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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터레스트 Mar 03. 2023

[독일 한 달 살기]

힘 빼고 덜어내기 -마음 편

2. 낯선 동네, 낯선 문화, 낯선 사람들


독일에서의 아침이 밝아왔다. 어제는 정말 어떻게 잠들었는지도 몰랐다. 기억나는 건 배가 고파서 한국에서 가져온 레토르트 떡볶이를 먹고 잤다는 것뿐.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커튼을 걷어보는 일이었는데, 높은 천장에 매달린 묵직한 암막 커튼이 쉽게 움직여지지 않아서 살짝 당황했다. 한국에 있는 우리 집은 블라인드를 쓰기 때문에 익숙지 않았다. 그래도 감성 하나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암막커튼을 걷어내니 샤르르 속커튼이 살랑거렸다.


‘기분 좋은 아침이군’


하며 속커튼을 치우고 커다란 창문으로 내려다본 독일은 생각보다 우중충했다.

독일이 날씨가 안 좋기로 유명한 나라인 건 알았지만, 힘들게 도착했는데 날씨도 우중충하니. 정말 독일이 독일스럽게 반겨주는 느낌이었다. 오빠는 힘들게 짐을 끌고(나도 움직이기는 하지만 큰 짐이었다) 우리 가족이 안전하게 집에 도착할 때까지 긴장을 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인지 아침까지도 눈을 뜰 기세가 없다.

 나는 조용하게 어제 한번 훑어보았던 주방으로 몸을 스르륵 움직였다. 거기에는 모카포트가 반짝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티와 커피(특히 커피)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좋아하는 나에게 모카포트는 성배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슬픈 사실은 원두가 없다는 것이지만.

 원두도 없고, 마실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냉장고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냉동고에 쪼그라든 얼음만 있을 뿐이었다.


 원래 독일에 도착하자마자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였던 크리스마스 마켓부터 가고 싶었다. 윗동네인 뉘른베르크로 기차를 타고 가서 크리스마스마켓을 즐기는 상상을 하며 독일행 비행기를 탔지만, 예상치 못한 뮌헨행 기차표 추가 구매로 뉘른베르크까지 가게 되면 너무 부담스러웠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를 노려보기로 했다. 일단 오늘은 장 보는 것이 시급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마리엔 광장에 크리스마스마켓이 진행 중이니, 장을 보고 놀러 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신랑이 좀 더 잠을 자도록 둔 채, 나는 사부작사부작 나갈 준비를 끝마쳤다. 여자는 뭐가 이렇게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은지, 그냥 얼굴에 치덕치덕 바르는 것만 해도 족히 30분은 걸리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30분의 가치가 느껴질 만큼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준비를 끝마치고 나서 신랑을 흔들어 깨웠다. 오늘은 장을 좀 봐야겠다는 생각이 일치한 우리는 집 밖으로 나섰다. 한 달 동안 지낼 우리 동네는 아직 낯설지만, 평온한 기분이 든다. 어제 아파트로 걸어오면서, 신랑의 레이더에 커다란 쇼핑몰이 포착되었었다. 우리는 그곳부터 가기로 했다. 도착한 곳은 PEP라는 대형 쇼핑몰이었다. 어림잡아서 고양 스타필드보다 크지 않을까 싶을 만큼 크기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가운데 정문을 중심으로 왼쪽 오른쪽으로 크게 뻗어나간 이 건물에는, 대형 마트인 Edeka, Kaufland는 기본으로 있었고, DM, DEPOT, 가전제품 백화점인 Saturn도 있었고, 너무 많은 의류 백화점과 잡화점, 식당이 있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입점 브랜드들을 가져와봤다.

*2023년 2월 기준 입점브랜드*

 이 정도면 내가 모든 걸 나열하기 얼마나 어려웠을지 감히 공감을 바라본다. 어쨌든 우리는 이곳에서 목표물이 있었다. 나의 계획적인 첫 장보기는 완벽할 것이다.



2-1. 빈틈없이 장보기


첫 번째, 안전한 음용수를 위해.

