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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터레스트 Mar 16. 2023

[독일 한 달 살기]

힘 빼고 덜어내기-마음 편

2-2. 크리스마스 마켓에 가야지!

 일찍 볼일을 마친 우리는 마리엔 광장으로 나갔다. 마리엔광장은 커다란 구/신시청사와 역사가 있는 교회들이 즐비하고 있고, 빅투알리엔이라는 역사 깊은 재래시장이 있는 곳이다.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그리고 겨울에는 이 주변으로 크리스마스 마켓이 형성이 되어있다. 22년 12월 23일,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는 거리에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걸어 다니거나, 서서 글뤼바인(과일과 향신료를 넣어 끓인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아직 낮 시간이라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다. 우리는 먼저 마켓의 규모나 어떤 가게들이 있는지 훑어보기로 했다.


낮 시간의 여유로운 크리스마스 마켓

그리 춥지는 않지만 비 오는 겨울. 우산을 들고 구경하는 것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작은 가게들을 구경하려면 우산을 뒤로 잠시 빼두거나 접어야 하는 게 불편했다. 그렇다고 이 비를 맞으며 돌아다니고 싶지도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나뉘어 있었다. 비를 맞는 사람들은 몸짓이 자유로워 보였고, 비에 젖은 머리가 불편하다거나 축축해지는 옷이 찝찝하다거나 하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어 보였다. 우리 주변에 공기가 존재하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비가 점점 굵어져서 잠시 건물 아래로 몸을 피했다. 그때 내 눈앞에 있는 두 소녀가 있었는데, 고등학생이나 이제 막 대학생이 된 것처럼 살짝 앳되어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벤치에 앉은 채, 비를 맞으며 대화를 즐겁게 이어갔다. 그들의 중심은 서로 나누는 대화였고, 그 무엇도 그 중심을 바꿀 수 없는 느낌이었다. 무엇이 그들을 자유롭게 만들었을까? 조금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비도 피할 겸 불이 켜진 크리스마스 마켓도 볼 겸 잠시 카페에서 몸을 녹인 후, 나는 잠깐이나마 그 자유로움을 알고 싶었다. 우산을 잠깐씩 신랑에게 맡긴 채 거리를 거닐거나 작은 소품들을 구경하러 다녔다. 물론 주야장천 비를 맞으면서 다니는 건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꽤 괜찮고 지금의 나는 근사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만 누가 안경에 와이퍼 좀 개발해 줬으면 좋겠다. 아니면 발수코팅이라든가... 눈앞이 빗방울에 가려져 불편하다. 결국 다시 우산을 쓰고 슈니발렌을 하나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은 비가 오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내일 다시 오리라 다짐하면서.


그날 밤 침대에서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가 깜짝 놀랐다. 인별 피드에 내가 좋아하는 바이올리니스트와 한국에서 특강을 해주셨던 바이올린 선생님까지 함께 뮌헨 거리에 있었던 것이다. 이런 기가 막힌 우연이 있을 수가! 서둘러 신랑을 불러댔다.

신 시청사 앞의 트레이드 마크인 거대 크리스마스트리

"오빠오빠오빠오빠! 여기 아까 우리 사진 찍은 곳이에요!"

"아까 그 커다란 트리?"

"대박사건!"

"왜?"

"선생님이랑 내가 좋아하는 바이올리니스트랑 다 같은 장소에 있었어요! 대박! 알았으면 선생님께 인사드리는 건데...."


프랑크푸르트에 계셔야 할 선생님이 뮌헨에 계신 것도 신기하고, 내가 좋아하는 바이올리니스트도 뮌헨에 와 있는 것도 너무 신기했다. 독일의 많은 크리스마스 마켓 중에 함께 뮌헨이라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그리고 미리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에 아쉬움도 남았다. 하지만 내일은 크리스마스이브니까, 또 우연히 뵐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잠에 들기로 했다.



독일은 크리스마스 당일에 가족과 함께하는 문화가 있어서, 모든 가게가 문을 닫는다. 그래서인지 유학생들이 가장 외로움을 많이 타는 날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이브에 분명히 많은 인파가 크리스마스 마켓에 몰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예상만 했다. 막상 크리스마스이브 당일에 광장에 나가보니, 마켓이 전부 철거 중이 아닌가!? 무슨 일인지 의아했기도 하지만, 어제 봐두고 막상 사지 못한 귀여운 장식품이 생각이 났다. 서둘러서 가게로 달려갔다. 역시나 정리 중이셨다. 최선을 다해 지금이라도 구매가 가능한지 확인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더 이상 판매를 할 수 없다며 매몰차게 계속 철거를 진행하셨다. 눈앞에 장식품이 있는데, 분명히 내 눈에 보이는데 판매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정말 칼 같은 사람들이다. 


'그래, 얼른 정리하시고 가족들과 함께 하고 싶겠지...' 


더 이상 매달리지 않았다. 크리스마스이브부터가 진짜 크리스마스였다는 것을 미리 파악하지 않은 내 불찰이었다. 우리는 아쉬운 길에 한적한 거리를 즐기다 들어가기로 했다. 빅투알리엔 시장 쪽으로 가니 버스커들도 몇몇 보이고, 맥주나 글뤼바인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지!


버킷리스트였던 화려한 크리스마스 마켓도, 너무 예뻐서 꼭 사야겠다고 생각했던 장식품도, 모두 다 어설펐으면 어떠하리. 그냥 지금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독일땅을 밟고 있고, 다양한 사람들과 낯선 문화를 즐기고 있고, 국적도 인종도 다른 사람들이 모두 같이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따뜻하고 달콤한 글뤼바인으로 속을 달래고 있다는 것이 오늘의 행복 아니겠는가?

크리스마스이브의 빅투알리엔 시장에서 글뤼바인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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