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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힌 Aug 15. 2021

서른 살 김엄지

 엄마가 말했다. 너는 엄마 노력 아니었음 태어나지도 못했다고. 삼십여 년 전 그때 당시 엄마는 서른두 살이었다. 결혼은 스물다섯 살에 했다고 했으니 엄마는 결혼하고 꽤 오랫동안 아이를 갖지 못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지어다 준 한약도 먹어보고 옆 동네 민수네 아주머니 속옷도 받아다 입어봤지만,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심지어 외할머니까지 엄마 속을 박박 긁었다. 옛날이었으면 소박맞고 맨몸으로 쫓겨났을 거라나. 그래서 결국 엄만 동네 아줌마들에게 수소문해서 용하다는 무당까지 찾아갔더랬다. 무당이 엄마 얼굴을 보더니 척하고 말했다.


“쯧쯔, 맘고생이 심했겠구먼. 아기 때문에 왔지?”


 엄마는 이 말을 듣자마자 울컥했고 결국 처음 보는 무당 앞에서 울었다고 했다. 무당은 엄마에게 삼백만 원을 받고 부적을 여러 장 써줬다. 그리고 베개 밑이라든가 옷장 안, 입고 다니는 팬티 안까지 넣고 다니라고 언질 해줬다. 엄마는 당장 화장실로 가서 팬티 안에 부적을 넣고 집에 가서는 온 집안 구석구석 부적을 붙였다. 노란 부적이 희끗희끗해질 무렵, 엄마의 뱃속에 내가 생겼다.


 태중의 아기가 여자아이라는 소식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드디어 아이가 생겼구나 그간 고생했다 말하며 기뻐하기보다, 몹시 실망하시며 한숨을 쉬셨다고 했다. 이름도 다음엔 아들을 낳으라는 의미로 뒤 후자에 사내 남자를 써서 ‘후남’이라고 지으려고 하셨다. 엄마는 그 이름은 절대 안 된다며 할아버지한테 빌었다. 아무리 빌고 빌어도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꽤나 강경했는데, 의외로 쉽게 내 이름은 ‘후남’이 아닌 ‘엄지’가 되었다. 소파에 앉아 옆에서 듣기만 하던 아버지가 책을 덮으며 “엄지는 어때?” 하고 물었기 때문이었다. 엄마의 기억으로 그 책은 공포의 외인구단이라는 만화책이었다고 했다. 엄마는 그 책에게 너무나도 감사한 나머지 아직도 한 달에 한 번은 그 책의 먼지를 꼭 털어준다.



 어릴 적 사진을 보면 나는 핑크 공주였다. 핑크색 드레스에 핑크색 크로스백, 핑크색 리본 머리띠에 핑크색 에나멜 구두까지 그야말로 완벽했다. 엄마는 항상 핑크색에 시폰, 레이스까지 달린 옷들만 사줬다. 바지라곤 체육복 밖에 없을 정도였다. 장난감도 쥬쥬나 미미 같은 여자 인형이나 웨딩피치 요술봉 같은 것만 있었다. 나는 소방차가 갖고 싶었지만 엄마는 저런 건 남자애들이나 가지고 노는 거라며 손도 못 대게 했다. 한 번은 야인시대 딱지도 책상 밑에 몰래 숨겨뒀었는데 엄마는 그걸 귀신 같이 찾아내서 쓰레기통에 버려 버렸다. 


 우리 집의 아침은 몹시 바빴는데 그 이유는 매번 나의 패션쇼가 열리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나를 화장대 의자에 앉혀놓고 핑크리본 머리끈으로 머리를 땋아주기도 하고 양 갈래로 묶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내 눈에 비슷비슷해 보였던 핑크색 원피스들을 보며 고심을 하다 그중에 하나를 골라 입혀주었다. 옷매무새를 가다듬어주면서 엄마가 말했다.


“넌 복 받은 줄 알아, 이 기지배야. 엄마는 이런 거 입어보지도 못했어.”


때로는 이렇게도 말했다.


“넌 엄마의 보석이야. 엄마 대신 예쁘게 반짝여줘야 해?”


 한껏 예쁘게 차려입고 외출을 하면 대게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나를 칭찬을 해줬다. 그럴 때면 엄마는 그 누구보다 코가 높아졌다. 기분 좋게 하이톤으로 웃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꽉 조이고 답답한 이 핑크 드레스를 벗어버리고 싶은 마음을 조심스레 접어 깊숙이 숨겨두었다.






 시간이 흘러 교복을 입게 되자 엄마는 핑크 드레스 말고 다른 것들을 나에게 요구했다. 학교 공부는 기본이었고 여자애라면 발레를 해야 한다며 발레학원을 다니게 했으며, 피아노 치는 여자가 그렇게 이쁘다며 피아노 학원에도 다니게 했다. 밥 먹을 때마다 시집 잘 가려면 젓가락질도 잘해야 한다면서 내 손에 젓가락을 다시 쥐어주기도 했다. 참견할 때 엄마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너는 여자애가 왜 그러니?’였다. 드레스를 입지 않았는데도 입은 느낌이었다. 갑갑했다. 꽉 조인 리본 끈을 풀고 싶었다.


