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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드로 Jan 07. 2024

EP.11 나의 이야기

이건  나의 이야기이다.

-그만 살고 싶다-


나는 항상 힘들면 죽음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의 이야기를 하려면 나의 주변환경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리고 나의 행복했던 시절들도 이야기를 해야 한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때 행복했다.


그때 우리 가족은 지금과 같은 생활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아버지는 공무원 생활을 하며 5명의 가족을 이끌어가야 했고, 당연히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그때 당시 나는 태권도 학원에 가고 싶다며 떼를 썼지만 부모님은 보내주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부모님께 죄송하다.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을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자식이 하고 싶은 게 있다는데 돈이 부족해서 못해준다면 얼마나 비참하겠는가. 나는 유사한 감정을 전 연인을 통해 느꼈다. 그녀는 나에게 단 한 번도 무언가를 해달라고 한 적은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항상 그녀의 주변지인들만큼의 경제적 여유를 가지지 못한 점이 미안했다.


아직도 기억난다. 지금은 우리 가족은 모두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침대에서 자지만 그때 우리 가족은 5명이 좁은 거실에서 이불을 덮고 자는 것이 일상이었다.


아버지가 직종을 바꾸시면서 우리는 더 넓은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그 때문에 나는 전학을 가게 된다. 그렇게 멀리 있는 아파트도 아니었는데, 왜 전학을 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나는 전학을 가기 전에는 정말 행복했다. 항상 반에서 보는 시험에서는 만점을 받았으며 반장을 하며 즐거운 생활을 이어나갔다. 어쩌면 그곳에서 생활을 이어나갔다면 어쩌면 전교회장까지 노려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빠지곤 한다.


-갑자기 찾아온 위기-


나는 갑작스럽게 이사 간 곳과 가까운 초등학교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그때의 초등학교 담임은 정말 내 인생에서 최악의 사람이었다. 어쩌면 나의 모든 단점들은 그때 생성된 게 아닐까 하기도 하다.


피부가 안 좋은 나는 걸을 때마다 다리의 상처가 찢어져 부모님이 날 자전거로 데려다주셨는데, 그때는 다리뿐만 아닌 얼굴과 목, 팔에도 아토피가 가득했다. 그때 그 담임(X 년이라고 부르겠다. 정말... 나쁜 사람이었다)은 날 그 반에서 공주 같은 여자아이와 앉혀놓고 대놓고 꼽을 주고는 했다. 같은 반아이가 아닌 X 년이 그랬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일기장을 못 써왔다고 날 사물함에 집어던진 기억도 있다. 그때에 내가 불쌍하다. 얼마나 놀랐을까, 전학 가기 전에는 학교생활이 즐겁고 그 어느 누구도 두렵지 않은 생활이었는데, 가족의 경제형편은 조금 어려웠어도 행복했는데 전학을 오고 나서 나는 여러 사람의 눈치를 보며 살게 되었고, 점점 더 망가져 갔고, 결국 찐따, 그때 당시 왕따라는 타이틀 또한 얻게 되었다.


전학이 학교에서의 나를 바꿔놓았다. 나는 자신감 넘치던 초등학생에서 어떻게 하면 학교에서 비웃음을 사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덜 혼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동급생들에게 잘 보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내 안에 박혔다. 그런 말이 있다.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이 상황에 쓰기에는 애매하지만, 나는 왕따를 당하지 않기 위해 모든 행동들이 부자연스럽고 광대 같은 행동을 반복했으며, 오히려 그 행동들이 날 더 구석으로 몰았다.


중간중간 행복했던 기억들도 물론 있지만, 아직도 나는 전학을 가지 않았다면 하는 생각도 든다.


나의 관심을 갈구하는 성격이 이때 생성되었을 것이다. 그 전의 나는 나 자체로 사랑받았는데, 그러지 못하니 다른 행동으로 사랑을 갈구하게 되었다. 이 성격은 나의 모든 인간관계에 독이 되어 하나하나 썩어 문드러지게 하였다.


-미운 오리 새끼-


나는 그런 성격을 가지고 유소년 기를 보내기 시작했고, 당연히 쉽지 않았다. 정말 좋은 사람들은 나를 꿰뚫어 본 것인지 아니면 나를 믿어준 것인지, 나의 어떤 행동에도 불구하고 나를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와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들은 다 오래된 편이다. 중학교, 초등학교 친구들이 주로 전부이다.


사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불안하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과거의 어리석은 나 자신이 전부 벌인 선택의 결과이며, 내가 주위 환경을 탓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날 옥죄어온다.


하지만 내가 괜히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거고 과거의 경험이 날 만드는 것은 분명하니 계속 적어보려 한다.


차라리 학교에서 그렇게 광대짓을 하고 집에서는 그런 행동을 안 했다면 다른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나는 집에서도 주변인들의 관심을 갈구하기 시작했고, 가족들은 그로 인해 피곤해하는 모습을 종종 보이곤 했던 것 같다.


