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도 우리를 봤을까?
긴장 속에 대문을 들어섰지만, 집안의 풍경은 예상과 달랐다.
온 식구가 모여 있었지만, 누구도 우리를 혼내지 않았다. 우리를 씻기는 할머니의 손길은 매섭기는커녕 평소보다 더 부드럽고 조심스러웠다. 왜 산에 갔는지, 어디를 헤맸는지 묻지도 않으셨다. 할아버지와 다른 삼촌들도 “어이구, 찾았으니 됐다. 이 녀석들아!” 하며 허탈하게 웃고 말 뿐이었다.
세월이 한참 흘러, 할머니에게 물어보았다.
“할머니, 그날 우리 산에 간 날 왜 안 혼냈어? 삼촌은 우리 맴매 맞는다고 난리였는데.”
할머니는 빙긋 웃으며
“바라만 봐도 가슴 미어지는 불쌍한 애들을 내가 무슨 수로 혼내냐... 너희 사라지고 나서 내 눈앞이 정말 노래졌어. 너희 엄마가 알면 미쳐 날뛸 텐데, 애들 잃어버렸단 말을 어떻게 전하나 싶어 속이 다 타들어 갔지.”
할머니는 목소리를 슬쩍 낮추더니 내 귀에 대고 소곤거리기 시작하셨다. 남 욕을 할 때면 나오는 할머니만의 오랜 버릇이다.
“그날 옆집 세미네 너희 찾으러 갔더니, 세미엄마가 그제야 실토를 하더라고. 그때 미국서 왔다던 그 잘생긴 남자 말이야. 사실은 새로 얻은 남편, 재혼한 사람이었잖아. 친아빠는 걔 아주 아기 때 사고 치고 교도소 가서 얼굴도 몰라. 그러니 세미한테는 아빠 미국 갔다가 이제 온 거라고 거짓말을 한 거지. 그런데 그 미친 여편네가 왜 애먼 남의 아빠까지 미국에 있다고 해서 그 사단을 만든 건지... 에라 XX “
할머니는 시원하게 욕을 내뱉으시더니 다시 내 손을 꽉 잡으셨다.
“그날 온 동네 사람들이 너희 찾으러 사방팔방을 뛰어다녔어. 경찰에 신고하려던 찰나에 네 삼촌이 석이를 업고 들어오는데, 아이고 맥이 풀려버리는 줄 알았어. 이것아! 비행기랑 제일 가까운 곳이 산이라 거기 갔을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 못 했는 데 막둥이 그 녀석 참 .. 그 어린것들이 얼마나 아빠가 보고 싶었으면 그랬을까 싶어 밤새 눈물만 나더라.”
할머니는 다시 한번 주변을 살피더니 아주 작게 속삭이셨다.
“그런데 그거 아니? 그 세미 아빠라던 미국서 온 제비 같은 놈 말이야. 그거 알고 보니 사기꾼이었잖아! 애들 앞에서 아빠 노릇 하며 사기 칠 때부터 내가 알아봤지. 결국 세미 엄마 돈 들고 튀어버렸잖니.”
그 이야기를 들으니 세미가 아빠가 잠깐 있었지만 다시 사라진 것도 기억이나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졌다.
우리가 삼촌이랑 산에서 내려온 뒤, 동네의 공기가 묘하게 달라졌다. 어느 날부터인가 동네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우리 남매에게 유독 다정하게 굴기 시작했는데 특히 아저씨들의 태도가 눈에 띄게 변했다.
슈퍼 앞을 지나갈 때면 아저씨가 우리를 급히 불러 세워 냉동고에서 제일 비싼 아이스크림을 꺼내 쥐여주었고, 중국집 아저씨는 우리가 나타나면 묻지도 않고 짜장면 한 그릇을 척척 내어 내주며 먹였다. 문구점 아저씨는 우리가 뽑기를 할 때면 좋은 장난감이 나올 때까지 두 번, 세 번 공짜로 판을 돌리게 해 주었다.
단순한 친절이라기엔 조금 자연스럽지 못하게 과했고, 마치 온 동네 어른들이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는 기분 들었는데 요샛말로 **'공동 육아'**느낌이였다.
워낙 깐깐하고 깔끔한 성격인 할머니 덕분에 우리 남매는 늘 깔끔했고 겉보기에 구김살이 없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우리에게 그런 가슴 아픈 사연이 있는지 잘 몰랐던 모양이다.
하지만 ‘비행기 산 사건’ 이후, 아빠를 부르며 산을 헤매던 어린 남매의 이야기가 골목마다 퍼져나갔고, 우리는 본의 아니게 온 동네 어른들의 ‘눈물 버튼’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어떤 아저씨들은 우리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심스레 말했다.
“미뇽아, 아빠가 보고 싶으면 이 아저씨를 아빠라고 생각하렴. 언제든 말이야.”
온 세상이 우리를 특별대우 하는 거 같았는데 할머니는 말하셨다.
“그 산에서 네 아버지가 너희 목소리를 들었던 게 분명해. 너희가 밖으로 나갔다 하면 두 손에 먹을 게 가득 들려 들어왔잖니. 다들 넉넉지 못하던 시절인데도 동네 사람들이 뭐든 사서 너희 손에 쥐여 보내곤 했어. 우리 집에 몰래 쌀 포대를 두고 가거나, 문틈에 돈을 꽂아두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지.”
할머니는 젖은 눈가로 미소를 지으며,
“다 네 아버지가 도운 것 같아. 자기는 곁에 없으니, 동네 사람들 마음을 빌려서라도 자기 새끼들 배 안 고프게 돌봐달라고 하늘에서 손을 쓴 거지. 그렇게 온 동네가 너희를 같이 키웠단다.”
아빠는 미국에서 돌아오지 않았지만 , 아빠가 보낸 사랑은 온 동네에 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