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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드로 Jan 04. 2024

EP.10 우리는 어떤 인연이었을까

세상의 모든 인연들이 그랬듯이, 결코 평범하지는 않았지.

그녀:"오빠 잘 지내?"


나:"이것저것 하면서 지내 (대충 바쁘게 지낸다는 내용)"


2022.12.xx, 무슨 요일이었는지는 까먹었는데, 아마 12월 초중순이었을 것이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아마 11시쯤에 카톡이 왔고, 나는 어딘가로 가고 있던 중이었다.


버스정류장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답장을 했었지.


그렇게 우리는 강남역 1번 출구 앞 스타벅스에서 만났고, 그때 그녀를 기다릴 때 나는 또 이상한 콘셉트를 잡겠다고 아이패드로 넷플릭스를 보고 있었다. 계속 출구 쪽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대화 끝에 다시 만나기로 결정했고 약간의 적응단계를 거친 뒤에 다시 전처럼 지내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는 진정한 재회가 아니었지.


진정한 재회란, 서로가 서로를 용서할 기회를 주고, 헤어짐의 원인이 된 문제를 해결한 상태에서 이뤄지는 것인데 나는 그저 다시 만나고 싶었을 뿐이었고, 나에게 닥친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할 의지가 없었다.

계속 그 문제에 매몰되서 글을 쓰면 반성문뿐이 되지 않으니 이 이야기는 그만해야겠다.


우리는 남들이 볼 때는 잘 어울리는 연인이라고 했다. 막상 연애를 할 때는 이런 생각 자체를 안 했던 것 같은데, 이별을 하고 나니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네.


나는 연애를 할 때 뇌를 비우고 연애를 한 것 같다. 그저 잘해주고 싶었고, 이기주의에서 비롯한 이타주의가 내 연애를 대변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연애 초기에는 많이 삐걱댔다. 그런와중에도 뭔가 그녀와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안정감이 있었으며 마치 그녀와의 관계는 바다 같았다.


비가 와도, 파도가 쳐도, 폭풍우가 온다고 해도 젖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 바다이며, 언제 그랬냐는 듯이 따스한 햇살을 비추며 아름다운 장관을 선물하는 것이 바다이다.


그래, 우리의 연애는 바다 같았고, 어쩌면 우리의 관계는 돌고 돌아 남극과 북극에 이르렀을지도 모르지.


연애 초기에 그녀는 22년 만에 솔로를 탈출해서 온몸이 도파민에 지배당한 나를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뺐다.


틈만 나면 그녀를 보러 가려고 했으며, 과 동기들은 저 오빠가 드디어 미쳤구나,라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동기들과 있었을 때에도 그녀가 부르면 시위를 떠나는 화살처럼 휭 하고 뛰쳐나가기 일쑤였고, 동기들은 별 신경을 안 썼던 건지 아니면 나에게 그만한 기대가 없던 건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한 예로 내 자취방에서 그녀의 집까지는 걸어서 30~40분가량 걸린다. 참고로 내 어머니는 걸음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빠르신 분인데, 20대조차도 어머니의 걸음속도가 빠르다며 버거워할 정도이다. 우리 삼 남매는 이런 어머니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어려서부터 빠른 걸음걸이를 하게 되었으며 이는 그녀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다.


나는 10시에 수업이 있고 그녀는 9시에 수업이 있다면 나는 7시에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그녀의 집까지 걸어갔다.(누가 보면 미친놈이라고 할 정도의 거리였다).


그녀의 집 앞에서 그녀를 학교로 데려다주고 나는 다시 내 단과대로 가는 날이 이어졌다. 이때 그녀의 집 앞에서 몰래 기다리던 날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지금 생각하니 좀 아리긴 하네.


그렇게 우리는 서로 시간을 쪼개며 잘 지냈다. 한 번은 그녀 덕분에 소름이 돋은 기억도 있다.

 

나는 귀신을 무서워하는 편이다. 


잠을 잘 때에도 침대 밑을 보기 무서워하며,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자는 것은 나에게는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것을 요구하는 일이다. 오죽하면 꿈에서 귀신이 나와서 깼는데 옆에서 자는 동생이 형 자다가 비명 지르고 땀 흘리면서 깼다고 한다.


그날도 그녀에게 잘 자라고 말하며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밤에 누군가가 우리 집 비밀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옆집 사는 여자분이 술을 먹고 헷갈려서 가끔 그런 일이 있었기에 나는 그러려니 하고 다시 침대에 누워서 잠을 청했다.


"띠리리~철컥"


문이 열렸다.


