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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내 May 13. 2024

이탈리라 명품 이야기(6)

페라리

1898년에 모데나에서 태어난 엔초는 자동차 엔지니어이기 이전에 전설적인 자동차 경주자였다. 

기계용 철근 생산 공방의 팀장이었던 엔초의 아버지는 철과 기계에 해박했기에 1900년대 공방 옆에 자동차 수리점을 열어 함께 운영했다. 

젊은 엔초는 모데나 기술학교에서의 교육과 병행하여 여기에서 자동차의 기본을 배웠다.


1916년, 아버지가 결핵으로 죽자 엔초는 학업을 그만두고 직업전선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견인차 정비에서부터 상품 배달차, 군용 폐차 재활용품 회사 등을 전전했다. 

그러면서 당시 유럽에서 시작된 자동차 경주에 열정을 불태우게 된 그는 1919년부터 선수로 뛰기 시작했고 그다음 해에는 알파로메오 팀에 들어갔다.


1929년에는 드디어 두 명의 동업자와 함께 '스쿠데리아 페라리'를 창립한다. 

처음에는 알파로메오의 자회사로 최고급 모델을 타고 경주에 참가하는 운전사나 개인 소유자들을 보좌하는 스포츠 회사였다. 

하지만 곧 알파로메오의 경기를 전담하게 되었다.



엔초 페라리는 점점 최고 수준의 스포츠카를 직접 만들겠다는 열망에 불타다가 1938년 독립하고, 마침내 자신의 자동차 공장을 세웠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곁에서 키워온 열정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엔초 페라리는 1988년 아흔 살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스스로를 레이서라고 생각했고, 페라리의 주활동은 경기라고 여겼다. 

물론 이제는 그 의미가 희석되었지만,  원래 자동차를 생산해 팔기 시작한 이유도 경기 팀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최초의 진정한 페라리가 태어난 해는 1947년으로 본다. 
이때 엔초가 모데나 근교 마라넬로에 공장을 지어 자신의 성을 붙인 '페라리' 자동차를 최초로 출시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그의 공장에서 태어나는 차에는 그 유명한 노란 바탕에 흑마의 마크가 새겨졌다.

원래 이 흑마는 프란체스코 바라가의 상징이었다고 한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영웅적인 이탈리아 조종사로 자신의 전투기에 행운의 의미로 이 흑마 마크를 달고 다녔다. 

그가 격추한 독일 비행기에 있던 것을 자신의 상징으로 삼은 것이다. 


엔초가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하자 프란체스코의 어머니 파올리나 바라가 백작부인은 행운을 가져오도록 

이를 엔초의 차에 붙이도록 선물하였다. 

엔초는 흑마 문양 밑에 모데나 시의 색인 노란색을 바탕으로 깔았다. 

페라리의 신비로운 문장은 이렇게 해서 태어났다.
 

하지만 차체는 그랑프리 이탈리아 경주용 자동차의 상징인 빨간색 '로소 코르사'로 도색했다. 
이처럼 초기 F1 경주용 차는 국가 상징색으로 칠해졌다. 

이탈리아의 알파로메오와 마세라티, 페라리는 빨간색, 

독일의 메르세데스-벤츠는 흰색, 프랑스의 부카티는 파란색, 

영국의 로더스는 초록색 등으로, 

하지만 1960년대 이후로 자동차 경주 비용이 점점 증가하게 되자 국제 자동차 연맹은 외부의 후원을 허가하기에 이른다. 

그러다 보니 국가 상징색은 그 의미가 사라졌다. 
 

하지만 페라리는 아직도 경주모델에 국가 상징색을 고수하고 있다.

여러 가지 악재로 페라리는 1969년에 피아트에 지분의 50퍼센트를 팔았고, 엔초가 죽은 뒤에는 남은 지분 중 40퍼센트를 또 넘겨, 이제 10퍼센트만이 엔초의 아들인 피에로 페라리의 소유이다. 

 

현재 이탈리아의 슈퍼카 시장은 거대기업인 피아트가 쥐고 있다. 

마세라티도 원래 볼로냐 출신의 마세라티 형제들이 만든 차인데 피아트의 소유가 되었다. 


마세라티 일곱 형제 중 알피에리 마세라티를 중심으로 다섯 형제가 모여 1926년부터 자신들의 차를 생산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디자인에서부터 경주 운전까지 각각의 분야를 나누어 담당했다. 
 

1932년에 알피에리가 죽자 나머지 형제들이 이끌어갔는데 경주에서는 두각을 나타냈으나 경영에 약해서 여러 소유자를 전전하다 결국 피아트로 넘어가게 되었다. 

여기에 밀라노의 알파로메오까지 거대 기업 피아트의 소유가 되었다. 
 

오늘날 페라리 라인에서는 마세라티에 모터를 공급하고, 마세라티 차체 도색을 하니 과거의 경쟁자들이 이제는 한솥밥을 먹게 된 것이다.

 

이탈리아인들은 페라리를 자동차 역사에서 하나의 획을 그은 것으로 여긴다. 

페라리가 슈퍼카의 상징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은 창업자 엔초 페라리가 자동차의 정비에서 부품, 조종까지 모든 것을 경험한 장인이었기 때문이다. 

 

또 외형의 예술적 완성도는 이탈리아인들만이 가질 수 있는, 오래도록 다듬어온 조형적 감각의 극대화였다.

이들은 언제부터 기술과 미학을 조합시킨 조형감을 다듬어온 것일까? 

그것은 절대로 한순간에 기계공학과의 실험실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눈에 익어온 역사적 유적과 자연의 곡선들 인문학과 예술의 바탕 위에서만 생겨날 수 있는 감성이다.

 

출처: <장인을 생각한다.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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