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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드로 Jan 09. 2024

EP. 12 그녀의 이야기

내가 보는 너는 이랬는데, 이게 네 모습이 맞았을까

그녀:"오빠 학교 쪽문 운동장에서 산책할래?"


나:"그래, 나 걷는 거 좋아해 금방 갈게"


우리는 2017년 3월에 만났고, 너는 동아리 홍보부장이었다.


아마도 내가 너한테 처음 날린 톡은 


"안녕하세요, 동아리 XXX입니다. 동아리 엠티 회비 관련 문의 때문에 연락드렸어요"


이거였겠지.


1학년때 처음 보는 널 보고 나서 첫눈에 반하지는 않았다. 사실, 난 누군가를 보고 첫눈에 반한사람은 없다. 점점 지내다 보면 좋아지는 유형이다 나는. 


네 눈에 나는 어떻게 보였을까, 나는 사귀기 전에 너와의 모습을 여러 가지로 기억한다. 너는 내 생일파티에 와주었고, 내가 잔 제의 문구를 알려달라고 하자 센스 있게 조용히 알려주었다.


너는 연구실 오빠가 맘에 든다고 나에게 종종 말하곤 했고, 너는 그때 당시 과에서 좋아하던 남자애가 있었다. 너는 학교연못에서 찍은 셀카를 별스타그램에 회색 필터를 씌우고 올렸으며, 노래방에 가면 항상 안예은 노래를 부르거나, 알리의 지우개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때 당시 사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어쩌면 이렇게 적는 것도 방어기제일 수도 있다. 마치 여우가 신포도를 보고 하는 생각처럼 "나 그렇게 너 안 좋아했어"라고 말하고 싶은 걸지도.


너는 그해에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할 때쯤 나와 연락을 많이 이어갔다. 그때 당시 나는 너와 친한 형이랑 함께 많이도 어울렸었다. 항상 노래방에 가서 나는 윤건 노래와 정준일의 고백, 안아줘 노래를 부르곤 했지. 그때 네가 그 형과 듀엣으로 종종 부르던 새벽 가로수길은 내가 유럽여행을 갈 때도 따라와서 파리, 뮌헨, 알프스의 기찻길에서도 나와 함께했다.


특히 베니스에서 듣던 그 노래가 기억이 난다.


그 당시 너는 좋아하던 남자애에게 마음을 비슷하게 연락을 했지만 잘 안되었다고 했고, 우리는 어쩌면 비슷한 처지라고 생각해서였을까 서로가 많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유럽여행 도중, 너는 나한테 플러팅? 아니면 대시?를 했는데(어쩌면 나의 착각일지도) 기억나는 말은 만우절에 우리 사귄다고 올리자, 라거나 같이 벚꽃놀이를 가자라고 말하곤 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도 '아 그냥 친하니까 하는 말이겠지. 기분은 좋지만 얘가 날 좋아할 리 없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너의 고백제안?을 계기로 사귀었는데 나중에 너는 나에게 그랬다. 오빠는 절대 고백 안 할 것 같았다고.


맞는 말이다. 나는 고백은 잘 못하는 타입이다. 벙어리는 아니지만 내 마음을 이성에게 고백하는 것은 항상 힘들다. 쑥스럽기도 하고.


우리는 스킨십하는 것도 엄청 조심스러웠다. 당연히 나는 motae-solo여서 그랬고, 그녀도 연애경험이 많지 않아서 그랬겠지.


내가 너네 집 앞 가로등 아래에서 추웠던 그날, 서로 눈을 마주하고 처음 입맞춤을 시도하던 날, 너의 눈아래에 입맞춤을 했는데 너는 집에 가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색하고 귀엽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하 이 오빠 진짜 숙맥이네"라고 생각했을까.


같이 수업을 빼고 부산여행을 갔던 날, 너는 머리에 푸른색 리본을 매고, 푸른색 원피스를 입고 배경이 좋은 곳에서 뒷모습을 찍어달라고 했다.


너는 그때 행복했을까? 이제야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그때 나는 행복에 파묻혀 너의 감정은 생각하지 않았다. 상대방을 너무 좋아하는데, 그 사람입장에서 고려하는 것을 너무 늦게 배웠을 지도.

어쩌면 그만큼 너한테 미쳐있었는지도 모르지.


군에 있을 때 너는 나한테 인터넷 편지를 매주 써줬다. 그때에도 나는 손 편지를 써주지... 라며 아쉬워했는데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그런 생각을 했나 보다. 아마 손 편지를 써줬다면 면회를 와달라, 선물을 보내달라 했겠지.


너는 내가 군에서 피부병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하니, 내 동생과 연락해서 피부에 좋은 로션을 보내주었다. 고마웠고, 아직도 고맙다.


네 입장에서 글을 쓰려고 하는데 잠시 글을 돌이켜보니 내가 보는 네 모습만 한가득이다. 네 입장을 정 말고 생각하는 건 아직도 어려운가 보다.


