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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내 Sep 02. 2024

대한민국 부동산 투자의 역사

인구감소, 저성장 시대를 대비할 때

지난 50여 년간 부동산 이슈는 전 국민이 이목을 집중하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부동산, 특히 아파트를 통해 돈을 벌겠다는 전국민적 열망은 지금도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향후 부동산 시장을 알고 싶다면 폭풍처럼 전개되었던 과거 우리나라 부동산 역사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어떻게 연평균 20%의 투자수익률이 날 수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한국은 지난 수십 년간 고도의 경제 성장을 기록했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부동산 수요가 증가했고, 수요가 증가하면 가격 역시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빠르고 높은 경제 성장이 현재 대한민국 부동산의 가격을 끌어올린 일등 공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 성장만으로는 현재의 높은 부동산 가격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집값 상승에는 여러 가지 다양하고 복잡한 요인과 원인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맥락으로 살펴보면, 부동산 가격이 수직으로 상승한 시기가 몇 차례 있었다.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까지는 이렇다 할 부동산 투자 이슈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다 1970년대 들어와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잘살아보세'라는 구호와 함께 차관을 들여와 개발 계획에 투자했고, 경부고속도로 개통으로 땅값 상승의 서막이 열렸다.  

부동산 투자 역사에서 경부고속도로 개통과 강남 개발은 부동산 상승기를 알리는 분기점이었다.
땅값 상승의 최초 진원지가 바로 이 두 사건이기 때문이다.



경부고속도로는 1970년 7월에 개통되었다. 
같은 시기 한남대교가 완공되면서 서울 구도심과 강남이 연결되었다. 
당시 서울 부동산 패권은 강북이 쥐고 있었다. 

하지만 한강 다리가 뚫리면서 강북과 강남 사람들이 쉽게 오갈 수 있는 '연결성'이 생겼다. 

경부고속도로를 통해 물류가 획기적으로 변하고 경제가 성장하기 시작한 것도 주효했다.
사람들이 서서히 강남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강북의 명문 학교가 강남으로 이주했다.  

강북에 살던 기득계층이 강남으로 이사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 것이다.


뒤를 이어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이라는 대형 이벤트가 열리면서 땅값 급등세에 불이 붙었다. 

전국 각지에서 서울로 몰려드는 사람들은 계속 늘어났고, 살 집이 부족해지자 노태우 대통령 시절 '주택 200만 호 건설'도 등장했다. 
1기 신도시로 분류되는 분당과 일산도 이때 만들어졌다.


숨 가쁘게 이어지던 개발 과정에서 극소수의 사람들이 가늠할 수 없는 수준의 막대한 부를 축적하기도 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부의 양극화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사실 IMF 전까지만 해도, 강남을 중심으로 한 주택 투자는 여전히 '그들만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최초의 부동산 폭락기

20여 년 가까이 단 한 번도 추락하지 않고 오르기만 했던 대한민국 부동산이 드디어 꺾였다. 
1997년 IMF 환란 시기였다. 
당시 반값 아파트가 부지기수로 등장했다. 
10억 원 하던 아파트가 2억 원의 매물로 등장하는 일도 벌어졌다.


숨 가쁘게 성장만 해오다 맞닥뜨린 최초의 경제 공황에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다.
당시 사람들의 유일한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집 한 채'를 비롯해 모든 실물 자산 가격이 곤두박질쳤다.  

실업자는 폭증했으며 금리는 20%에 육박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IMF를 2년 만에 졸업하면서 한국 경제는 다시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부동산 투자 대중화의 시대

IMF를 졸업하고 다시 경제 활황기를 맞으면서 부동산 가격이 수직으로 상승했다.
인터넷의 발달이라는 촉매제를 등에 업고, 부동산 정보의 대중화에 힘입은 것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압구정 현대아파트에 관심이 있다면 직접 발품을 팔아서 압구정동이나 인근 지역 부동산 

중개사무소를 찾아가 물어봐야만 했다. 

하지만 인터넷이 있으니 검색을 통해 거래가격, 매물 정보를 손쉽게 손에 넣게 되었다.
정보의 민주화가 투자의 대중화를 열어젖힌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현실 인식이었다. 
IMF 때 실직당하거나 사업이 망하는 것을 처음 경험한 사람들이 한가하게 월급만 받고 있으면 안 되겠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 투자에 뛰어드는 인구가 폭증하기 시작했다.  

서울의 아파트 개수는 한정되어 있는데, 투자 인구가 10배 이상 늘어났으니 부동산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했다. 
2006년과 2007년에는 아파트 가격이 최고점을 찍었다. 
부르는 것이 값이다 보니 이 그 자리에서 수천 만, 수억 원이 오르며 아파트 가격은 계속 신고가를 경신해 나갔다.



그러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건이 터졌다. 

하지만 IMF로 매를 먼저 맞았던 덕분에 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학습 효과'가 생긴 것이다.  

사람들은 IMF를 지나면서 누군가에게는 혹독한 경제적 위기가 누군가에는 기회가 된다는 것을 눈으로 목격했다. 

 

시장에 위기가 찾아왔다가 경기가 회복되면 그 과정에서 얻는 수익은 보통 때보다 몇 배나 크다. 
이제는 위기가 오면 자산가들은 현금을 동원해 부동산 자산을 사들인다. 
지금은 '위기가 곧 기회'라는 명제가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투자 바이블로 통하게 되었다.


연평균 7~8%의 경제성장률은 과거가 되었다

우리나라 경제 성장과 부동산 투자의 역사는 끈적끈적하게 얽혀 있다. 

대한민국 경제는 지난 30년 동안 매년 7~8%대 성장을 이뤘다. 
이런 기록은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다.  


이 과정에서 '기형적'이고 '투기적'인 부동산 시장도 만들어졌다. 
세대 간 부의 쏠림 현상도 가속화되었다. 
건설사와 언론사 카르텔, 부의 양극화, 국민 자산의 대부분이 부동산에 묶여 있는 등 풀어야 할 문제도 많다.  

그 와중에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세계 경제뿐 아니라 국내 부동산 투자 시장이 또 한 번의 폭등 기를 겪었다.


최근 대한민국 경제성장률은 2~3%대에 머문다. 

심지어 2023년에는 1.5%로 둔화되었다. 
선진국으로 진입하면 경제성장률이 둔화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과거 개발도상국 시기처럼 생산성이 높아지기 힘든 구조가 되었기 때문이다. 
국내 경제가 저성장 기조에 놓이게 되면서 부동산 시장의 투자 패러다임도 변하고 있다.
앞으로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은 서서히 약화되고 있다.

인구 감소와 저성장에 대비한 부동산 투자를 고려해야 할 시기다.


<출처: 부동산 투자 대격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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