내 부모님, 누나, 남동생뿐만 아닌 친가, 외가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나는 관심을 갈구했고, 나 자신에 대한 투자보다는 당장의 관심이 우선이었다.


관심받지 못하면 또 초등학교 1학년때처럼 버림받고, 길가에 나뒹구는 쓰레기 같은 대우를 받을 것 같았으니까.


나는 그렇게 점점 관심을 갈구하는 외톨이가 되어갔고, 아파트 옆집 여자애가 내 누나한테 내가 찐같다며 나랑 놀기 싫다고 했던 말까지 듣게 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서 생각했었고, 그때 내 나이는  15살이 되지 않았다. 그때에는 죽는 것이 너무나 도 두려웠고, 뭐, 지금 생각하면 그때 자살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그때 죽었다면 그녀도 만나지 못했었겠지.


나에게 생존본능과 희망은 항상 같은 것이었다. 너무 힘들고 지옥 같은 하루가 반복될 때마다 미운오리새끼 이야기를 떠올리며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멋지게 날아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죽음을 미뤄놓았다.


-엘리트 집안의 공부 못하는 장남-


나는 우리 집안전체에서 공부를 제일 못한다. 친가기준이며, 외가에서도 결코 잘하는 편은 아니다.


버거웠다. 관심을 갈구하기는 해야겠는데, 나의 상태는 결코 관심을 갈구할만한, 또한 주변인들이 보기에 결코 관심을 줄만한 사람도 아니었음을 안다.


그래서 나는 점점 겉돌기 시작했고, 성적은 점점 더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항상 마음속에 결핍이 있었고, 아직도 있다. 나도 가족들처럼 1등도 하고, 가족들 사이에서 당당하게 살고 싶다,라는 결핍은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가 내 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뭔가 그래야 할 것 같았고, 그래야 내가 가족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으며 남들처럼 당당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에 들어가는 길은 나에게 어느에서부턴가 그리 편하지 않게 되었다.


-넌 내 모든 걸 바꿔놓았다, 그러나 결핍은 그럼에도 날 떠나지 않았지-


그녀와 사귀기 시작하고 나서, 나의 결핍은 숨어들었다. 어쩌면 내가 또 어디 깊숙이 처박아둔 걸지도 모르지.


그녀는 내 초등학교 1학년때의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어쩌면 그게 내 연애의 문제였을지도, 내 결핍은 다른 방법으로 메꾸거나, 그 결핍마저 나의 일부임을 알아주고 받아들였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그녀를 이용해서 내 마음속의 구멍을 메웠다.


창호지에 뚫린 구멍을 손가락으로 급히 막은 것처럼.


그녀에 대한 마음은 그대로지만, 나 또한 인간이기에 내 마음속에 속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그녀가 언제까지 내 결핍을 메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테고, 내 결핍을 내가 받아들였을 텐데.


그녀와 연애를 할 때에는 마치 환각 속에 사는 것 같기도 했다. 대학교를 다닐 때 그녀와 함께 지내는 날은 항상 행복했으며, 그녀가 날 좋아해 주는 눈빛은 아직도 잊지 못했다. 아마 나는 정말 내가 약속한 시간을 넘어서 그녀를 그리워할 것이며, 그녀를 왜 좋아했는지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 하겠지만 결코 찾지 못할 듯싶다.


이유가 없기도 하였으며, 답을 찾기도 싫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데에 이유가 생기면 그 이유는 언젠가 사라질 수도 있으며, 그 이유를 부정하면 그 사람과의 기억도 부정될 테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왜 내가 이별을 반복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창호지를 막은 손 가라은 연애를 하는 기간 동안 빠지거나 미끄러지기 일 쑤였으며 그때마다 내 결핍의 구멍은 찬 바람을 나에게 선물했고, 나는 그 결핍을 막으려고 계속 급하게 막으려고 했고, 잘 막히지 않자, 그녀만이 내 결핍을 채워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녀는 내 결핍의 감정은 메꿔주었다. 결핍 그 자체는 남았지만.


그렇게 결핍의 구멍은 막혔다가, 뚫렸다가를 반복 헸다.


이제 나는 구멍 뚫린 문은 그대로 놔두고, 새로운 문을 만들기로 했다. 구멍 뚫린 문이라도 어느 정도 제 기능은 할 것이며, 새로운 문은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더 튼튼한 문이 되어 날 지켜줄 것이다.


그 문이 나만을 지켜줄지, 아니면 내 옆에 있어도 되는 그 사람을 지켜줄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이게 정말 내 이야기의 끝일까-


이 이야기는 아주 조금 문맥이 어색한 부분만을 제외하고 나서 별다른 수정 없이 발행할 듯하다. 몇 단락의 글들이 내 인생을 전부 말할 수는 없지만, 설령 1만 단락의 글을 적는다고 하더라도 내 이야기를 담아낼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이 정도면 나의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도 좋을 듯하다. 이 이야기는 3년 동안 연재할 테니 종종 나의 이야기는 할 시간이 많을 테니 여기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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