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을 만났을 때 어떤 이는 망설임 없이 단번에 자신이 가야할 길을 알아봅니다. 어쩌면 그건 길을 알아보는게 아니라 자신을 확고하게 믿고 있는 것이겠죠. 그러나 저는 갈림길에 설 때마다 선택에 어려움을 느낍니다. 갈림길마다 길의 끝까지 가고도 남을 시간만큼이나 고민하다 한 길을 겨우 선택하고도 갈수록 좁아지는 그 길들의 끝을 맞닥뜨리고 나서야 다음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저는 그런 답답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왜 생의 길목마다 망설이고 서성였을까요. 순간의 미숙한 판단이 주는 가혹한 자기 모멸감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이 길이 제 길인지 도무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정리하고 나아가려해도 문장 하나, 단어 하나하나가 그 판단이, 정의가 과연 상대에게도 맞는지 제게 끊임없이 되물어 옵니다. 저는 그렇게 저를 의심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골목길 어귀를 서성이고 이길 저길 정처없이 헤매이던 그 순간들, 달려가지 못해 어슬렁거린 그 골목골목에서 만난 풍경들, 멀리 도망갈 수 없어 손닿는 곳으로 달아났던 책 속의 풍경들은, 때론 사무치게 아름다웠습니다. 어두운 방, 오래된 책장 앞에 서서 바라본 세계들, 그 하나하나가 위로였고 안식이었습니다.
물론 기억에 남은 책들이 모두 고전이나 명작은 아닙니다. 어릴적 동네 서점 제일 앞에 자리잡았던 괴수대백과 류의 책들을 기억하시나요? 고질라, 울트라맨, 우주형사 갸반 등등 유행따라 바뀌던 그 격전지에 한 단락을 읽고 나면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따라 다른 페이지로 가는 책들이 한동안 자리잡았었습니다. 비디오게임이 드물던 시절 마치 게임처럼 진행되던 책이었죠. 그 중 제가 사춘기시절 무척 좋아했던, 어른들에 대한 반항기로 가득한 주인공이 나오는 책이 있었습니다. 에니메이션의 줄거리를 알고 있는 제게는 답을 알고 있는 시험지 같은 느낌의 책이었지만 다른 길을 선택했을 때, 몇 페이지의 이동 끝에 만나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결말이 꽤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몇번의 잘못된 선택이 이어지다보면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도 전에 주인공이 사고를 당해 우주를 천천히 유영하며 사라져버리죠.
이 글을 쓰기 전까지는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이런 팬픽같은 이야기도 지금의 제겐 하나의 이정표입니다. 하나의 이야기가 끝났어도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 책을 읽는 이가 만들어가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이정표. 또한 어떤 이야기든 자신만의 리듬을 가지고 있다는 이정표이기도 하죠.
이야기들은 자신만의 리듬으로 자신만의 길을 나아갑니다. 이야기가 되기까지 수많은 가능성 중에 하나의 길을 만난 것일 테지만, 그 이야기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듯 자기만의 리듬으로 끝을 향해 전진합니다. 저는 그 단호함을 부러워합니다. 책들이 가벼울수록, 그래서 더욱 거침없이 마구잡이로 나아갈수록 저는 감탄하며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들 속을 저 또한 마구잡이로 헤집고 다니며 때론 느긋한 저녁나절 배경으로 들려오는 트럼본에 녹아들듯, 때론 귀를 찢을 듯 신나게 울려대는 트럼펫 솔로에 열광하듯 읽어댔습니다.
그저 유희일 뿐인 독서, 자신이 길을 찾아가는 책들의 미로 속에서 해내야할 과제도, 읽어야할 목록도 없이 그저 헤매인 시간들. 어두운 방 한 귀퉁이에서 무턱대고 읽어대던 이야기들 중 어떤 이야기는 흘러지나가고 어떤 이야기는 선명한 자국을 남겼습니다. 몸에 새겨진 흉터들처럼, 그 이야기들은 서서히 스며들어 제 살이, 제 삶이 되었습니다.
뒤늦게 기억의 조각들을 끌어올려 여러분께 편지형식으로 글을 띄워보냅니다. 너만 헤매고 있는게 아니라고, 지금 이 자리에서 네 이야기를 해보라고 나직히 속삭이던 이야기, 외면하고 있던 그리운 얼굴을 떠올리게 만든 이야기, 위로인지도 모른채 위로받았던 이야기, 그리고 뒤늦게 제게 와닿은 이야기와 제 속에 갇혀있던 좁은 사유를 넘어 제 곁에 소중한 이들을 다시 바라보게 한 이야기들까지. 제 작은 다락방에 차곡차곡 채워져있는 책들을, 제 삶에 새겨진, 그래서 이제 마치 제 것처럼 친숙해진 이야기들을 여러분께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럼 서툴더라도, 저만의 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