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난민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던 예멘은 1990년, 냉전이 끝날 즈음에 통일을 이룩했다.
1978년부터 1990년까지 북 예멘을 다스리던 알리 압둘라 살레가 통일 예멘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강력한 철권통치로 반정부세력과 극단주의 집단을 힘으로 눌렸다.
그러나 살레 대통령에게 항거를 시도한 세력이 있었다.
1990년대 북부 예멘에서 탄생한 시아파 정치 무장 단체 후티다.
후티 반군은 오랫동안 정부에 불만을 품고 칼을 갈았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아랍 세계는 반미, 반외세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후티는 이러한 분위시를 타 미국과 동맹 관계에 있던 살레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2004년부터는 정부를 상대로 소규모 전쟁일 일으키며 과격한 행보를 보였다.
2010년, 튀니지에서 독재정부에 반대하는 민주화 혁명이 시작되었다.
이 혁명 물결은 중동 전체로 퍼져 나갔다.
후티 반군에게는 예멘의 독재자 살레를 끌어내고 정권을 획득할 좋은 기회였다.
결국 살레 대통령은 2011년 11월 권력 이양 안에 서명하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2012년 2월 당시 부통령이었던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에게 대통령직이 이양되었고
예멘 과도정부가 출범했다.
2014년 2월 20일, 하디 정부는 예멘을 여섯 개 주로 분할해 주별 자치권을 허용하는
연방 정부안을 공표하며 시아파에게 예멘 북부의 사다주 한 곳 만을 할당해 주었다.
시아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후티 세력은 이러한 시아파 주민의 반정부 정서를 이용해 정치적 힘을 더욱 확장했다.
후티는 계획했던 대로 전투를 벌이며 앞뒤 가리지 않고 전 예멘지역으로 돌진해 나갔다.
2014년에는 수도 사나까지 진출했고,
2015년 1월에는 무력으로 대통령 궁을 장악해 버렸다
궁지에 몰린 하디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다.
내전은 후티 반군의 쿠데타로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간단히 끝나지 않았다.
수니파 종주국 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이 끼어들었다.
이란은 후티 세력이 예멘에서 정권을 차지할 수 있도록 비공개적인 군사지원을 지속했다.
이러한 이란의 움직임은 수니파의 대표 격인 사우디아라비아에게 결코 달갑지 않았다.
사우디는 이란이 조종하는 후티가 예멘을 차지하도록 방치할 수 없었다.
2015년 사우디 정부는 아랍 연합군의 협력 하에 후티 반군을 몰아내기 위해 내전 개입을 시작했다.
2015년 3월에 시작된 내전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미 10만 명의 예멘인이 목숨을 잃었고 경제는 파탄이 나 버렸다.
현재까지 376만 명의 예멘인들이 난민신세로 전략했고,
그중 약 500명이 2018년에 제주도로 왔다.
당시 한국 사람이 난민 수용을 반대해서 이후 추가적인 입국은 중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