 지 몰랐다. 그렇게 격차는 점점 좁혀져 마지막 주자 때는 한발짝만 인코스로 더 내달리면 청군을 제칠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다. 아, 어찌나 박진감이 넘치고 가슴이 터질 듯 하던지. 인라인 스케이트 경기처럼처럼 인코스로 파고들면 될 것 같아 안으로 안으로! 하며  환호성을 질렀지만 상대편도 만만치 않았고 결국 승부를 뒤집지 못했다. 딸 아이를 보니 실망이 가득한 얼굴. 안쓰러워라. 이길 수 있었는데, 한 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아쉽다, 아쉬워 하는 심정이 잦아들지 않았다.


경기가 끝나고 내려오는 길에 평소 친하게 지내는 학부모를 만났다. 우리 첫째와 동갑인 아들이 있었는데 축구 영재인 그 아이는 6학년보다도 키가 크다. 이런저런 사업을 여러 개 운영하는 그 아이의 아버지는 평소 내가 형님이라 부르며 따르는 분. "아이고 심장 터져 죽는 줄 알았다"는 나의 말에 그 형님은 "아이고 겨우 이런 걸로 심장이 터지믄 어쩌냐~"하며 웃었다. 궁금하다. 그 형님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을까? 형님은 최근 부동산 중개소 사업도 시작했는데 몇 달 실적이 없더니 내일 모레 400억 짜리 계약한다며 홀연히 자리를 떠났다. 아, 부럽도다. 400억이라니. 중개료 3%라고 치자, 10%면 4억, 5%는 2억...둔한 셈법으로 게산을 해 보니 6000만 원. 양쪽에서 돈을 받으면 1억 2000만 원. 와 계약 한 번에 웬만한 대기업 고소득자 연봉을 가져가는 구나...저런 사람이라 아이들 운동회 쯤은 담대하게 지켜볼 수 있는 것인가.


돌아오는 길, 아내는 "저렇게 지면 아쉽고 안타까워 몇 일 속앓이를 하는데..."라고 했다. 맞아 그래.  퍼뜩 김연아의 러시아 올림픽 때가 생각났다. 누가 봐도 김연아의 금메달이었는데, 그렇게 허망하게 금메달을 뺐기다니. 나도 너무 분하고 억울한데 김연아는 너무도 차분하게 승패를 인정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그녀가 정말 '큰 사람'이구나 싶었다.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한다. 크기, 본성, 인격까지. 나 같으면 그 판정이 너무도 분해 고개를 젖고 눈물을 떨구며 분노를 삭히지 못했을 것이다.


집에 돌아올 아이들에게 오늘 잘 했다, 괜찮다, 잊어 버리자 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옆에서 무슨 말을 들 의미있게 전달 될 리도 없고, 무엇보다 그 경기를 보지 않은 걸로 해야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됐어?" 아이고 그랬어?" "속상해서 어쩌냐 ?" 연기할 일만 남았다.


p.s 여기까지 썼는데 집에 온 둘째가 그런다. "아빠 나 달리기 1등했다. 그래서 선생님이 칭찬했어". 엥? 3등한 거 다 봤는데...하고 말하려다 "맞아. 아빠도 봤어. 완전 잘했어!" 하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이 아이는 평소에도 허언증이 있고 그런 아이를 보며 아내는 "딱 당신 피"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하며 놀린다. "아빠 달리는 건 봤어" 하고 물으니 "응 잘했어. 실수할까봐 걱정했는데 잘 했어" 한다. 그렇구나. 아이도 나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봤구나. 이런 것이 가족애겠지?연차를 내고 운동회 보기를 잘했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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