너는 퇴근길에 내가 보러 가면 항상 나에게 총총 뛰어오곤 했다. 데이트를 할 때 내가 절대로 길가에서 걷지 말라며 5년 동안 한결같이 배려하는 모습도 좋다고 했으며, 집에 데려다주고 카카오톡 음성메시지로 잘 자라고 남겨주는 메시지도 좋다고 했다. 정말 네가 좋아했을까?


이제는 그답을 영영 듣지도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날 괴롭힌다.


너는 서울의 네 집 앞에서 걸어서 신도림역까지 가는 것도 좋아했고, 종종 맛집을 찾아가는 것도 좋아했다. 근데 내가 길을 찾거나 일처리를 깔끔하게 하지 못하는 점이 많이 답답했을 것 같기는 하다.


너는 네 생얼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네가 화장을 한 것도 물론 예뻤지만, 나는 네 생얼도 좋았다.


내입으로 말하기는 민망하지만 너의 화장하거나 꾸민 모습은 우아하게 아름다웠고, 운동을 하거나 생얼인 모습은 순수하게 아름다웠다. 항상 그렇게 말해주었던 것 같다. 가끔 신발장에서 네 신발을 보고 있자면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신발이 너무 아기자기해 보였으니까.


너는 내가 마사지해 주는 것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너는 학과특성상 목뒤 부분이 자주 뭉쳐있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잘 풀어주면 항상 좋아했었다.


아, 그리고 너는 새절역 앞 벚꽃길도 좋아했었고, 그 근처 닭강정집에서 간단하게 먹을 것을 사서 네 집에 가서 먹는 것도 좋아했었지.


가끔 네 회사 앞에서 네 퇴근시간에 맞춰서 널 기다리는데, 네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무슨 일이 있어서 강남역 근처에 왔거나, 아니면 지금 집이라며 거짓말을 하곤 했다.


회사특성상 널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는 날들이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널 보러 오는 길은 행복했으니 그걸로 됐다는 생각이 든다.


'신촌을 못 가'가 아니고 '신도림을 못 가', '새절을 못 가', '강남을 못 가'를 불러야 하지 않을까 나는.


너는 내가 집에 데려다주는 것을 좋아했었는데, 누가 나한테 여자친구한테 잘해주었냐고 하면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이 난 모든 시간을 그 사람에게 쏟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간을 쏟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내가 강해졌어야 했다는 말이다. 마치 비교를 하자면, 아무 힘도 없는 사람이 자기에게 온 공주를 지킬 수 있겠는가? 자신이 강해져야 공주를 지킬 수 있다. 


나는 그때 내가 바라보는 공주가 좋아서, 나는 신경 쓰지 못했고, 날 단련하는 데에 사용했어야 할 시간을 모두 공주를 보러 가는 데에 사용했다.


어쩌면 나의 모든 시간을 미래의 우리를 위해 사용했다면 이런 결말은 나지 않았겠지.


퇴근하고 양꼬치를 먹는 것도 좋아했으며, 스키 타는 것도 좋아는 했다.




궁금하다. 과연 나는 내 치명적인 3가지의 방황을 빼고 네게 좋은 연인이었을까.


이제는 메아리처럼 울려 퍼질 질문이지만, 너는 내가 너의 주변인간관계로 상처받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을까? 알고 있었고, 네 선에서 최대한 배려했다면 그저 알겠다는 대답만 할 것 같다. 고마웠다...라고는 말 못 할 듯하다. 내 성에 차지는 않았으니까.


너와의 기억은 너무 많고 깊어서, 일일이 다 말할 수 없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또 하나 더 아쉬운 점은, 왜 나는 네 마음을 알아주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궁금하다. 너한테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도 나를 잘 모르지만 나와 누구보다 가까웠던 너는 나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할까는 궁금하다. 그녀와 나를 같이 알고 있는 지인이 본다면, 은근히 그녀에게 이 책을 알려주기를 하는 바람도 생긴다. 네가 이 책을 읽는다면 좋겠다.


하루에도 수천번씩 변하는 내 마음이지만, 결국엔 내가 널 생각하는 마음에서 적은 글이니, 내가 생각하는 너는 이랬다는 것이다.


글을 발행하기 전에, 장기연애한 연인이 헤어지는 영상을 봤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헤어지고 대다수는 다시 만나지 못한다. 하지만 헤어진 연인 둘 다 이별을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경우는 잘 없는 것 같다.


위 글을 쓰며 나는 네가 이 글을 우연찮게라도 보고, 날 지켜보다 내가 결혼할 준비가 되면 나에게 돌아와 주길 바랐지만, 한편으로는 너는 정말 날 정리했을지도 모르는 생각이 들어 이 글에 처음 작성한 말을 되새겨 보려고 한다.


"만나야 하는, 만나야 했던, 만날 수밖에 없던 사이였다면 언젠가 시간이 흘러서 만나게 되겠지"


정말 많은 생각들이 내 손에 자기가 먼저 나가겠다고 소리치지만, 오늘의 내 결론은 

'그리워하자, 수천번도 넘게 깊게 그리워하자, 그렇게 그리워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 사람을 액자에 담고

종종 지켜볼 수 있겠지'

이다.


다음 이야기는 그녀와의 첫 번째 재회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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