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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드로 Dec 19. 2023

EP.08 우리의 세 번째 여행, 괌(3)

그녀:"오빠 난 물에 안 들어갈게, 오빠 혼자 들어가"


나:"그래? 알겠어"


다음날, 우리는 예약한 크루즈투어를 떠났다.


돌고래도 보고, 선상에서 마련한 참치와 크래커도 맛보고, 손낚시도 즐길 수 있는 투어였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강력한 시련이 있었으니, 바로 날씨였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나갈 채비를 했다. 래시가드를 입고, 그녀는 급하게나마 화장을 하고, 셀카봉을 챙기고 부랴부랴 준비를 해서 겨우 차시간에 맞춰서 도착할 수 있었다.


다른 한국 사람들도 그 차에 타있었는데, 우리는 차를 타자마자 "아 수건!"을 외치며 가져오지 않음을 깨달았다.(근데, 가져왔어도 큰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워낙 비가 몰아쳐서)


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 요트장으로 갔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상태로 배는 출발했다.


막상 배를 타고 좀 나가니, 날이 좀 풀려서 낚시를 하고 돌고래를 볼 때에는 그나마 좀 잘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날씨 탓이었는지, 표정이 그리 밝아 보이지는 않았는데, 돌고래를 보고 나서는 다시 그 아이 같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돌고래를 보고, 나는 바닷속에 들어갔다가 소금물이 너무 짜서 바로 튀어나왔다. 그때 그녀는 물속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 부분에서 나는 서운함을 느꼈었다. '그녀도 물에 들어왔으면 좋았을걸...'이라는 마음에서였다.


이런 마음을 품었다는 것 자체가 내가 연애를 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보트 투어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는 맥주와 크래커를 먹었는데, 그때 나는 그녀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날씨가 좋지 않아 더 잘해주지 못함이 아쉬웠고,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원래 난 항상 어디갈때에는 날씨가 기가 막히게 좋은 편이었는데 그때에는 아니어서 그랬나 보다.


보트 투어가 끝나고 우리는 다시 호텔에 들어가서 씻고 래시가드를 다시 비닐 속에 넣어서 캐리어에 처박아두었다(이는 후에 큰 문제를 일으킨다...)


그 후 우리는 괌의 한 쇼핑몰로 이동해서 본격적으로 쇼핑을 즐기기 시작한다.


괌은 한국에서는 비싸게 파는 물건들을 비교적 저렴하게 판매 중이었고, 당시 그녀는 무지막지한 야근을 병행하며 어느 정도 자본(?)을 충전해 온 상황이었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그녀는 이곳저곳을 누비며 쇼핑을 즐겼고, 나는 그 모습이 참 보기가 좋았다. 결국 그녀에게 준 것은 반복된 거짓과 무책임한 모습이었지만, 그녀가 천진난만하게 웃는 모습이 좋았다 나는.


우리는 이곳저곳을 누비며 쇼핑을 즐겼고, 그때 그녀는 나에게 2~30만 원어치 바람막이가 예뻐 보인다며 사준다고 하였으나 나는 한사코 거절했다. 자신 있게 독자 여러분께 난 뭔가를 받는 걸 싫어해서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종종 나는 그녀에게 카페기프티콘을 뻔뻔하게 요구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건 아닌 것 같고, 그런 거금(?)을 들여서 그녀에게 선물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아마 내 열등감 때문이었으리라.


그녀는 코트 1개, 니트 몇 개를 사고 우리는 쇼핑을 마치고 기분 좋게 쇼핑몰을 나왔다.


원래 우리는 쇼핑몰에 들렀다가 근처 스테이크집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밖에 나와보니, 날씨가 너무 좋았다. 우리는 고민을 많이 했는데, 나는 그녀에게


"스테이크 집은 언제든지 갈 수 있지만, 지금처럼 날씨 좋을 때 해변 가서 예쁜 사진 찍으면 좋지 않을까?"


라고 말했고, 그녀는 좋다고 대답하였다.