 그러던 중 나는 두꺼비를 만났다. 두꺼비는 고등학교 동창인데 입이 남들보다 좀 더 컸다. 커다란 입술로 앙다물고 있는 모습이 두꺼비를 닮았다고 해서 모두 그를 두꺼비라 불렀다. 두꺼비는 소위 말하는 좀 노는 친구였는데, 밴드 동아리를 함께 하면서 친해지게 되었다. 입이 커서 그런지 두꺼비는 노래를 잘했다. 같이 화음을 맞춰 노래를 부르면 내 안의 무언가 해방되는 느낌이었다. 두꺼비와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갔고 나는 두꺼비를 사랑하게 되었다. 연인 사이가 되고 자연스레 엄마와의 일도 얘기하게 되었다. 두꺼비는 공감해주며 ‘그런 집구석 나와 버려! 나랑 같이 살자!’ 고 하면서 나를 대신해 화도 내주었다. 사랑이란 감정이 묻어 이 말이 참으로 달콤했다. 그렇지만 내가 집을 나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아니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조금 쌀쌀했던 날이었다. 그날은 왠지 밴드 동아리 활동이 없어서 평소보다 조금 이르게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자 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안방 문이 큰 소리를 내며 닫혔다. 처음엔 뭔가 싶었지만 방에서 연습할 밴드 곡을 들을 생각에 서둘러 들어갔다. 방 안은 난장판이었다. 책장에 책도 이것저것 꺼내져 있었고 서랍은 온통 열려 있었으며 옷장도 엉망진창이었다. 아까의 소리도 그렇고 도둑인가 싶어 핸드폰을 꺼낸 순간, 안방에서 콰직 하는 파열음이 들렸다. 그리고 너덜너덜하게 깨져버린 라디오헤드 앨범과 찢기고 구겨진 밴드 악보를 손에 쥔 엄마가 나타났다. 엄마는 화를 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런 경박한 음악을 할 수 있냐고 소리 질렀다. 그냥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면 누구보다 잘 살 수 있는데 왜 엄마 말을 듣지 않냐며 울부짖었다. 엄마는 이번에도 귀신 같이 숨겨두었던 내 앨범과 악보를 찾아 가차 없이 부숴버렸다. 잔인하게 부서져버린 내 소중한 물건들을 보자 그동안 참아오고 숨겨왔던 가슴의 응어리가 터져 나왔다. 엄마와 나는 서로 울고불고 소리쳤다. 그러다 결국 서로의 방에 들어가 서럽게 울다 지쳐 잠들었다. 내가 깨어났을 때는 새벽 2시 44분이었다. 부은 눈을 비비고 핸드폰과 지갑, 가방을 챙겨 방에서 나왔다. 거실은 어둡고 고요했다. 굳게 닫힌 안방 문은 차갑고 거대하게 보였다. 분명히 그 공간은 우리 집이었는데 오지에 온 것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결국 집에서 도망치게 되었다.



 두꺼비와 로데오거리에서 만났다. 그는 따스히 포옹해주더니 자신도 집을 나왔다고 말했다. 나 때문에 그러지 말라고 하자 자기도 지긋지긋한 집구석에서 나오고 싶었다며 괜찮다고 했다. 그러고선 내 손을 잡아끌며 한 구석진 모텔을 향해 걸어갔다.


“당분간 여기가 우리 집이야.”


앞으로가 걱정됐지만, 손을 꼭 잡고 곁에 있는 두꺼비가 함께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날 밤, 우리는 대중목욕탕에서 맡았던 냄새가 나는 허름한 모텔방에서 미래에 대한 걱정 따윈 잊은 채 한데 엉겼다.

 둘이서 마냥 행복할 것 같았다. 하지만 하루하루 지날수록 수중에 돈은 야금야금 사라져만 갔다. 근심 어린 표정을 하고 있으니 뒤에서 나를 껴안고 있던 두꺼비가 그 커다란 입을 열었다.


“우리 가출팸에 들어가자.”


 두꺼비는 간간히 배달 알바를 하고 있었는데, 거기에서 만난 형이 가출팸에 속해있던 모양이었다. 길거리에 나앉는 것보다 낫겠지 싶어, 두꺼비와 나는 가출팸에 들어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들을 찾아갔을 때 처음으로 우리를 맞이해준 건 두꺼비가 아는 형과 무리에서 ‘엄마’라고 불리는 여자애였다. 가출팸의 리더쯤 되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위아래로 몇 번 훑는가 싶더니 형에게만 들리게 속삭이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형은 두꺼비와 나를 보고 어깨를 으쓱하더니만 ‘어서 와’ 하고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슴슴한 환영인사를 받으며 그들과 가족이 되었다.


