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예산 삭감 / 출처 : 연합뉴스
한평생 연구에만 매달려온 과학자들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나왔다. 지난 정부가 나라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벌어진 안타까운 현실이다.
지난해에만 무려 3만 명에 가까운 연구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실업급여를 신청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예산 삭감의 후폭풍이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정부는 R&D 예산을 2023년 31조 1천억 원에서 26조 5천억 원으로, 무려 4조 6천억 원(약 15%)이나 줄였다. 정부가 내세운 공식적인 명분은 ‘과학계의 비효율적인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것이었다.
R&D 예산 삭감 / 출처 : 연합뉴스
일부 연구자들이 성과와 무관하게 예산을 나눠 갖는 소위 ‘R&D 카르텔’ 문제를 해결하고, 재정 건전성을 높이겠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허리띠를 졸라매는 동안, 이웃 나라 중국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지난해에만 무려 714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R&D에 쏟아부으며 기술 개발에 국가의 명운을 걸었다.
결국 정부의 의도와 달리, 현장에서는 꼭 필요한 연구나 중요한 국가 과제마저 하루아침에 예산이 끊기는 등 극심한 혼란이 벌어졌다. 1만 2천 개가 넘는 연구 과제가 중단되거나 규모가 줄어드는 결과를 낳았다.
R&D 예산 삭감 / 출처 : 연합뉴스
예산 삭감의 가장 큰 피해자는 다름 아닌 젊은 과학자들이었다.
22일 국회 황정아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작년 실업자 신세가 된 연구자 10명 중 7명은 이제 막 꿈을 펼치기 시작한 20~30대 청년들이었다.
대학 연구실에 지원되던 기초 연구비가 끊기면서, 교수들이 학생 연구원들의 월급을 더 이상 줄 수 없게 된 탓이다.
이에 대해 국회에서는 성급한 예산 삭감이 과학 기술계의 뿌리를 흔드는 위험한 결정이었다는 질타가 나왔다.
R&D 예산 삭감의 파장은 연구실에만 머물지 않았다. 탄탄한 담보가 없어도 좋은 기술만 있으면 사업 자금을 빌릴 수 있었던 ‘지식재산(IP) 담보대출’마저 얼어붙었다.
R&D 예산 삭감 / 출처 : 연합뉴스
이 제도는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들에게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정부 연구 과제가 줄어드니 새로운 기술이나 특허가 나올 기회도 함께 줄었고, 결국 이 자금줄마저 바짝 마르게 된 것이다.
한 해 1조 원이 넘던 대출 규모가 7천억 원대로 뚝 떨어지면서, 기술 하나만 믿고 버티던 수많은 중소기업이 위기에 내몰렸다.
뒤늦게나마 정부가 내년 예산을 역대 최대로 늘리며 수습에 나섰지만, 한번 꺾인 연구자들의 사기와 무너진 생태계를 되살리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