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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드로 Dec 10. 2023

EP.06 우리의 세 번째 여행, 괌(1)

일본? 그 돈이면 괌을 가지.

그녀: "오빠, 우리 일본 여행 갈까? 매번 여행 가자고 했는데, 지금 안 가면 못 갈 것 같아서..."


나:"그래, 어디로 갈까? 일본도 좋은데, 괌은 어때?"


2023년 어느 봄,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던 길에 여행이야기가 나왔다.


그녀는 반복되는 야근에 지친 듯 보였고, 회사에 처우개선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감정적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듯했다.


물론, 난 취업을 하지 않아서 직장인만큼 그 감정은 모르지만, 주위가 다 직장인이라 그런가 직장인들의 언어에 굉장히 익숙해서 그녀의 상황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여행을 가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고, 나는 좋다고 했다. 사실, 그때 내 통장잔고는 결코 좋다고 말할 수 없었는데, 그때 당시에는 어떻게든 모으면 되겠지 라는 생각이었다.


우리는 처음에는 그녀가 오사카 또는 도쿄를 가고 싶어 해서 일본을 위주로 알아봤는데, 거리 대비 너무 비행기값이 비쌌다.(어쩌면 나한테만 비쌌을지도...?)


그래서 나는 다른 나라들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괜찮은 나라를 찾아보던 도중 괌을 알게 되었다.


괌은 미국령이라 언어 문제도 없을 듯해 보였고, 휴양지느낌이라 좋을 듯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너무 나의 의견을 어필한 점이 그녀에게 미안하다.


어쩌면 그녀는 일본을 정말 가고 싶어 했을지도 모를 일인데, 그때 나는 그녀를 배려하지 않았다. 적어도 겉모습은 배려하지 못했다.


그녀에게 괌에 가면 내가 전문 통역사를 해주겠다, 여기 가면 바다도 예쁘고 명품도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 신혼여행 느낌 나서 좋지 않으냐, 라며 그녀를 설득했고 우리는 괌에 가는 비행기를 예약했다.


나는 당시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그녀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서 우리는 각자의 일이 끝나면 인천공항 터미널에 있는 캡슐호텔에서 묵기로 했다.


나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진정시키며 집으로 튀어가서 캐리어를 챙겨서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아마 지하철을 타고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터미널의 캡슐호텔에 짐을 맡기고, 환전을 하러 밖에 나갔다. 그대 환전한 돈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200~300불 정도 됐던 것 같다. 


당시 나는 개발자 국비 수업을 신청해야 했기에 근처 카페에 가서 지원서를 작성하고, 영화를 보면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연애를 하면서 항상 이 시간이 제일 길었다.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고 집에 가는 시간보다, 그녀를 기다리는 시간이 제일 느리게 지나갔다.


"왜 이렇게 안 나와!!! 아오!!!" 이런 느낌이 아니라, 그녀를 아마 조금이라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녀가 공항에 오려면 아직 한참 시간이 남은 상황, 정말 시간이 너무너무 안 가서 한숨 자고 있을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역시나 잠은 오지 않았다.


어느덧 저녁이 되었고, 그녀에게 잘 오고 있느냐고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 상황, 걱정이 됐다. 내가 평소에 전화를 많이 걸어서 중간중간 전화를 못 받는 경우는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그녀는 항상 메시지로 무슨 상황이라며 설명해 주었기 때문에 불안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때는 별 말없이 전화를 받지 않았기에 많이 불안했다. 너무 불안해서 온갖 생각이 다 들어서 그녀의 주변지인에게 대신 전화를 걸어달라고 부탁해야 되나, 싶었다.


다행히 그녀는 제 때 전화를 받았고, 나는 그녀를 보러 지하철역으로 총총 달려갔다. 그녀를 만나서 예전 국회의원의 노룩 패스 장난도 치며 우리는 손을 잡고 숙소로 갔다.


아침에 일어나서 우리는 그녀가  인터넷 면세점에서 주문한 각종 비타민(오쏘몰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과 다른 화장품들을 챙겨서 아침식사로 간단하게 일식을 먹고 비행기를 타러 갔다.


4~5시간 정도 비행 끝에 우리는 괌에 도착했고, 짐을 찾고 입국 심사를 받으러 갔다.


미국인을 보자, 여기서 나의 영어실력을 보여주겠다,라는 자신감이 넘쳤고 나는 당당하게(?) 입국심사장으로 갔다.


가뿐하게(?) 입국 심사를 마쳤는데, 그녀가 내 뒤에서 오는 것을 보고 입국 심사원이 


"Give me your wife's Passport too."


라고 말했다.(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녀를 Your wife라고 했던 것은 맞다).


이상하게 가슴이 먹먹해졌고, 그 순간에는 정말 그녀와 가족이 된 듯하여 기뻤다. 


들뜬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해 어설프고 억누르며 공항 밖으로 나갔는데 


우리를 맞아주는 것은 열대야 날씨의 스콜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이 글을 쓰는 것이 평소 업로드 주기보다 오래 걸린 이유는 전의 에피소드에서 말한 이유와 비슷하다.


그녀와의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시리도록 아팠다.


나는 그때를 떠올리면 여러 가지 감정들이 나를 아프게 한다. 


그때 그녀에게 좀 더 잘해주지 못한 점, 조금이라도 더 웃게 해 주고, 조금이라고 더 편하게 해주지 못한 점과 경제적으로 그녀에게 의지한 점 등등 후회들이 날 아프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적는 이유는 지금 이 글을 적지 않으면,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에 나에게 좋은 기억들만 내가 나중에 기억할 것 같아서이다.


재회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적지는 않았다. 마음 한편에서는 그녀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내 미래였으면 하지만, 그 감정이 타자를 치는 내 손가락에 묻어나지는 않았다.


단지, 내가 조금이라도 그때의 기억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을 때 적어두는 것이 최선일 것 같아서 슬픈 드라마 ost를 들으며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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