 며칠 동안은 낯설었지만 꽤나 재밌었다. 또래와 같이 살아보는 게 처음인지라 마치 수학여행을 온 기분이었다. 두꺼비도 형들과 잘 통했는지 저녁이면 항상 그들과 밖으로 나갔다. 같이 배달 알바를 하고 당구도 친다고 했다. 그렇게 남자애들이 밖으로 나가면 여자 무리는 삼삼오오 과자를 가지고 모여 슈퍼주니어나 소녀시대 같은 연예계 가십을 떠들거나 외모에 관련된 얘기를 하거나 했다. 가끔 한 친구가 전화를 받고 나가면 대화 주제는 바로 그 친구로 바뀌었다. 말투가 이상하다거나 화장실에서 물을 안 내리고 나온다는 시답잖은 뒷담화였다. 나간 친구는 대게 3시간 정도 지나면 돌아왔다. 밖에서 돌아온 친구의 머리칼은 살짝 젖은 채였고 몸에서는 싸구려 바디워시 냄새가 났다.


 전화가 왔다. 두꺼비였다. 요새 대화도 못하고 전처럼 같이 노래도 부르지 않아 그와 소원해져 있던 터라 반가웠다. 하지만 반갑게 전화받은 내가 무안해질 정도로 할 얘기가 있다며 나오라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짧은 통화에 잠시 실망했지만 마음을 털어버리고 나갈 준비를 하는데 리더인 ‘엄마’가 다가왔다.


“이제 드디어 네 차례구나? 기대할게. 수고해.”


 엄마는 내 어깨를 두어 번 툭툭 치더니 다른 친구들 무리로 돌아갔다. 그들이 쑥덕거리는 소리에서 슬며시 내 이름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두꺼비는 로데오거리로 가는 작은 골목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두꺼비는 피우던 담배 불씨를 꺼뜨렸다. 그러고선 나에게 너도 이제는 패밀리를 위해서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곧 손님이 오기로 했으니 그를 화나게 하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거냐고 물었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해.”





 마음이 철렁했다. 다시 분홍색 리본으로 심장이 조여지는 듯했다.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두꺼비의 손은 너무도 단단했다. 그 단단한 손을 믿고 집에서 나왔는데 이번에는 그 손에 의해 어딘가로 끌려가고 있었다. 한 아저씨가 형의 무리를 대동하고 나타났다. 구레나룻에 살짝 흰머리가 보이는 것이 전에 다니던 학교 수학선생님 나이 또래 같아 보였다. 그 아저씨와 나란히 걷고 있으면 두꺼비와 남자 무리들이 조용히 따라왔다. 밥을 먹을 때도 담배를 피우며 묵묵히 기다렸고 모텔로 끌려가며 울먹이는 내 얼굴을 보면서도 두꺼비는 침묵했다.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여자아이들이 나갔다 오면 싸구려 바디워시 냄새가 왜 그리 지독하게 났는지를. 향이 지독하게 날 만큼 그들이 얼마나 그 더러움을 박박 씻어내고 싶었는지를.





 한 계절이 지났다. 패밀리와 함께 지내는 게 제법 익숙해졌고 마음도 꽤 무뎌졌다. 엄마가 뭔가 심통이 나서 나만 계속 ‘일’을 시켜도 두꺼비와 엄마가 친밀하게 지내는 것 같아 보여도 심장이 송두리째 떼어진 거 마냥 아무렇지 않았다. 나를 탐닉하며 예쁘다고 주절대는 아저씨들 또한 시큰둥해졌다.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저녁, 나는 또 일을 나가게 됐다. 손님은 자주 이용하던 모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아저씨였는데, 얼굴 생김새가 물고기를 닮아 우리끼리 물고기 아저씨라 불렀다. 아저씨는 좀 특이한 사람이었다. 일을 마치고 혼자 모텔을 나설 때면 이런저런 질문을 하곤 했다. 왜 이런 일을 하는지부터 시작해서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까지 우리에게 관심이 많았다. 피곤하지 않냐며 에너지 드링크를 챙겨주기도 했다. 그랬던 그런 물고기 아저씨가 ‘일’로 나를 부르다니 의외였다. 지금까지 보여줬던 상냥함에 대한 왠지 모를 배신감이 느껴졌다. 


 단 둘이 남은 모텔 방에서 물고기 아저씨는 이번에도 나에게 물었다. 행복하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무덤덤하게 행복은 잘 모르겠지만 불행은 조금 알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물고기 아저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모텔방에서 데리고 나왔다. 복도 창문 밖에서 기다리는 남자 무리들이 눈에 띄었다. 그 무리들 사이에서 담배 피우며 껄껄대고 웃는 두꺼비가 보였다. 물고기 아저씨는 나를 카운터 뒤편의 복도로 안내했다. 그곳엔 모텔 뒤로 나갈 수 있는 작은 쪽문이 있었다. 


“나는 이렇게나 예쁜 네가 그렇게 흉측하게 사는 게 너무 안타까워.”


 아저씨는 두툼한 봉투를 내 손에 쥐어주었다. 열어보니 꽤 많은 양의 돈이 들어있었다. 놀란 나를 보며 물고기 아저씨는 쪽문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길을 따라 조금 걸어가면 불러 놓은 택시가 있으니 그걸 타고 어서 떠나라고 했다. 아무 연고도 없는 날 왜 도와주시는 거냐고 물었지만, 물고기 아저씨는 그저 웃어 보이며 작은 쪽문을 굳게 닫았다.


