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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드로 Jan 30. 2024

EP. 15 잃어봐야 소중한 줄 알지

원래 인간이 그래, 바닥을 쳐봐야 깨닫는 법이야



그녀:"아니 웬 핑크색 옷 입은 할아버지 때문에 운전면허 떨어질 뻔했다니까?"


나:"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핑크색이 잘못했네ㅋㅋ엌ㅋㅋㅋㅋㅋ"


이번주 월요일에 대학원 인턴 면접을 봤고, 교수님께서는 면접을 보고 식사를 하던 도중 같이 일해보자며 합격을 말씀해 주셨다.


너무나도 기뻤다. 누군가는 별거 아난 성취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정말 큰 성취였다.


한 친구가 그랬다. 네가 이번에 준비해서 붙으면 니 삶에서 많은 부분이 달라질 거라고, 네가 뭔가 열심히 준비해서 이뤄낸 경험이 중요하다고.


그 친구는 내 발표 PPT제작도 도와주고 나에게 여러 가지 조언들을 해주었다. 물론 그 친구는 대학원생은 아니고 직장인이라 구체적인 조언들은 아니었지만.


다음 주 금요일에 연구실에 잠시 출근해서 이것저것 세팅하고, 본격적인 출근 준비를 할 듯싶다.


내가 나온 대학보다 더 높은 학교(?)의 병원으로 가게 되어 월급도 상당히 많이 받게 되었다.


같이 인턴을 하게 되는 분이 1분 있을 거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분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너랑 헤어지고 몇 개월이 지나고, 수없이 눈물 없이 잠 못 이루던 밤을 지내고, 고뇌하고, 나를 돌이켜보고 나서야 조그마한 성취를 이루게 되었다. 이 성취를 조금 더 일찍, 너와 함께했을 때 이뤄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운명일지도.


이제야 한걸음을 내디딘 기분이다.


뭔가가 이루어질 것만 같은 기분인데, 널 떠올리면 막상 그렇지만도 않았다.


널 내 목표와 최대한 떨어뜨려놓으려고 많이 노력 중이다. 네가 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미 내 머리에 속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며 나는 나를 완전히 믿지는 않는다.


네가 내 목표가 되면 나는 '우리'를 위해 더 나은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를 만족시킬 수 있는 '나'를 위한 선택을 내릴 것이며 실제로도 그렇게 되지 않았는가. 그러니 결국 너를 위한다는 것이 나의 뒤틀린 욕망을 위한다는 꼴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너와의 만남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너와의 일상을 원한다. 내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씻고 눕거나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할 때 항상 웃어주던 네가 있었으면 하며, 이불을 덮을 때 항상 네 목까지 덮어주는 내가 되었으면 하며, 너에게 천국 같은 행복은 아니더라도, 인생에 조그마한 행복이 되었으면 한다.


이 모든 것은 네가 나에게 했던 말이다. 너는 일상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일상이 시시해 보였던 거지. 현실이 불만족스러워 영화나 드라마에 파묻혀 살았으며, 그 안의 일상을 얻으려 발버둥 쳤던 사람일 뿐.


너는 그 일상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나에게 너의 옆을 내주었던 너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는 네 옆에 누가 있을지 모르는 일이지만.


나의 사회생활은 본격적으로는 31살, 음... 지금 29살이니까 아마 31살, 윤석열 나이로는 30살에 시작할 듯싶다. 누군가는 늦은 시작이라고 할 거고, 누군가는 늦지 않은 시작이라 하겠지.


벌써부터 두렵다. 내가 널 만나고 나서 또 많은 어려움이 닥쳐올까 봐, 또 나에게 시련이 다가올 테고 또 그때 내가 잘못된 결정을 내릴까 봐 두렵다. 그때가 오면 나는 그 누구도 아닌 나와 싸워야 한다.


내가 지키고 싶은 것과 나의 욕심을 구별해 낼 줄 알아야 하며, 그것이 내가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래서 이 제목을 잃어봐야 소중한 것을 깨닫는다고 적었다. 아예 너의 현명함을 몰라주는 사람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나도 한낱 인간이라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든다.


너 말고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 때도 물론 있다. 없다고 말하면 아마 누가 믿겠는가. 하지만 사귈 때에는 그런 생각을 5초도 해본 적이 없다.


우리가 연애할 때에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너는 내 세상이었으니까. 어떻게 내가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었겠는가 너한테 둘러싸여 있었는데.


내 모든 에피소드의 끝에는 걱정과 불안이 담겨있을 듯하다. 너의 마음을 모르고 항상 모르는 것은 더 크고 무섭게 다가오기 마련이니까.


항상 그랬듯이 두렵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와의 재회를 시도하는 이유는 하나이다. 죽기 전에 후회할 것 같아서.


이렇게 말하면 너무 이기적으로 들리는가? "쟤는 또 결국 지 좋자고 잘 지내고 있는 사람 흔들어놓네"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걱정 마라 훗날 이 책을 그 사람에게 보낼 때에는 그 사람의 결정을 존중할 것이며 많이 고마웠다는 작별인사 또한 잊지 않고 보낼 것이다. 근데 또 내가 어마어마한 쫄보라 만약 거절이라면 그대로 읽씹을 당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만일 그 사람에게 거절의 메시지가 온다면 나는.... 좀 많이 힘들 것 같으니까.


이 글을 보내기 전까지 나는 강해지고, 단단해지려고 한다. 음... 예를 들어 설명하면 한동안 물을 마시지 못한 사람한테 물을 앞에 보여주고 줄지 안 줄지 결정한다고 해보자.


물을 주는 사람은 전 연인이 될 것이고, 받아마시는 사람은 내가 될 것이다.


내가 갈증에 미쳐서 지금 당장 물이 없다면 죽을 것 같은 상황이라면, 물을 거절당했을 때 많이 상처받고, 많이 아파하겠지. 뭐, 그것이 내가 감당해야 하는 짐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하지만 나는 내가 갈증을 느끼는 사람이 아닌, 동등한 위치에서 너에게 다시 시작하자고 하고 싶다. 대학원생이 어떻게 직장인과 동일한 위치에서 시작할 수 있겠느냐, 하는 스스로의 의구심도 들지만, 나는 그 의구심을 이겨낼 정도로 강해지려고 노력할 거고,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생길 때, 너에게 더 잘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너에게 다시 만나자고 할 것이다.


많은 이야기를 적었지만, 오늘 이야기를 끝으로 나의 마음가짐보다는 이 책은 뭐랄까.... 나의 일상과 경험을 담은 글을 담으려고 더 노력해보려고 한다.


너무 내 마음가짐만 담으면 독자들의 흥미도도 떨어질 뿐만 아니라 자화자찬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녀와의 일상은 재밌는 일이 많았다.


네가 자다가 내 팔을 물어뜯은 일부터 너와 강북 아파트 가격을 논하며 미래를 구상하던 일, 같이 부산 갔던 일, 강릉 갔던 일, 춘천에서 항상 널 데려다주던 길, 대림역 네 집 앞에서 같이 김밥을 먹던 나날들 등등... 많은 추억이 있기에 그 추억들을 이야기하고, 내가 그때 조금 더 잘해줄 수 있었던 부분들.


그렇다고 너무 날 혹독하게 "이랬어야지!!!"는 아니고, 그저 이랬다면 어땠을까, 하는 부분들을 적어보려고 해.


그냥,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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