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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조 Nov 25. 2024

우리가 놓친 사랑

심장이 아닌, 마음이 기억하는 사랑

사랑은 때로 갑작스럽게 그리고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이자벨라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사랑이 시작되는 과정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

변화를 극도로 싫어하는 이자벨라.

MBTI로 치면 J 100%에 가까울 만큼 계획적이고 즉흥적인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습관은 막막하고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느낌을 준다.


이야기는 그녀가 매일 점심으로 먹던 미스터리라는 식당이 갑자기 문을 닫으면서 시작된다.

플로리스트로 일하는 그녀에게 미스터리의 누들 수프는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소소한 낙이였다. 하지만 이 작은 행복이 사라지자, 그녀는 큰 분노를 느끼게 된다. 며칠 동안 즉석수프로 점심을 때웠지만 그녀는 우연히 새 레스토랑인 틸스에 발을 들이게 된다.


그와의 최악의 첫 만남


그녀의 계획은 단순했다. 틸스에서 수프를 판매하는지 물어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오는 것. 하지만 상황은 그녀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레스토랑에서는 수프를 판매하지 않았고, 메뉴판을 읽는 동안 그녀는 까다로운 입맛 탓에 스스로에게 짜증을 냈다. 웨이트리스가 추천한 메뉴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주방 셰프에게 자신이 원하는 수프를 만들어 달라며 다소 민폐에 가까운 요구를 한다.

이 장면에서 등장하는 셰프 옌스 틸. 그는 다소 시크한 태도로 그녀를 상대하며 몇 가지 메뉴를 제안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옌스가 비트페스토 파스타를 추천하며 대화가 마무리된다. 그렇게 두 사람의 첫 만남은 다소 최악으로 마무리된다.


사랑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이야기를 읽는 내내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이렇게 안 맞는 두 사람이 과연 어떻게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이자벨라는 꽤나 까탈스럽고 고집스러운 성격이다. 안정적인 자신의 세계를 깨뜨리기 싫어하는 그녀의 모습은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면서도 답답하게 느껴진다. 반면, 옌스는 현실적이고 단단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사랑에 대한 그들의 관점도 극명하게 다르다.  


이자벨라는 심장이 쿵! 하고 뛰는 운명적 사랑을 꿈꾼다.

옌스는 사랑은 첫눈에 반하고 설레는 로맨틱한 순간이 아니라, 데스메탈이나 돼지우리 같을 때도 비일비재하다며, 그런 난관을 두 사람이 잘 극복해야 비로소 진정한 사랑이라 말한다.


메를레, 그리고 시작된 인연


그들의 관계가 이어지게 된 건 옌스의 여동생 메를레 덕분이다. 메를레는 이자벨라의 꽃집에서 문제를 일으켰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옌스와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후 메를레와 이자벨라가 친구가 되면서, 옌스와 이자벨라는 자연스럽게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된다. 같이 저녁을 먹기도 하고, 와인을 마시기도 하며 많은 대화를 나눈다.


특히, 여행 중 요리를 함께 준비하던 장면에서 옌스는 "와인을 입에 머금고 양파를 손질하면 눈물이 나지 않는다"라고 알려주며, 그녀에게 양파 손질법을 가르쳤다. 이자벨라가 잘 따라 하지 못하자 그녀의 뒤로 다가가 자신의 손으로 그녀의 손을 덮은 채 다시 손질을 알려주었다.

이자벨라는 그의 온기를 느끼며 불현듯 그의 어깨에 기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건 와인 때문이야."
그녀는 술기운을 핑계로 자신의 마음을 합리화하려 하지만, 옌스의 체취와 온기가 자꾸만 떠오른다.


여행에서 다른 하이라이트 장면은 역시 침대씬이다. 메를레가 옌스의 코 고는 소리가 싫다며 이자벨라와 옌스가 한 침대를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녀만 불편한 모양새였고 너무나 태연한 남자를 보고 있자니 화가 났다. 자신은 매력적이고 호감 가고 잠자리에서도 끝내주는 여자인데. 하지만 그는 내가 당신에게 끌리지 않으니 괜찮은 것 아니냐며 태연하게 말했다. 당신이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대답하는 그의 말에 그녀는 왜인지 참을 수 없는 화를 느끼게 된다. 그의 모습에 우린 친구사이 었군 생각하며 그녀는 스스로 한 생각에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에게 성적 매력을 느꼈는데, 그는 그런 것 같지 않으니 그냥 묻어버렸다.


여름휴가철, 옌스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이자벨라를 걱정하게 만들었다. 단지 점심 먹을 곳이 없어져서가 아닌 옌스를 못 보게 될까 봐 두려운 것이었다. 그녀는 매일 점심을 옌스의 레스토랑에서 먹었고, 생각이 불안한 날이면 그의 집 발코니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그에게 익숙해져 있었고, 그는 그녀의 일부가 되었다. 그를 더 이상 못 볼 수도 있다는 건 상상하기도 싫었고, 이상야릇한 성적 충동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녀는 풀이 죽어있는 그를 데리고 비행기를 보러 갔다. 비행기가 속도를 높여 이륙하는 장면을 볼 수 있는 이자벨라의 비밀장 소였는데, 그도 마음에 든듯하다. 너무 멋진 곳이라며 칭찬을 하면서 다시 데이트를 하게 되면 그녀를 데리고 꼭 여길 오겠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이자벨라는 온몸이 싸늘해지고 그에게 안된다고 말한다. 계집애나 꼬시라고 데리고 온 곳이 아니라고 화를 내었다. 그가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진 것은 아닐까 무서워하면서 말이다.