 택시에 탔다. 어디로 가냐는 택시기사의 물음에 나도 모르게 엄마의 집주소를 불렀다. 이윽고 택시는 출발했고, 나는 그 잊고 싶던 거리에서 무사히 벗어날 수 있었다. 택시 미터기의 말이 소리도 없이 빠르게 달렸다. 조용한 게 싫었던 택시기사 아저씨는 예쁜 아가씨가 이런 늦은 밤에 돌아다니면 아저씨들이 좋다는 줄 알고 따라온다면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듣고 싶지 않은 말을 흘려듣기에 이골이 난 터라, 나는 그저 차창 밖을 멍하니 응시했다. 물고기 아저씨가 나 때문에 패밀리로부터 못된 짓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어느덧 눈에 제법 익숙한 풍경들이 들어왔다. 집에 가까워 올수록 심장이 두근거렸다. 엄마는 나를 만나면 화를 낼까? 울까? 아니면 웃어줄까? 이런저런 생각이 뒤섞여 어지러울 쯤, 한 아주머니와 엄마가 함께 있는 걸 발견했다. 아주머니의 지인이 거리에 있던 나를 보았었나 보다. 아주머니는 엄마에게 나에 대한 소문을 들려주고 있었다.


“엄지가 엄청 짧은 옷 입고 나 잡아 잡숴하고 다닌다나 봐요.”


“내 딸이 그럴 리 없어요. 내 딸은 분명히 그 시꺼먼 놈이 납치한 거라고요!”


 엄마와 아주머니의 대화를 듣고 내 다리를 보았다. 짧은 치마로 아슬아슬하게 가려져 자칫하면 속옷 보이는 그런 차림새였다. 엄마의 보석인 내가 이 모습으로 나타나면 엄마의 얼굴과 마음이 얼마나 일그러질지 뻔히 그려졌다. 두 손과 발에 다시 꽁꽁 묶일 분홍 리본의 기분 나쁜 감촉도 스멀스멀 떠올랐다.


 기사 아저씨에게 택시를 돌려 달라고 말했다. 아직도 집은 나에게 거대하고 낯설었다. 어디에도 내가 있을 곳이 없었다. 차라리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문득 가출하게 되어 가지 못했던 수학여행이 떠올랐다. 그래, 바다를 보자. 멀리 더 멀리 그 어느 누구도 나를 알지 못하는 바다를 목적지로 바퀴는 구르고 또 굴렀다.






 푸른 바다에서 나는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겨우 사정을 해서 조그만 고시원에 묵을 수 있게 되었고,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 편의점 점장 아저씨는 미성년자 계집애가 뭘 할 수 있겠어하면서 날 채용하길 우려했지만, 며칠 일하는 걸 보더니 이제는 꽤나 신뢰하게 된 눈치였다. 밤낮이 바뀌어서 몸이 피곤했지만 마음은 편했다. 사람이 뜸한 시간에는 좋아하는 밴드의 노래를 크게 틀어 놓고 따라 부를 수도 있었다. 근무 중 가장 소중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하루는 나에게 작은 친구가 찾아왔다. 여느 때와 다름없던 새벽, 물류를 정리하고 빈 상자를 편의점 밖에서 정리하던 중이었다. 바닥에 있던 상자를 치우자 자그마한 생쥐가 땡그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바짝 얼어있었다. 보통 생쥐 치고는 하얀 편이어서 그랬을까 나는 이 작은 생쥐가 징그럽다거나 더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마침 주머니에 간식으로 챙겨뒀던 과자를 뜯어 잘게 부순 뒤 하얀 생쥐 가까운 쪽에 놔두었다. 그리고 멀찍이 물러나 지켜보았다. 하얀 생쥐는 잠시 머뭇거리다 슬금슬금 다가와 과자 부스러기를 먹었다. 오물오물 거리는 모습이 귀여웠다. 생쥐가 배를 채우는 동안, 생쥐가 들어주건 말건 나는 그 곁에서 조잘댔다. 오늘 어떤 손님이 컵라면을 면과 국물을 남긴 채로 버려서 쓰레기통을 씻어내야 했다는 얘기, 바닥이 미끄러워서 넘어질 뻔했다는 애기 등등 내 입술은 쉴 새 없이 달싹였다. 하얀 생쥐에게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는데 신기하게 생쥐는 박자에 맞춰 꼬리를 살랑거렸다. 두 번째 부르던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생쥐는 과자를 양껏 먹은 모양이었다. 하얀 생쥐는 마치 고마움을 표하는 듯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덤불 속으로 사라졌다.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하면서 나는 사라져 가는 하얀 생쥐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몇 번의 해가 지고 달이 떴다. 커다란 집게로 편의점 앞에 떨어져 있는 담배꽁초나 아이스크림 봉지 같은 쓰레기들을 줍고 있었다. 바닥이 깨끗해졌을 무렵, 하얀 생쥐가 쌓여있는 상자 뒤에 있는 수풀 속에서 슬그머니 머리를 내밀었다. 반가운 나머지 성큼 다가가 생쥐 앞에 쪼그려 앉았다. 작은 친구는 다행히 겁을 먹지 않고 코를 킁킁 거리며 나를 올려봤다. 먹을 것을 주고 싶어 주머니를 뒤져 봤지만, 있는 거라곤 상품을 정리하다 나온 노란 고무줄뿐이었다. 하얀 생쥐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 말한 후,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참치 캔이 좋을까 아니면 과자가 좋을까 하고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점장님의 고함과 퍽석하고 둔탁한 소리가 났다. 연달아 소리가 나자 불안해진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점장님은 수풀 앞의 상자를 발로 차며 욕을 내뱉었다. 쥐새끼라는 단어가 들리자 하얀 생쥐와의 슬픈 이별을 직감했다. 처음에 과자를 주지 않았다면, 기다리라 하지만 않았다면 저 작은 생명체는 저 검고 커다란 발에 차이지 않았으리라. 눈이 시큰거리고 손이 덜덜 떨렸다. 점장님이 내게 삿대질하며 무어라 소리쳤지만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저 가여운 생명이 구슬플 뿐이었다.





