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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내 Jan 23. 2022

서울 나들이

최고의 소고기 & 감동의 손 편지

 중부지방에 눈이 올 것이란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인다.
딸아이가 있는 용인에 가야 하는데
눈이 내리면 운전에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라 긴장된다.


 간단한 아침을 챙겨 먹고 가방에 짐을 싸는 모습에
미르와 아잉이는 눈치를 채고 어둡고 우울한 모습을 보인다.


이사하는 딸아이 집에 가기로 한 날부터

아내는 미르와 아잉이를 두고 떠날 것을 걱정했다.


출발하면서 단골 애견 샵에 애들을 데려가니

겁 많고 사교성이 부족한 미르는 문 앞에서 주저앉아 들어가기를 거부했다.
 억지로 애들을 맡기고 출발하는 마음이 무거운데

아들이 보낸 카톡에서 서울에 눈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다는 말을 듣고

서둘러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용인 도착 1시간 전부터 눈발이 점점 강해지더니 이천을 지나는 동안은 앞을 보기 어려울 지경이었고,

영하의 날씨에 눈이 차창에 얼어붙어 어렵게 딸아이 집에 도착했다.


 대형 오피스텔 건물 내에서 옮기는 이사라 눈과는 무관했고

부산에서 딸아이 친구들이 대부분의 짐들을 옮겨 놓아

옮긴 짐을 정리하는 정도로 이사는 마무리되었다.

 


다음날 아침 집이 바뀌었지만 동일한 구조의 원룸이라 낮 설지 않다.


 아침을 먹고 출근하는 딸아이를 보내고,

아내와 나는 이틀 휴가를 신청한 아들이 사는 용산으로 갔다.


 정리가 서툰 아들의 집은 항상 난장판이었고

그냥 보고 넘기지 못하는 아내는

청소하고 정리하려 했지만 번번하 아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아내는 2년 전 섬유 통을 심하게 앓았고

지금은 많이 치료되었지만 여전히 통증을 가지고 있다.


 아들 집 방문 전,

일을 두고 편히 있지 못하는 아내에게 냉장고만 정리하고

아들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기로 먼저 약속을 받았다.


 하지만, 베트남 음식을 배달해서 점심을 먹는 중에도 아내의 눈은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있었고

식사가 끝나자 손은 냉장고 정리로 입은 아들에 대한 잔소리로 바빠졌다.


긴 시간이 필요하고 옆에 있으면 서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아는 아들과 나는

소고기 사려 마장동으로 갔다.


양평에서 군생활을 한 나에게 마장동은 늘 거쳐 가는 곳이었다.
 휴가를 나오거나 귀대할 때에는 양평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내리는 곳이

이곳 마장동이었지만 이렇게 큰 시장이 있을 줄은 몰랐다.
 명절을 앞둔 시기라 시장 내는 많이 붐볐다.


 아들은 오랜만에 가족들과 넉넉하게 먹어야 한다며 싱싱한 소고기를 충분하게 구입했다.
 계산하는 아들을 옆 눈으로 보니 생각보다 큰 금액이었다.


싱싱한 소고기와 궁합이 맞는 레드 와인까지 곁들이니 너무 맛있고 행복한 저녁시간이었다.

싱싱한 차돌박이를 넣어 끓인 된장찌개에 갓 지은 밥까지 더 하니

조금도 부족함 없는 완벽한 저녁식사였다.

 


네 명이 좁은 원룸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은 불편함은 있지만

일상에서 벗어난 새로움이 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오손도손 앉아 커피를 마셨다.
 혼자 마시는 커피도 의미가 있지만 가족들이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마시는 커피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잔잔하게 밀려오는 행복감에 마음이 편안 해진다.


 간단한 점심을 챙겨 먹고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아내의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 아들과 백화점에 갔다.

하지만 아내는 자신의 선물 고르기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발 폭이 유난히 넓어 운동화 고르기가 항상 어려웠지만

가족들을 위해 돈을 많이 지출한 아들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저녁은 배달 초밥으로 정하고

네이추럴 와인은 아들을 위해 내가 구입했다.


 약물 후유증으로 백신 접종을 받지 못한 아내가 있어 식당 방문을 할 수 없지만

다양한 배달 음식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마지막 밤은 먼저 잠든 내가 코를 심하게 골아 가족들을 불편하게 했다.

특히 야행성인 아들은 늦은 시간까지 잠들지 못하고 고생을 했다.

 

3박 4일 동안의 서울 나들이를 마치고 6시간의 운전 후,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짐을 정리하던 아내가 작은 봉투에 든 편지를 건네주었다.


 봉투 겉면에는 ‘아빠’라 적혀 있었고

봉투 내에는 딸아이가 정성껏 쓴 손 편지가 들어 있었다.


우리 아빠 하늘만큼 사랑해’라는 표지를 보자

가슴이 먹먹해지며 눈물이 주책없이 흘러내렸다.
 1년 동안 객지에서 혼자 생활하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우리 가족이 화목하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적은

딸아이의 정성 어린 편지에 머리는 하야지고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아내와 나는 딸아이 손 편지에 서로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한참 후, 정신을 차려 남은 우리 가족 미르와 아잉이를 데리려 갔다.


 아들! 엄마, 아빠를 위해 귀한 시간 내어주고 맛있는 고기 사주어서 고마워!


 딸! 어려운 시기 잘 견디어 주어 대견스럽고 손 편지 고맙고 감동이었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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