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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드로 Feb 02. 2024

EP. 16 내 굳은살을 만지던 너

굳은살은 내 고통으로 만들어진다.

그녀:"오빠는 항상 굳은살이 있네?"


나:"아 이거 철봉 하다 보면 생겨"


손, 마치 파블로프의 강아지처럼 그녀는 길을 걷다가 나에게 손을 내밀곤 했고 나는 웃으며 그 손을 잡았다.


이제는 그 손을 볼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또 한 번 날 아프게 한다.


우리는 날씨가 엄청 추울 때는 손을 잡고 주머니에 넣고 길을 같이 걸었다.


그녀는 손만 잡고 있기에는 심심했는지, 내 손가락 아래 부분에 있는 굳은살을 매만지고는 했다.


굳은살이 배겨있는 사람이 몇 명 없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그저 무의식적인 행동이었을까.


쨋든 나는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았다.


굳은살, 나는 원래는 굳은살이 없었다. 그러나 군대를 전역하고 철봉을 좀 하다 보니 어느새 굳은살이 내 양손에 자리를 잡았다. 굳은살이 없으면 철봉을 오래 잡고 있기도 힘들고, 당연히 턱걸이나 다른 운동을 하기에도 힘들다.


나는 철봉 개수 10개를 달성하고 나서는 밧줄 타기에 도전했는데, 첫날에는 밧줄을 제대로 잡고 매달리지도 못했다. 너무 아팠다. 밧줄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부드럽지도 않아서 막상 움켜쥐면 따갑고 욱신거린다.


철봉과 밧줄, 나는 운동을 엄청 즐겨하는 편은 아닌데 맨몸운동은 자주 하는 편이다. 헬스장을 가는 것을 안 좋아하기도 하고, 맨몸운동은 개수가 느는 것이 바로바로 보이니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또한 나처럼 마른 사람은 어느 정도 균형 잡힌 몸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말랐는데 배만 볼록 튀어나오면 무슨 올챙이 같은 체형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맨몸운동은 그런 점에서 최고의 운동이었다.


갑자기 주제가 헬스로 바뀌었는데, 굳은살을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네가 내 손에 생긴 굳은살을 좋아했던 것처럼, 내 안에 생긴 굳은살을 좋아해 줄 수는 없을까.


굳은살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철봉을 잡고 아파도 계속 이 악물고 붙잡고 있어야 생긴다. 아프다고 놓는다면.... 아마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헤어지고 나서, 여러 고통들이 날 집어삼켰다. 지금은 덜하지만 2시간마다 네가 떠올라 깨던 나날들, 네가 생각나지만 지금 내 위치에서는 널 만날 수 없다는 자기혐오, 나보다 나은 남자를 만났을 수도 있다는 절망감, 너에게 못해준 나날에 대한 후회, 제일 무서웠던 것은 더 이상 널 볼 수 없을 수도 있다는 미래에 대한 죽음보다 두려운 공포. 그래, 그건 정말 공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살아있었고, 나는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붙잡고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여러 고통들을 견뎌야했고, 고통들을 견디는 시간이 지날수록 내 안에 굳은살이 점점 생겨나기 시작했다.


영화 매트릭스 2:리로디드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희망, 그것은 자네의 가장 큰 약점이자 강점이지


희망을 저버리고 살았다면 널 좀 덜 생각할 수 있었을까?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아예 꺼진 불씨는 쳐다보지 않는 법이니까.


하지만 나는 잿속에 남아있는 조그마한 불씨를 찾아보고 있는 중이다.


조그맣지만, 스러지는 낙엽 몇 개만 있다면 다시 불타오를 수 있기 때문에.


헤어지고 나서 보낸 지난날의 나의 고뇌와 성찰이 그 스러지는 낙엽이 되어줬으면 한다.


오늘도 조교알바가 끝나고 여러 노래를 들으며 집에 오는 시간 동안 널 많이 생각했다.


그중,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또 날 한차례도 휘감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경험이 생겨서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앞으로 그녀를 다시 만난다고 해서 삶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내가 널 다시 만난다면 우리는 결혼을 염두에 두고 만날 테고,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문제들을 마주하겠지.


여러 부모님들, 또는 이제는 결혼을 한 여러 지인들이 그렇듯이 그들도 그들만의 문제에 부딪혔을 테고,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해결해 나갔을 것이다.


나는 이제는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나뿐만이 아닌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지난날의 내 결정은 "내 인생이니까, 결국 내가 잘되야지. 내가 죽기 전에 후회하면 어떡해?"이런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물론 그 생각이 아주 잘못되고 쓰레기 같았다는 건 아니다. 방황한다면 할 수도 있는 생각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람은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고,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도 어느 정도 볼 수 있어야 한다. 미래를 보는 것은 내가 무슨 닥터스트레인지도 아니고, 에수님도 아니니까 구체적으로 볼 수는 없고, 유일하게 볼 수 있는 방법은 나 자신의 과거와 주위사람들을 보며 추측해야 할 뿐이다.


이제는 내가 만일 진로나 내 앞으로의 커리어에 대한 고민과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주위 사람, 네가 내 곁에 있다면 너와 함께 상의하며 나아가고자 한다. 


그런 말이 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


어떤 문제가 생기면, 냉정하게 판단하고 그 결정이 인간관계를 내려놔야 하는 결정이라고 할지라도, 책임감 없이 내려놓지 말아라.


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게 인연이며, 설령 두 번 다시 만나지 않는다고 해도 인간관계는 어디 숲 속에 처박혀서 장작패고 동물 잡으면서 사는 게 아닌 이상 내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많이 힘들었지만, 전보다는 책임감이 눈곱만큼이라도 생겼고, 고통을 어느 정도 즐길 수 있게 되었으며,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을 알게 해 준 너에게 감사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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