 위생관리가 소홀했다는 명목으로 편의점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근처만 가도 자꾸만 하얀 생쥐가 회상이 되어 거처도 옮겼다. 나무 고시원이라는 곳이었는데, 총무 아르바이트를 겸하면서 그곳에 살게 되었다. 고시원의 주인은 스무 살 중후반쯤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그는 풍채가 크고 번쩍이는 가죽재킷을 자주 입고 다녀서 고시원 사람들은 그에게 풍뎅이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어머니가 작년에 고시원을 물려주셔서 젊은 나이에 운영하게 되었다고 했다.


 풍뎅이는 나에게 굉장히 호의적이었다. 면접을 보면서 이야기를 듣더니 대뜸 손을 잡아 힘들었겠다며 위로하기도 하고, 짐을 대신 들어 복도 가장 끝의 큰 방에 넣어주기도 했다. 원래 풍뎅이는 따로 집이 있었는데 내가 일을 하게 된 뒤부터는 여자 혼자 두면 걱정된다며 내 옆방에서 며칠씩 머물곤 했다. 때때로 간식이라든가 옷 같은 선물도 줬다. 풍뎅이가 어깨를 쓰다듬는 다던가 손을 매만지는 것은 불쾌했지만 그 정도는 참아 낼 수 있었다.


 여름휴가로 풍뎅이가 고시원을 비운 날 밤이었다. 혼자 총무실에서 장부를 확인하고 있는데 고시원에 거주하고 있는 몇 명이 쿵쿵 거리며 몰려왔다. 그들은 대부분 퉁명스러운 표정인 데다 나를 흘깃거리거나 빤히 쳐다봤다.


“대학은 나왔냐? 고등학교는 나왔고?”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끝도 없는 질문공세를 퍼 부음과 동시에, 풍뎅이에게 꼬리를 쳤다고 하고 몸으로 꿰어냈다고 하는 등 모욕적인 말들을 쏟아내었다. 아니라고 대답할수록 그들은 말본새는 더 거칠어졌다. 둘러 서있던 그들은 커다란 벽이 되었다. 빛도 들어오지 않는 암흑 속에 갇힌 것만 같았다. 가슴이 갑갑하고 울분이 터져 나오려 했지만 나는 입도 벙끗할 수가 없었다. 나를 째려보는 수많은 눈동자가 두려웠다. 한참을 떠들던 그들은 움츠러든 내 모습을 비웃으며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날 이후 내가 혼자라도 있게 되면 그들은 어김없이 달라 들었다. 공동 주방이나 욕실, 화장실까지 어지럽히고 더럽게 만들어 놨다. 풍뎅이도 몇 번은 그들에게 주의를 줬지만 내가 지쳐가는 만큼 그도 지쳐갔다. 풍뎅이가 혼자 있어도 그들은 우르르 몰려가 내 험담을 했다. 점차 점차 나를 둘러싼 벽들이 더 두껍고 견고해졌다. 나는 그대로인데 풍뎅이는 멀어져 갔다. 웃어주고 칭찬하고 선물해주던 풍뎅이는 점점 말 수도 없어지고 행동도 거칠어졌다.


 진눈깨비가 조금씩 흩날리던 밤이었다. 외출을 하고 고시원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희끗희끗 눈이 쌓인 내 옷가지와 가방을 발견했다. 눈이 두텁게 쌓여갈수록 눈물이 옹골지게 맺혀갔다. 내가 나빴던 걸까? 내가 잘못했던 걸까? 내가 못난 사람이라서 미움받는 걸까? 하는 자괴감이 가득 들어찼다. 계속 부풀어 오르던 어두운 감정은 폭발할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에 펑하고 터져 버렸다. 그와 동시에 굵게 고인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눈이 오던 쓸쓸한 거리에서 나는 홀로 하염없이 울었다.






