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14일 오후 | 포르투갈 리스본 | 시아두 현대미술관
여행 기록물로서의 그림일기를 봤다. 엄청나게 방대한 역사를 자랑하는 동시에, 색채 또한 아름다운 아줄레주 박물관에 다녀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 시아두 현대 미술관에서는 이렇다 할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냥 지나가며 걷던 중 문득 이 공간만이 내 뒤통수를 ‘댕’하고 쳤다.
이번 여행은 여느 때보다도 번갯불에 콩 구워먹 듯 왔다고 ‘자부’한다. 다음 숙소와 다음 일정을 잡느라 정신이 없고 다음 식사에는 뭘 먹어야 좋을까 고민하기 급급하다. 반면 작가는 여행 중 마주한 ‘장관’을 저장하는 작업을 이렇게나 멋지고 방대하게 해내고야 말았다.
200여 년 전 여행이란 지금의 나의 것보다는 더욱 모험가적인 마음가짐이 있어야 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작가가 여행하던 중에 일상의 걱정들이 없어서 스케치 작업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상황을 지레짐작하고 싶지 않다. 차라리 자신만의 경험을 저장물로 오롯이 담아내는 것에 게으름을 피우지는 않았다는 데에 치중하는 편이 좋겠다.
모든 인간의 발자취마다 반드시 생산적인 작업이 남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분초를 다투는 내 꼴이 싫어 사무실에서의 일상을 뒤로한 데에도, 나는 또 이곳에서 비슷한 프로토콜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에 한심했다. 아마도 익숙한 사고방식에 길들여진 따름일 테다.
‘투쟁과도 같았던 매 순간’과 ’나를 찾는 찬찬한 시간‘의 차이는 어디에 있나? “과연 이 둘은 차이가 있기는 한가?”하는 불가적 물음이 생겨난다. 질문은 돌고 또 돈다. 내가 발붙이고 사는 그곳을 여행이라 생각하고 그곳에서 나의 즉각적인 필요들을 채우면 그 또한 여행 같은 삶 아니던가. 그런 의미에서 집에 돌아가면 쌓아둔 이불빨래부터 해야지. 본래 여행자란 이런 것.
이야기가 딴 길로 샜다. 역시 허무와 불가는 맞닿아 있나 보다.
쉬고 싶고, 놀고 싶고, 아니지, 오롯한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서울’이라는 도시를 떠나왔더랬다. 물론 지금 내가 무엇을 먹고 싶은지에 온전히 귀 기울이고, 어떤 것을 보고 싶은지 철저히 되묻고, 어떤 분위기에 나를 놓이게 하고 싶은지 곱씹어 생각할 수 있는 순간들이 몹시도 귀하다. 아마 이러한 일련의 경험들을 “여행”이라 가리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본인의 시각적 경험을 잘근잘근 씹어서 드로잉으로 뱉어냈다. 나는 이번 여행을 위해 그간 닫아둔 인스타그램 계정을 되살렸다! 굳이 나열하여 비교하니, 종이 스케치보다야 스마트폰 카메라가 확실히 자극적인 매체라는 점에서 금세 무안해져 버렸다. 나도 현미밥처럼 소화가 더딘 줄글을 뱉어야지. 작가의 바로 이 부분이 나를 자극한 지점일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