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돌아와 2

가장 높은 곳으로 가야 해

by 미뇽작가

네 살배기 내 남동생 석이는 늘 기가 죽어 어른들 눈치만 보는 내성적인 아이였다. 말괄량이처럼 동네를 휘젓고 다니는 나와 달리, 동생은 혼자 마당에 앉아 놀거나 내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녔다. 그런 동생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누나! 우리 높은 데로 가자! 비행기에서 아빠가 우릴 금방 찾으려면 아주 높은 데로 가야 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가장 높은 곳은 한 곳뿐이었다.

우리 동네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던 뒷산. 할머니가 밤마다 ‘ 빨리 안 자면 뒷산에 사는 호랑이가 물어간다’며 겁을 주던 그 산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앞뒤 잴 것도 없이 무작정 산으로 올라갔다.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는 동안, 하늘 위로 비행기가 세 번이나 가로질러 갔다.


“누나! 비행기다! 저기 비행기 지나가!”


네 살, 다섯 살. 그 작은 아이들은 거친 풀숲과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면서도 웃으며 하늘만 보며 올라갔다.

비행기가 구름 사이로 머리를 내밀 때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두 팔을 번쩍 들고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아빠아 ~~아빠—! 여기야! 우리 여기 있어!”

“아빠! 빨리 돌아와! 아빠아—!”


산속의 정적을 깨고 터져 나온 아이들의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하늘로 흩어졌다.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를 때마다 아빠가 비행기 창문에 얼굴을 바짝 대고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우린 금세 눈물과 콧물로 뒤범벅이 되었지만, 너무 신이 나서 숨이 차도록 웃었다.


꼬맹이들은 오로지 아빠에게 닿겠다는 일념으로 올라갈 생각만 했지, 되돌아갈 길은 계산에 없었다.


산속의 어둠은 도시의 밤과는 달랐다. 예고도 없이, 마치 누군가 검은 먹물을 훅 끼얹은 것처럼 공포와 함께 밀려왔다. 방금까지 우리를 축복하는 것 같던 나뭇잎 소리는 괴물의 숨소리가 되어 들려왔고,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다리는 풀려버렸다.


우리는 더 이상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한 채 산 어딘가에 고립되었다.

“아빠... 아빠아... 엄마... 엉엉...”


아빠를 부르던 씩씩한 목소리는 울음소리가 되어 산을 울렸다. 둘이 서로의 체온에 의지해 한참을 목놓아 울고 있던 그때였다.

바스락— 바스락


어둠 가득한 산속에서 들리는 바스락거리는 발소리는 상상 속 호랑이 발자국 소리처럼 거대하게 울려 퍼졌다.

“조용히 해! 숨 쉬지 마! 우릴 죽일지도 몰라!”


나는 동생의 입을 틀어막고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우리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공포 속에서 숨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웅크렸다. 발자국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고, 죽음의 문턱에 선 것 같은 긴장감이 정수리까지 차올랐을 때, 갑자기 눈부신 불빛이 우리를 덮쳤다.



“ 하~~ C발!! 너희들 여기서 뭐 하냐?!”


빛 너머로 나타난 얼굴은 호랑이도 괴물도 아닌 막내삼촌이었다. 당시 초등학교 5학년, 할머니의 늦둥이 아들이자 우리에겐 대장 노릇하던 나와 여섯 살 차이 삼촌.


“니들은 이제 죽었다. 지금 동네 뒤집히고 난리 났어! 대체 여기서 뭐 하는 거냐고!”


삼촌은 화난 말투로 우리를 다그치고 욕을 섞어가며 툴툴거리는 와중에도 자기 옷소매를 끌어당겨 우리의 눈물과 콧물을 닦아주었고, 흙투성이가 된 옷을 툭툭 털어주었다. 그러고는 자기 몸집보다 조금 작은 조카인 내 동생을 거뜬히 업어 올렸다.


삼촌은 나에게 휴대용 랜턴을 쥐여주며 앞을 비추라고 했고 그 작고 노란 불빛에 의지해 우리는 산을 내려왔다.


나중에 어른이 된 후 찾아가 보니 우리가 아빠를 찾기 위해 올랐던 그 거대한 산은 사실 동네 뒷산에 불과한 낮은 동산이었다. 어린 눈에는 그 산이 어찌나 커 보이 던 지!


어린 삼촌의 등에 업힌 동생의 고개는 이미 잠결로 꺾여 있었다. 집으로 향하는 내내 삼촌은 겁을 주었다.


“야, 너희 이제 진짜 큰일 났다. 할머니 지금 화 머리끝까지 났어. 아마 맴매 맞아서 엉덩이가 다 터질걸? 니들은 진짜 죽었다!”


삼촌의 말에 나는 심장이 오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산속의 공포가 지나가니 이제는 할머니에게 혼날 생각을 하니 너무 무서워 발걸음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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