 가방을 챙겨 거리로 나왔다. 거리는 울적했다. 나무는 검게 메말라 있었고 꽃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쩌다 발견한 꽃은 노랗게 시들어 몇 개의 꽃잎만 간신히 붙은 채 차디찬 시멘트 바닥에 누워있었다. 한기가 스며들었다. 몸에도 마음에도 시리게 스며들었다. 추위를 피해 어디든지 갈 수 있었지만 내가 갈 수 있는 데가 없었다. 이토록 크고 넓은 세상 속에서 나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작고 어린 계집이었다.


 걷고 또 걸었다. 도심의 끝자락까지 다다른 것 같았다. 배가 고팠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야심한 시각인지라 식당들은 전부 닫혀 있었고 편의점은 보이지 않았다. 휘황찬란한 술집들 가운데 인조나무판자로 외관을 꾸민 작은 호프집이 보였다. 다른 곳은 술에 취한 아저씨들이 술집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어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저 호프집이라면 사람이 없어 보였고 도움을 청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회색빛의 웨이브 진 머리를 틀어 올린 노년의 여인이 카운터에 기대어 서 있었다. 조금 놀란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먹을 것을 조금만 얻을 수 있는지 물었다.


“먹을 거? 흐음 딱 봐도 무슨 일인지 알겠네. 일단 들어와.”


 옅게 미소를 지으며 내 짐을 받아준 그녀는 안쪽의 테이블로 안내했다. 잠시 있으라 하더니 그녀는 주방에서 쟁반을 들고 나왔다. 네모난 플라스틱 반찬통에서 모락모락 김이 났다. 집에서 가져온 듯한 하얀 쌀밥과 계란 장조림, 나물무침 같은 것들이었다. 오랜만의 따듯한 집밥을 보니 괜스레 눈물이 났다.

“어머, 얘 좀 봐. 배고프다며 얼른 먹어.”


 눈물 닦으랴 밥 먹으랴 나는 그녀가 차려준 음식을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밥을 다 먹을 쯤 그녀는 자신을 ‘오들희’라고 소개했다. 젊을 때 오드리 헵번을 닮았아서 개명했다고 말하며 깔깔 웃었다. 들희가 밝게 웃자 그동안 계속 울기만 했던 나도 서서히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내가 웃는 모습을 지긋이 지켜보며 그녀가 물었다.


“이제 좀 편해졌나 보구나. 잘 웃네. 괜찮다면 네 얘기를 들려줄래? 난 이야기 듣는 걸 무척 좋아하거든.”


 조금 고민하다 나는 말문을 열었다. 집을 나오게 된 일부터 고시원에서 쫓겨나게 된 일까지 전부 털어놓았다. 그녀와 만난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을 뿐인데 신기하게도 모든 일을 얘기할 수 있었다. 어쩌면 들희가 엄마와 비슷한 연배였기에 그녀에게 엄마를 투영하며 속 얘기를 더 털어놓은 걸지도 모른다. 속 시원히 말해서 그런지 뭔가 마음도 몸도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들희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안타까운 탄성을 내기도 하며 가만히 들어주었다. 내 이야기가 끝나자 그녀는 겨울 동안 함께 지내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일과 청소를 좀 도와주기만 하면 내가 좋을 때까지 있어도 좋다고 덧붙였다. 밖은 너무 추웠고 호프집 안과 그녀는 내게 너무도 따듯했다. 나는 선뜻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일 년이 지났다. 들희는 여전히 친절했고 단골손님들이 먼저 반갑게 인사해줄 정도로 나는 호프집 생활에 녹아들게 되었다. 아저씨들 옆에 앉아 술을 따르는 건 처음엔 곤욕이었지만  맨살을 더듬어 대는 진상 손님들만 아니면 괜찮을 정도로 이제는 꽤나 익숙해져 있었다. 의지하고 대화할 수 있는 들희도 있고 안정적인 거처를 잃고 싶지 않았기에 그나마 꾹 참고 견딜 수 있었다. 좋은 사람들도 간혹 있어서 내게 도움이 될 얘기도 해주기도 하고 걱정도 해주며 칭찬으로 기운을 북돋아 주기도 했다. 아침이 가까워지자 들희와 나는 가게 문을 닫고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중간쯤 걸어갔을까? 들희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 왜 너 동그란 안경 낀 그 손님 알지? 네가 자기 자리에 안 오면 고개 쏙 빼고 두더지처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너 찾는.”


 들희의 말을 듣자 체크무늬 털 조끼에 나비넥타이를 하고 검은색 벨벳 코트를 입고 오던 손님이 생각났다. 생김새도 뭔가 두더지를 닮았는데 머리를 내밀던 행동까지 초등학생 시절 했던 두더지 게임 같아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들희는 그 손님이 조만간 다시 찾아올 거라고 말했다.


“그 손님은 너를 밖에서도 보고 싶어 해. 밖에서의 일은 예전에 해봤으니 알 테고. 네가 이 사람을 단골로 만들면 우린 앞으로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거야.”


