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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의 마지막 안식처는 어디일까?

by 이콘밍글

장기판 사라진 탑골공원,
‘역사’와 ‘쉼터’의 갈림길에 서다
하루아침에 쉼터 잃은 노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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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골공원 시설물 철거 / 출처 :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장기 두는 풍경이 사라졌다. 종로구가 공원의 역사적 가치를 복원하겠다며 장기판을 포함한 편의 시설물을 철거했기 때문이다.


‘역사성 회복’ 내세운 공원 정비 사업


종로구는 최근 ‘탑골공원 개선사업’을 본격화했다. 1919년 3월 1일, 학생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만세운동의 불을 지폈던 바로 그 장소의 역사적 의미를 되살리고, 전 세대가 찾는 시민공원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사업의 핵심 목표다.


이러한 배경에서 공원 한가운데 자리한 국보 ‘원각사지십층석탑’을 둘러싼 낡은 유리 보호각을 전면 재정비하는 계획도 추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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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골공원 시설물 철거 / 출처 : 연합뉴스


공원 내 장기판과 의자들 역시 이 정비 계획의 일환으로 철거됐다. 일부 이용객들의 음주, 흡연, 소음 문제가 끊이지 않았고, 역사 유적지의 엄숙한 분위기를 해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종로구는 탑골공원을 단순한 휴식 공간을 넘어, 역사를 기억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교육의 장으로 조성한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하루아침에 쉼터 잃은 노년층 “갈 곳 없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은 오랜 이용객인 어르신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수십 년간 이곳을 찾아 비슷한 연배의 친구들과 교류하며 시간을 보내온 이들에게 탑골공원은 단순한 공원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이곳은 고립감을 해소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중요한 사회적 연결망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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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골공원 시설물 철거 / 출처 : 연합뉴스


탑골공원을 자주 방문하던 70대 A 씨는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 나누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는데, 이제는 갈 곳이 없어졌다”며 허탈함을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대체 공간에 대한 충분한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철거를 강행한 것은 소통이 부족한 행정이었다고 지적한다.


결국 갈 곳을 잃은 노인들은 경로당이나 노인복지관으로 향할 수밖에 없지만, 이 또한 쉽지만은 않다. 노인 인구는 빠르게 증가하는데, 이들을 위한 여가 시설은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 그 배경에 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경기도의 경우 노인 1천 명당 노인여가복지시설 수는 최근 4년 사이 오히려 감소했다. 이는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어 최근 65세 이상 인구 1천만 명을 돌파한 한국의 현실과는 역행하는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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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골공원 시설물 철거 / 출처 : 연합뉴스


그나마 있는 노인복지관은 대부분 도심에 집중되어 있어 외곽 지역 노인들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문제도 심각하다.


복지관의 인기 강좌는 신청이 시작되자마자 마감되고, 수개월을 대기해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대한노인회 관계자는 경로당 설치 기준을 완화하고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탑골공원의 빈자리는 역사 보존과 시민의 삶이라는 두 가치가 어떻게 조화를 이뤄야 하는지 우리 사회에 중요한 과제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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