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에게 말을 걸던 날, 나의 첫 번째 언어가 태어났다

사라지기엔 너무 다정한 나를 위해

by 윤슬하


이유도 없는 공포.
눈앞이 흐려지는 순간들.
모든 것이 마비된 일상 속에서
살기 위해 내가 붙잡은 건
‘언어’였다.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어떤 감정이 생기면, 그 감정에 이름을 붙여보세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살아내기, 아니 버텨내는 게 전부였던 그때.
압도적인 공포 앞에서
‘언어’를 달아주라니.

그러다 아는 사람을 우연히 만났다.
아무렇지 않은 척, 인사를 했다.
그런데 내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말했다.
“내가...
많이 힘든 일이 있어서…
불안장애가 왔어.”

말하는 손끝이 떨렸다.
나는 그 사람의 소매에
내 몸무게를 살짝 실었다.
흩어지는 나를,
그 소매 하나로 겨우 붙잡듯이.

그리고 다시 말했다.
“내가 아직 말할 때 많이 불안해서...
소맷자락을 붙잡아서 미안해.”

그 사람이 말했다.
“괜찮아.”

나는 인사하고 돌아섰다.
쥐어짜듯 아픈 머리,
터질 듯한 심장을 달래며
처음으로 감정에
이름을 붙였다.

“괜찮아. 이건 불안이야.
저 친구는 나를 해치지 않아.
이건 나의 기억이 만든 착각이야.
괜찮아, 불안아. 나는 안전해.”

그렇게 나는
가방끈을 꼭 쥐고
다시 걸었다.

그게 세상과,
사람들과,
다시 이어 붙인
나의 첫 번째 언어였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15화용기 하나에 절망 열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