우리는 해변가에 가서 여러 사진을 찍었고, 나는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지는 않아서 그녀의 사진을 많이 찍어주었고, 그녀가 흡족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해변가에서 서로의 사진을 열심히 찍어주고, 나는 그곳에서 그녀를 들고 사진을 한 장 찍었는데, 아직도 그 사진을 가지고 있다. 풍경도 예쁘고 그 사진은 지우기 아쉬웠다. 나의 잘못과 별개로 그 사진은 꽤 오랫동안 보관할 듯하다.


그 후 우리는 해변가 근처의 식당에서 가볍게 에일(아니면 맥주였나)에 소시지 튀김? 감자튀김 같은 안주를 시켜서 가볍게 먹고 다시 숙소 근처에서 주전부리를 산 다음 호텔에 와서 또 가볍게 식사를 하고 잠들었다.


나는 그런 데이트가 좋았다. 가볍게 산책하고 좋아하는 사람의 눈을 보고 그 사람을 사랑스럽게 쳐다보는 것. 그때 당시에도 그것이 행복인 것은 알고 있었다.

과거에도 알 정도였으니 얼마나 큰 행복이었겠는가.


그렇게 괌에서의 두 번째 날이 지나갔다.




글을 쓰면서도 그날의 기억이 흐려져 가는 것 같아 슬프다.


망각은 신의 축복이라고 한다. 어느 정도 망각은 하겠지만, 몇몇 기억들은 나에게 많이 남아있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3년 동안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30년이 지나도, 과장 조금 더 보태서 환생이 있다면 생이 몇 번 반복되더라도 영혼에 새겨져 있지 않을까.


글을 쓰고 나서 항상 그 뒤에는 나의 감정들을 이렇게 적는데, 맨 정신으로는 적기가 힘들어 드라마의 일부분을 틀어놓고 이어폰으로 대사를 듣거나 ost를 들으며 적는 중이다.


하루하루 많은 생각들이 날 헤집어 놓는데, 글을 쓰거나 운동을 하고 나면 새벽녘의 안개가 해를 만나 갠 듯이 맑아진다.


남은 것은 나의 괴로움과 그녀에 대한 그리움.


요새 많은 SNS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보면 나의 모습을 많이 반성하게 된다. 최근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욕하는 남자의 모습을 보았다.


나 또한 그런 적이 없던 것은 아니다. 그녀가 설령 이 글을 보더라도 이 부분은 적어놓으려고 한다. 나 또한 군대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는 후임에게 한탄하기도 했고, 전역을 하고 나서는 그녀와의 문제(사실 내 진로, 반황문제였지만)를 친한 친구에게 털어놓고는 했다.


항상 나는 잘못을 저지르고 반성하는 것은 잘했다. 하지만 오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반성하는 나 자신의 모습을 좋아해서 반성 자체의 행동에 취해있었구나, 다른 사람은 반성조차 안 하는 사람이 많은데 나는 반성하니 좋은 사람이구나, 하는 우월감을 느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발전이 없다. 반성을 했으면 그런 행동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하며, 그것이 점점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며 진정한 변화가 이뤄지는 과정이다.


나는 살면서 수십만 번도 넘는 실수를 했고, 또 얼마만큼의 실수를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반성하는 나에게 취하는 우월감보다는 나 또한 한낱 인간임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살아가려고 한다.


나의 괴로움은 내가 감당할 수 있지만, 그녀에 대한 그리움은 감당하기가 벅차고, 눈물이 눈물샘까지 마중 나왔다가, 다시 목구멍을 삼킬 때 들어가고, 어느새 내 심장에 도달한다.


나는 오늘도 내가 만든 프로젝트를 완성시키려 공부를 했고, 그와 더불어 대학원 논문 발표 또한 준비를 했다. 내일도 아마 비슷한 일상이 펼쳐지겠지.


그녀에 대한 생각은, 보고 싶고, 우주가 다시 재창조되는 수준의 기적이 나에게 찾아오기를 바라지만, 한편으로는 심장이 찢어질 듯이 아프지만, 그녀가 성숙하고 그녀만을 바라봐주는 남자를 만나 모든 걸 잊고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내가 그리워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불행을 바라는 것은 결코 내가 바라는 모습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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