독일에서 조금 길게 머무시거나 살 예정이시라면, 가장 먼저 꼭 브리타 정수기를 사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유럽의 물은 대부분 석회질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복통과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날 것이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브리타 정수기를 쓰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 필터를 가져와서 쓰시면 안 되는 것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서울의 수돗물은 그냥 마셔도 될 정도로 굉장히 훌륭한 물이지만 염소계성분이 들어가 있어서 잔류염소를 제거해 주는 필터를 사용해야 하고, 유럽국가의 물은 석회질을 제거해 주는 필터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서로 쓸모가 없다. 꼭 필터는 그 나라의 필터를 사용하도록 하자. 생각보다 비싸지 않으니 겁먹지 말고 사서 쓰길 권장한다. 그리고 팁이라면 팁인데 뚜껑의 색이 검은색 흰색이 있다. 용량에 따라 컬러가 다른 것이니, 선호하는 색을 고르기보다는 어느 정도의 물을 마실지를 고려해서 사시는 것을 추천드린다.

그리고 마트에서도 팔지만, 브리타 정수기 같은 경우에는 전자제품마트인 Saturn에서도 팔고 있으니, 급한 게 아니라면 발품을 좀 팔아서 합리적인 곳에서 사는 것이 좋다. 우리 같은 경우는 새턴에서 필터 3개 포함되어 있는 브리타 정수기가 세일 중이어서 그걸로 골라왔다. 요리하고, 커피나 차를 내려먹고, 음료수를 만들거나 과일을 씻을 때 사용했고 15~20일 정도면 필터 1개를 다 쓰게 된다.  


두 번째, 아침을 깨우는 카페인을 찾다.

 아파트에 굉장히 저렴해 보이는 모카포트는 하나 있는데, 그걸 사용하려면 어쨌든 원두가 필요하다. EDEKA에 들어가서 커피코너 앞에 섰는데, 정말 종류가 다양하다. 독일이 의외인 부분 중 하나가 커피문화도 티문화도 전부 영국이나 이탈리아가 부럽지 않을 만큼 발달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에 대해서 잘 모른다. 보통 차는 영국, 커피는 이탈리아라고 생각하니까. 수많은 원두 브랜드와, 블렌딩의 종류와, 그라인딩의 정도들이 세부적으로 나뉘어있다. 일단 가장 무난하게 일리를 집어 들었다. 모카포트에 사용하는 용도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직원한테 물어보니, 모카포트용이 맞다고 해주셔서 안심하고 계산했다. 그런데 집에 와서 보니 원두가 너무 고왔다. 아니잖아 모카포트!!


세 번째, 생필품을 사자.

 유럽에 나가면 늘 간과하고 있다가 당황하는 게 있는데, 바닥생활을 안 하는 문화라는 것. 정말 기초적인 거고 다 알고 있었는데, 막상 내 눈앞에서 관리인이 우리의 깨끗한 방에 신발을 신은 채 들어오면 굉장히 놀라서 현관 앞에 그대로 굳어버린다. 어쨌든 한국인은 바닥을 빤질빤질 닦아야 마음이 편하다. 그래서 우리는 바닥부터 닦기 위해 바닥용 청소포를 샀다. 그리고 휴지와 키친타월, 빨래세제 등을 양손 가득 들었다.

 점점 짐이 많아지자 들고 있던 쇼핑 바구니로는 감당이 안되기 시작했다. 신랑은 서둘러 카트를 가지러 갔는데, 마트의 통유리를 통해 당황하는 신랑이 보였다. 일단 카트가 없었고, 한 카트를 할머니가 놓고 가시려고 끌고 왔는데, 멀리서 제삼자가 보기에


"혹시, 카트 다 쓰셨나요?"

"이 카트는 내 거야!!"

"아니 다 쓰셨잖아요.."

"이 카트는 내 거라고! 줄 수 없어!"


 이런 실랑이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떡하지 나가서 뭐라도 도와줘야 하나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할머니가 카트를 제자리에 두시고, 바로 그때!! 새로 등장한 뉴페이스 할아버지가 유유히 카트를 끌고 가셨다.


띠용...?


 결국 빈손으로 돌아온 우리 신랑은 양손에 무거운 바구니를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 보니, 아직도 독일은 동전을 넣고 카트를 뽑는 시스템을 이용 중인데(우리나라는 이제 다 뽑혀있지만) 할머니는 아직 동전을 꺼내시지 않았는데, 우리 신랑이 카트를 가져가려 하니 당황하시며 안 주셨던 것 같다. 이후 우리는 카트를 얻지 못해 고생하는 날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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