나는 이불속에서 "X발 X 됐다. 누구지? 강도인가? 급소를 때려야 하나? 얼마 정도 때려야 정당방위지?"라는 생각을 하며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이불을 건들면 그 즉시 때리고 도망갈 생각이었다.


실눈을 뜨고 누구인지 봤는데 그녀였다.


그녀가 서프라이즈로 새벽에 내 집을 찾아온 것이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음부터는 말을 하고 찾아와 달라, 방문이 기분 나쁜 것이 아니고 어두워서 정말 널 못 알아보고 때릴뻔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서프라이즈를 정말 잘해줬다. 예를 들면 5.23일이 내 생일인데 5.22일 자정에 선물을 준다거나 하는 소소한 서프라이즈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평범하며 특별한 연애를 이어가며, 아주 조금씩 서로를 알아나갔다.


지금 그녀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을 말해보자면, 그녀는 회사일이 일찍 끝나거나 날씨가 좋으면 지하철을 한 정거장 먼저 내려서 집에 걸어가는 걸 좋아하며, 등산 또한 좋아한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며, 사람 자체를 좋아하는 듯싶다.(물론 그녀도 그녀만의 선이 있다.)


빵을 좋아하며 단것을 좋아한다.


음악은 아이돌 노래를 좋아하지만 노래는 국악느낌으로 부른다. 안예은 노래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미소가 예쁘며, 남자친구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매력이 있다.


자기 관리에 진심이며, 본인의 경제적 상황을 고려한 소비와 투자, 저금에 철저한 사람이다.


본인의 취미생활과 일의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고, 과일은 사과와 귤을 좋아한다. 샤인머스캣도 좋아는 하더라.


종종 내가 가족들과 코스트코를 가서 외국 과자를 사주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다.


젤리는 복숭아젤리를  좋아했고, 다행히 내가 사는 동네 근처에 그 젤리를 팔아서 사다 준 기억이 있다.


고양이를 좋아하며, 동물은 기본적으로 좋아한다.


옷은 블라우스와 청바지를 좋아하며, 블라우스는 귀엽거나 어깨선이 알맞게 떨어지는 옷을 선호하는 편.


청바지는 자주 사지는 않았는데, 한번 사면 꼭 입고 잘 어울리지 않냐며 보여주더라.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편이며, 나와는 세상살이가 좀 달랐다.

내가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은 아니고, 내가 성격이 덤벙대서 지하철에서 가방으로 남들을 치거나 하면 그녀는 즉시 내 행동을 교정하였다.


같이 이야기를 하거나 드라마를 보는 것을 좋아하며, 본인의 정수리 냄새를 맡는 것을 싫어하는 편.

(하지만 절대 난 굴하지 않았지)


불가리 향수를 좋아했으나, 너무 향이 강한 향수 또는 핸드크림을 바르면 싫어하곤 했다.


먹는 것에 진심이며 매운 것을 딱히 좋아하지는 않아서 좋았다. 나도 아무거나 가리지 않고 잘 먹는데, 그녀 또한 그래서 우리는 먹는 걸로는 다툼이 없었다.


다이어트를 할 때면 아보카도를 먹는다.


스트레스는 가끔 코인노래방을 가서 풀었다. 내가 노래를 못해서 나는 주로 가서 그녀의 노래를 들었다.


올리브영이 보이면 항상 들어가서 화장품을 테스트해보고는 했다. 그러나 오프라인으로 구매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


바닷가를 좋아했고, 여행을 떠나는 것을 좋아했으며 상당히 깔끔한 사람이었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다른 연인들과는 좀 차이가 있다고 느꼈던 게, 장소를 가리지 않고 대화만 할 수 있다면 그곳이 데이트 장소가 되었다.


새해가 되고 나서 연재를 처음 하는데, 지금 나는 내 감정상태를 모르겠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그저 내 마음속 한편에 자리 잡은 예쁜 그림이 돼 가는 게 아닐까 하다가도, 어느새 그림은 밖으로 나와 내 안을 가득 메운다.


그래서, 누군가가 아직도 그녀가 그립냐고 묻는다면, 일상의 대부분을 그녀를 그리워한다고 대답한다.


그게 진실이니까.


그녀가 다른 사람을 만난다면 그때는 마음속의 그림이 뛰어나오지 못하게 못질을 해놓지 않을까 싶다.


감정을 정리하려고 하지만, 나는 이제는 그러지 않고 그저 바라보려고 한다. 정리되지 않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정리를 하려다 보면 더 어질러지기 마련이니.


다음 에피소드는 그녀의 빌런 직장상사에 대해서 다뤄보려고 한다.


그 빌런분은 이제 와서 보니 마르지 않는 그녀와의 대화소재를 제공해 줘서 좋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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