 들희의 말이 몹시 불편했다. 과거의 일 때문에 심적으로 너무도 괴로웠다는 걸 알면서, 단지 돈을 위해 두더지에게 나를 팔아넘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이로 인해 상처 입을 내 마음 따위보다 눈앞의 돈이 더 크게 여겨진 것이다. 내 표정이 어두워지는 걸 모르는지 들희는 두더지가 얼마나 부자인지 어디에 사는지 그 코트가 얼마짜리 명품인지에 대해 떠들어댔다.


“네가 싫다면 하지 않아도 돼. 그렇지만 이 늙은 나도 꽃다운 너도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는 없잖아. 너나 나 같이 학벌도 집안도 아무것도 없는 여자는 돈 많은 남자를 잡는 수밖에 없어. 도와줘, 엄지야.”


 들희의 눈을 보자 눈가의 주름이 보였고 그 주름을 따라 들여다보니 지치고 나이 든 여인이 보였다. 주름 사이사이로 그녀와의 지난 1년이 보였다. 처음 춥고 지친 나에게 밥을 차려주던 모습부터 머리칼을 예쁘게 묶어주던 모습까지 따스했던 추억이 그녀와 지낸 세월 속에 틈틈이 박혀있었다. 마지못해 나는 그러겠노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두더지는 적게는 일주일에 한 번 많으면 이틀에 한 번 꼴로 찾아왔다. 함께 밥도 먹고 영화도 봤다. 좋아하는 게 뭐냐 묻더니 노래를 좋아한다고 하자 바로 노래방에 데려갔다. 노래방에서 내가 좋아하는 밴드 곡을 부를 땐 시큰둥하더니 들희가 알려준 심수봉 노래를 들려주자 얼굴에 화색이 돋았다. 내 노래가 마음에 든다며 자주 노래방을 가게 되었고 나중에는 아예 노래방을 사버렸다. 내가 노래를 부르고 싶으면 언제든지 와도 된다고도 말했다. 가끔 일찍 끝나면 들희와 나는 노래방에 들렀다. 두더지나 다른 손님들도 함께 오기도 했다. 때로는 두더지와 단 둘만 남아 노래 말고 다른 것으로 그를 기쁘게 해야 했다. 그런 날이면 그가 떠난 뒤 울부짖으며 노래를 불러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부서져 내릴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노래를 부르는 순간만이 나를 놓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새벽에 노래방에 가면 카운터는 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가 맡고 있었다. 갈 때마다 늘 그녀는 지쳐 보였다. 꾸벅꾸벅 졸다가 손님을 맞아들인 적도 많았고 냉장고에 음료를 넣다가도 졸아 떨어뜨리기 일쑤였다. 눈 밑도 퀭한 게 잠을 잘 못 자는 거 같아 신경이 쓰였다. 밴드 동아리에서 같이 연주했던 친구를 닮아서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장인 두더지 입장에서는 맨날 조는 아르바이트생이 고까웠나 보다. 들희와 손님 여럿이서 함께 방문했던 밤 두더지는 그녀를 향해 빈정대기 시작했다.


“사람 없을 때 연습만 하게 해 주면 열심히 하겠다고 해서 받아줬더니만. 이래서 계집 딴따라는 못 고쳐 쓴

다는 옛말이 딱 맞다고 하는 거야. 너 같은 건 길에 나가면 얼어 죽기 십상이야”


 들희도 그녀에게 몹쓸 딴따라나 상종 못할 지지배라고 하며 두더지를 거들었다. 사람들에게 몰려 날카로운 비난을 듣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고시원에서의 일이 생각났다. 그녀의 얼굴에서 내 얼굴이 비춰 보였다. 힘없는 겁쟁이였던 나는 그 상황을 잠자코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그녀가 걱정되어 며칠 후 혼자 노래방을 찾았다. 다행히 그녀는 아직 근무하고 있었다. 카운터에 앉아 헤드폰으로 노래를 듣고 있는 듯했다. 가방에서 박카스를 꺼내 그녀 앞에 내밀었다. 그러자 그녀는 헤드셋을 벗으며 고개를 들었다.


“무슨 노래 들어요? 나도 노래 좋아하는데.”


 그녀를 향해 조심스레 입을 뗐다. 그녀는 내 얼굴을 알아본 눈치였다. 두더지의 일행이었기에 대답하기를 주저하는 게 보였다.


“걱정 말아요. 나는 그들과 같이 왔었지만, 그들은 아니에요.”


 내 눈을 한참 쳐다보다 그녀는 입을 떼었다.


“라디오헤드 라스트 플라워즈.”


 그 대답에 다시 한번 밴드 동아리 시절 향수가 몰려들었다. 그 시절로 돌아간 듯이 그녀에게 음악 얘기를 떠들어댔다. 집을 나오고 나서 이렇게 음악에 대해 열정적이게 얘기를 해본 게 얼마만일까. 처음에 경계하던 그녀도 흥미가 돋았는지 점점 함께 수다를 떨게 되었다. 나중에는 자신의 락커에서 기타를 꺼내더니 지금까지 졸았던 건 그 기타를 얻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루에 세 탕을 뛰었기 때문이라며 자랑까지 하는 그녀였다. 같이 얘기를 한 게 고작 세 시간 정도뿐이었지만 느낌으론 알게 된 지 삼 년 된 친구와 함께 노는 기분이었다. 셔터를 내릴 시간이 되자 우리는 서로 번호를 교환하고 나서 헤어졌다.


