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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이별

그 땐 어머니의 고통을 알지 못했습니다

by 산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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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는 김포공항에 안전하게 착륙했다.

오늘은 중요한 가격협상을 위해 사장님을 모시고, 현대자동차 본사에 들어가는 날이다.


경쟁사와는 품질이 비슷하여 가격이 결정 요인인데,

독일 본사에서 바라는 만큼 가격을 내려주지 않아 부담스러운 출장이었다.


공항을 빠져나가려는 순간, 동행했던 사장님이 방송에서 나를 찾는다는 것이었다.

공항에서 그것도 김해가 아닌 김포공항에서 내 이름이 방송에…

나는 동명이인일 것이라 확신하면서, 안내데스크로 갔다.


그런 내 추측과는 달리,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빨리 가족들과 연락해보라는 것이었다.

형님과 통화로 상황은 확인되었지만, 믿을 수 없었다.


두 번째 수술을 마치고 담당 의사는 나에게 말했다.

어머님이 돌아기 시기 전에 많이 고통스러울 것이니, 병원에 오면 마약을 처방해 주겠다고 했다.

그 후로 나의 머릿속에는 어머님은 한 동안 마약을 복용하다 고통스럽게 돌아가실 거라는

나름의 계산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님은 그 고통을 홀로 감당하셨고, 고통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이면 앉아서 밤을 지새웠고,

통증이 심하실 때는 얼음을 입에 물고 참으셨다는 사실은 어머님이 돌아가신 뒤, 아내를 통해 알았다.


어머님은 모든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참으셨고,

나는 그 고통을 알지 못했다.


공항에서 출장 서류를 넘겨주고 나는 부산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여전히 현실을 믿을 수 없었고, 집에 도착하면 어머님을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집에 도착하니 싸늘하게 식은 어머님 시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상 밖이라 눈물도 나지 않았고, 한 동안 마약 처방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말이 원망스러웠다.

임종의 순간을 같이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고, 고통을 덜어 드리지 못해 죄스러웠다.


살다가 겪은 모든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잊히고 치유된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에 대한 나의 상처는 세월이 갈수록 깊어지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아파온다.


어머님 죄송합니다.

어리석은 아들이 살기 바빠, 당시 어머님의 고통을 몰랐습니다.

용서해 주시고 편해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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