소설밖에 있는 나로서는 옌스가 이자벨라에게 호감이 생긴 것을 알고 있지만,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호감이 있으면서도 모르는 여주를 보자니 제삼자가 볼 때 이렇게도 티가 나는 게 사랑인데 왜 당사자들만 모르나 싶다.


알렉스 : 꿈꿔왔던 이상형과의 만남


중간에 이야기를 스킵했는데. 이자벨라의 이상형을 만나는 사건이 있었다. 심장을 쿵하게 만드는 남자였는데. 그는 변호사에 다정한 미소를 가지고 있었고 유기견에 관심을 가지는 이상적인 남자였다. 그 모습에 이자벨라는 그에게 한눈에 반하게 되었고 그를 꿈에 그리던 남자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이자벨라의 모습에 옌스는 불만을 표하는데 어떻게 하루아침에 느닷없이 사랑에 빠질 수가 있냐며 믿을 수없다는 표현을 한다.


이후 이자벨라가 꿈에 그리던 남자와 데이트를 하는 날이 다가왔다. 데이트는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그는 자신의 취향을 알지 못했고. 그로 인해 데이트는 멀리서 보기에 로맨틱했지만 실상은 엉망징창이었다. 그녀는 그가 준비해 온 데이트를 망치지 않기 위해 싫어하는 것들을 억지로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남자와의 데이트 이후에도 옌스와 이자벨라의 만남은 계속되었다.

더운 여름날 술 그리고 남녀 둘. 평소와는 다르게 3차까지 간 둘은 술을 거하게 마셨고, 옌스는 그녀에게 마음이 있음을 간접적으로 전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그에게 자신이 그에게 마음이 있음을 말하지 못하고 얼버무리게 된다. 그리고 둘의 진한 키스타임.

옌스랑 있는 동안 꿈에 그리던 남자는 전혀 생각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다음날 그녀는 알렉스와 옌스를 생각하며 고민을 하게 된다. 꿈에 그리던 모습의 알렉스. 다정하고 자신이 꿈꾸던 데이트를 해주던 그. 옌스와는 정반대였다. 옌스는 로맨틱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고 늘 삐딱한 이혼남에 사랑을 믿지 않으며 여자와 사귈 마음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알렉스를 선택해 약속을 정했다. 하지만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 위해 전화한 옌스는 그녀가 그와 데이트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고백한다. 술이 아니라 우유를 마셨어도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 말하는 그. 그럼에도 그녀는 옌스를 거절하며 레스토랑을 나온다. 우리의 우정이 끝났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무너질 것 같았지만 그녀는 알렉스를 만나기로 결정한다.


사랑이 조용히 스며들었다.


그렇게 알렉스와 만났다. 데이트는 발레공연을 보게 되었는데, 이 모습에 이자벨라는 정말 알렉스는 교양이 넘치는 문화생활을 즐기는구나 생각을 하며 상상 속의 남자와 일치시키고 있었다. 정작 본인은 이런 교양프로그램을 즐기지 않지만 말이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2시간 반 동안의 공연은 그녀를 감동시켰고 정말 근사한 데이트를 한 것 같았다. 데이트가 끝나고 헤어지기 전에 둘은 키스를 하였는데, 둘 다 감흥이 없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때 옌스생각을 했다. 최악이었다. 당신은 꿈에 그리던 이상형인데, 당신이 내 짝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들이댔는데, 막상 그를 손에 넣고 보니 내가 그를 원했던 게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그런데도 이자벨라는 그 사실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렇게 둘은 헤어지게 되었다.


그녀는 사실 알렉스를 사랑하게 아니라. 어떻게든 그를 사랑하려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이 옌스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그토록 짧은 시간 안에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 되었는지 생각하면 놀라울 따름이다. 그녀는 끊임없이 그에게 마음이 끌렸고, 그가 그녀에게 전혀 끌리지 않는다고 했을 때는 얼마나 화가 났는지 모른다. 지난 몇 개월간 그녀는 알렉스의 마음을 얻으려고 노력했지만 실제로 남몰래 조금씩 사랑을 키워간 사람은 옌스이다. 그 사랑은 심장이 쿵하는 순간 없이 조용히 스며들었다.


사랑은 이렇게 시작된다


책을 읽다 보니 내가 했던 사랑들이 떠올랐다. 이자벨라처럼 첫눈에 반했던 기억, 자연스럽게 지인에서 친구로 그리고 연인으로 발전한 기억.

사랑은 때로 첫눈에 반하는 강렬한 순간으로 시작되기도 하지만, 더 많은 경우에는 조용히 일상 속에서 스며든다. 이자벨라는 알렉스와의 만남을 통해 이상형이라는 환상이 깨지는 순간, 진정한 사랑이란 서로의 일상과 감정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임을 깨달았다.


옌스와의 관계는 화려하지도, 운명적이지도 않았지만, 그 모든 작은 순간들이 쌓여 그녀에게 없어서는 안 될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결국, 사랑이란 심장이 쿵 하는 순간이 아닌,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천천히 스며드는 감정이 아닐까 싶다.


진정한 사랑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히 자라나 일상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

우리에게도 일상의 어딘가에 옌스 같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어떤 사랑을 꿈꾸고 있나요?


책 제목은 “뜬끔없이 사랑이 시작되었다.”입니다. 혹시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이 있다면,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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