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와 가면
베네치아에 가면 광장과 골목마다 널려진 가면들이 이 도시를 더욱 신비롭게 만든다.
그냥 기념품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베네치아적인 삶 자체를 담고 있는 가면 어떤 가면은 섬세하게 보석을 박은 모습이 너무도 우아해 시선을 뗄 수 없고 어떤 것은 목이 잘려 걸린 듯 슬픈 표정이다.
현대적인 얼굴도 있지만, 대부분은 18세기 이탈리아 연극에서 튀어나온 인물들이거나 중세와 르네상스를 표현한다.
마스크는 베네치아의 일부이며 베네치아의 역사다.
예부터 유럽의 희극 배우들은 가면을 썼는데 이는 곧 귀족들에게까지 유행했다.
여름에는 화장이 지워져 흘러내리는 것을 안 보이게 해 주고, 겨울에는 피부를 보호하는 역할도 했다.
서기 1000년경, 가톨릭교회는 부활절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그 전의 40일을 사순절로 정했다.
그동안 예수나 모세가 광야에서 고생한 40일을 떠올리며 일절 육식을 하지 않고 속죄의 자세로 사는 것이다. 그러나 고기를 즐기던 유럽인들에게 한 달도 넘게 절제를 강요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교회는 사순절이 오기 전에 미리 고기를 잔뜩 먹으며 환락을 즐기는 기간을 주었다.
이를 카니발, 우리말로 사육제라 한다.
그런데 누가 처음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베네치아 공화국은 그 기간 동안 마스크 쓰는 것을 의무화했다.
이 카니발은 곧 자유로운 정신을 가진 베네치아 엘리트층과 정치에 참여할 수 없었던 민중, 두 계층 모두의 열정을 사로잡았다.
모든 일상의 구속과 규율이 사라진 기간, 마치 월드컵 경기 때 온 시내의 도로를 막아 놓고 활보하고 다닐 때의 기분과 비교해 볼 수 있겠다.
이상한 점은 이런 폭발적인 자유의 기간에 오히려 민중은 선하고 평화적이었다는 것이다.
마스크를 착용한 이 축제 기간 동안에는 오히려 싸움이나 범죄가 적었다.
쌓였던 욕망이 분출되니 평소보다 살인이나 범죄가 줄어든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해서 12월 26일부터 참회의 화요일(카니발 최종일)까지 두 달 동안 도시는 온통 활기에 넘쳤다.
이 기간에는 총독이건, 신부 건, 하녀 건 모두 마스크를 썼기 때문에 사회적인 신분이 사라졌다.
계층 간의 위화감을 피하기 위해 공화국은 공식적인 행사나 카니발의 피날레 날 외에는 보석을 달지 못하게 했다.
보석을 달게 되면 신분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마스크를 쓰는 한 평민은 가면 밑에서 귀족을 조롱하고 어떤 말이건 해도 되었다.
예의범절도, 존칭도 필요 없었다.
신분을 모르므로 서로서로를 “가면 나으리”라고 불렀다.
이 기간에는 오직 평등과 자유만이 있었고, 베네치아는 하나로 통합되었다.
유일한 규칙은 좋은 시간과 웃음, 춤을 함께 즐기는 것이었다.
게임과 무도회, 행진, 수상 창 시합, 경주, 연극, 그 외에도 다양한 거리의 공연들.......
낮 동안 광장에서의 오락이 끝나면 밤에는 실내 게임과 도박을 즐겼다.
이를 리도토라 하였는데 카지노의 조상이라 할 수 있다.
가면만 쓰면 누구나 이곳을 드나들 수 있었으므로 베네치아의 모든 사회계층이 섞이는 만남의 장소였다.
판돈이 오가고 가면 밑에서는 한숨과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당연히 남녀상열지사가 빠질 수 없었다.
현대의 클럽처럼 부킹을 주선해 주는 이도 있었다.
특히 외국의 부호들이 인기다.
온갖 신분의 여자들이 마스크 아래 얼굴을 숨긴 채 이곳에 모여들었다.
추녀도 술만 좋으면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외모의 평등까지 이루어졌다.
대화와 도박, 유혹……… 귀족과 부자, 미녀와 야수, 민중 모두가 신분을 내려놓았다.
예를 들어 으스스한 고성에 희미한 달빛이 비치고, 검은 망토의 신비로운 귀족 복장을 한 남자가 수녀와 밀애를 나눈다.
하지만 귀족과 수녀는 그들이 선택한 분장일 뿐이다.
실제로 그 남자는 귀족이 아닌 푸줏간의 백정이고, 수녀는 귀족 가문의 고결한 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그 순간 자신이 쓴 가면의 인물이 되어 믿을 수 없는 며칠을 사는 것이다.
이러한 전통적인 카니발이 베네치아 가면의 수요를 불러일으켰고 지금도 베네치아에는 가면을 취급하는 상점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