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버킷리스트
60세 동갑내기 부부의 기대 수명은 30년이다.
90세가 되면 부부 모두 세상을 떠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중 함께 사는 시간은 19년이고 11년은 부부 중 한 명이 홀로 살아야 한다.
60세 동갑 부부를 기준으로 본다면 부부가 앞으로 함께할 시간은 30년이 아니라 19년에 불과하고, 19년 중에서도 부부가 모두 건강한 시간은 10년이며, 9년은 부부 중 한 명 이상이 아파 지내는 시간이 될 것이다.
부부간에 나이 차가 2~3년 있어도 위의 과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서 60세 부부의 삶을 간단히 말하면 '10-10-10'이다.
부부의 기대여명 30년 중 10년은 부부가 모두 건강할 때이고, 10년은 부부 중 한 명 이상이 아픈 시간이고, 또 10년은 부부 중 한 명이 세상을 떠나 남은 한 명이 홀로 사는 시간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부부 모두가 건강하게 지내는 10년은 소중한 시간이다.
60대 부부가 갖는 10년 역시 놓치면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다.
늦어도 60대부터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실천해야 하는 이유다.
신혼여행으로 꼭 가고 싶었는데 못 가본 곳 가보기, 진기한 음식 먹어보기, 맛집 100곳 탐방하기, 배우자가 태어나고 자란 곳 가보기, 교토 벚꽃 구경하기 등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뭔가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작성해서 실천하면 좋다.
부부 버킷리스트가 주는 장점은 이 경험이 노후 삶의 윤활유가 된다는 것이다.
추억을 공유하는 것만큼 관계를 깊게 해주는 게 없다.
김광석의 노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는 결혼하고 아내가 남편의 첫 출근 넥타이를 매어주던 때, 막내아들 대학시험 때, 큰딸 결혼하던 날 등 굵직하고 깊은 경험을 공유한 부부의 이야기다.
아내를 일찍 보내고 혼자 자녀를 키운 50대 남성이, 아내가 꿈에 나와 이제 해보고 싶었던 노래를 불러보라고 했다면서 콘테스트에 나와 부른 노래가 이 노래였다.
심사위원들과 방청객 모두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이런 공통의 경험과 추억이 노후를 견딜 수 있게 해 준다.
노후가 되면 행복하다고들 하지만 사실 삐걱거리는 게 더 많다.
지금까지의 삶이 쌓고 확장시키는 시간이었다면 노후는 인출하고 하나씩 떠나보내는 때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고 했다.
젊었던 때가 만남의 과정이라면 노후는 이별의 과정이다.
이별이 행복한 사람은 없다.
노후가 행복하다고 부르짖는 것은 실제로는 행복하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누가 봐도 행복한 사람이 자기 행복을 이해시키려고 애쓰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요즘은 친구들이나 퇴직한 직장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옛날이야기를 신나게 하는 우리를 발견하게 된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라테'라 해도 좋다.
나이 들면 추억만 먹고 산다고 핀잔을 듣지만 추억은 노후에 좋은 먹을거리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추억은 휑하니 빈 곳의 허전함을 채워준다.
그러니 부부의 버킷리스트를 만들고 실천하면서 삐걱대는 노후에 윤활유 역할을 해줄 좋은 추억을 만들어보았으면 한다.
부부의 추억은 자녀가 세상에 처음 나온 날, 자녀의 대학시험 날, 결혼식 날 등 자녀를 키우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그 이후 부부만의 추억이 계속되어야 한다.
추억 1막이 자녀와의 성장 경험이었다면 그 2막을 위해 부부의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실천해 보자.
남녀의 깊은 슬픔의 간격을 뛰어넘을 수 있게 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