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를 타고 아빠를 데리러 간다.
아빠가 택시에 탄다.
바깥 찬 공기와 함께 시큼, 연묵의, 쌉쌀한, 그런 불편한 향이 함께 들어온다.
나는 아빠 나이 쉰에 세상으로 나온 늦둥이다.
어린 시절에는 둘이 죽고 못 살았단다.
택시 안에서 나는 둘 사이에 길고 긴 이야기를 스쳐본다.
내가 사람 구실을 하고 어느덧 꼰대가 된 것을 공공연히 인정할 때가 되니, 지금은 한 달에 서너 번쯤 보는 사이다.
아빠가 택시에 탄다. 겉옷에 묻은 서늘한 기운과 함께 시큼하고 연묵향이 배어있는 그런 불편한 향이 함께 탄다.
이런 게 노인네에게서 맡아진다는 흔한 향인가.
아빠는 여든여덟.
아빠는 어린 시절 서당도 다녔다고 하고, 마을에는 백정도 있었다고 한다.
아직도 아빠는 하루에 세 시간씩 글씨를 쓴다.
아빠는 은은한 묵향을 데리고 다닌다.
먹냄새는 익숙하다.
나는 무릎을 꿇고 글씨를 쓰는 아빠 옆에서 먹을 갈았다.
연적에서 물을 따라서 먹을 갈았다.
고른 압력으로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갈아야 한다.
아빠 손이 ‘시컴시컴’하다.
한 번 묻은 먹물이 잘 안 지워지나 보다.
택시 안 히터 바람이 아빠 옷에 묻은 서늘한 기운을 빠르게 씻어줄 때 즈음 아빠는 택시요금을 궁금해한다.
하지만 밖은 춥고, 아빠는 늙었고, 목적지는 고바위에 있고, 나는 불편하니까, 택시에서 내려서 걸어가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다.
목적지에 다다르면 아빠가 지갑을 꺼낸다.
자동결제 시스템 덕분에 그냥 내려도 되는데, 아빠는 결제를 하겠다고 하니까, 내가 카드를 받았다가 택시 밖에서 돌려준다.
다시 한번 바깥 찬 공기가 느껴지면은, 택시 안에서 느껴졌던 애매한 불편함과 짜증이 섞인 오묘한 감정들을 보살필 틈이 사라진다.
시간이란 이런 것이고, 주변 환경이란 이런 것이다.
생각의 길을 만들어 주는 것.
그래, 늦둥이는 언젠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