 우리는 바쁜 날엔 문자나 전화를 하고 가게가 쉬는 날엔 내가 그녀를 찾아갔다. 때때로 쉬는 날이 맞으면 같이 공원을 걷기도 했고 그녀의 기타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녀가 공연 티켓이라도 구해온 날이면 우리는 생일파티를 하는 아이처럼 신나 했다. 함께 할수록 우리는 나날이 더욱 밝아지고 생기가 돋아났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 이런 대사가 있어. You make me wanna be a better man. 이 대사처럼 너는 날 더 좋은 사람이고 싶게 만들어.”


 문득 함께 걷던 그녀가 말했다.



“실은 널 만나기 전에 난 슬럼프였거든. 근데 네 말 한마디가 꽃 같았고 네 미소는 따스했어. 너와 만나고 나서 마치 알에서 깨어난 기분이야. 어디든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아.”


 그녀의 눈을 보았다. 널따란 밤하늘과 반짝이는 별들이 보였다. 나는 그녀가 더 높이 날아오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날 밤은 너무도 찬란하고 포근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었다. 호프집 앞 거리에는 벚꽃나무들이 흐드러졌다. 화분의 꽃들은 춤을 추듯 살랑거렸다. 그들에게 물을 주고 있을 때, 그녀가 찾아왔다.


“같이 밴드 하자. 너 노래 좋아하잖아. 나는 네가 좋아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


 갑작스러운 그녀의 제안은 기쁘기도 했지만 당황스럽기도 했다. 가게의 창문 너머로 어렴풋이 들희가 보였다. 내가 떠난다면 들희는 분명 슬퍼할 것이다. 배신감에 분노할지도 모른다. 혹독하고 매서운 추위의 세상 한복판에서 먼저 손을 내밀어주었던 사람이 들희였다. 나는 그런 들희를 외면할 수 없었다.


“미안해, 난 너와 함께 할 수 없어.”


 그녀는 날 설득하려 했지만 내 표정을 보고 슬프게 웃었다. 


“네가 여기에 있다면, 나는 제비처럼 다시 너를 찾아 돌아올 거야. 그러니까 그때까지 제발 부디 잘 있어야 해.”


 그녀는 내 두 손을 꼭 잡으며 연신 당부했다. 돌아서서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은 너무도 먹먹했다. 시야에서 그녀가 멀어져 갈수록 눈앞은 점점 더 뿌옇게 뭉개졌다.


 마음에 빈칸이 생긴다는 건 정말이지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무엇을 해도 재미가 없고 무엇을 먹어도 허전했다. 그냥 호프집이라는 쳇바퀴에 갇혀 하염없이 발만 굴렀다. 계절이 바뀌고 또 바뀌어도 내 처지는 그대로였다. 두더지는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해왔고 들희는 내 등을 떠밀었다. 의미 없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내 인생이라는 악보에서 내 음절들이 사라져 가고 정해진 마디와 도돌이표로만 메꿔지고 있었다. 가끔 두 사람에게서 숨통이 트일 때가 되면 나는 그녀와 함께 걷던 공원에 나갔다. 그녀와 같이 부르고 듣던 노래를 흥얼거리며 산책했다. 그러지 않으면 간신히 잡고 있던 끈을 놓아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녀와 같이 떠났더라면 다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후회도 하고 상상도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내게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고 달디 단 꿀과도 같았다.



 단풍나무가 피눈물이 흐르듯 붉게 물들어 떨어지던 날, 두더지는 애인으로서 동거하자며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따로 집을 구했으니 거기서 살라고 했다. 집은 그럼 주는 거냐고 들희가 물었고 두더지의 대답을 듣자 몹시 기뻐했다. 울고 싶었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돈도 집도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배운 게 없는 스물 중반의 여자는 그냥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어린 계집인 너 혼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고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우울한 표정을 읽어낸 들희는 내 어깨를 붙잡으며 입을 열었다.


“넌 최고의 애인을 둔 거야. 명품 옷과 구두에 심지어 집까지 주는 남자가 어디 있겠니? 여자는 남자만 잘 만나면 돼. 이제 돈 걱정 없이 사는 거야.”


 그날 밤 들희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내 짐들을 챙겼다. 하나둘씩 늘어가는 가방을 보고 있으니 가슴이 답답하고 착잡해졌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문자를 보고 나는 그대로 공원을 향해 뛰쳐나갔다. 뒤에서 나를 붙잡는 들희의 목소리가 들렸으나, 이내 곧 사그라들었다. 공원에 도착하니 가로등에 기대어 서있는 그녀가 보였다. 반가운 그녀의 얼굴을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그녀는 내가 울음을 멈출 때까지 말없이 어깨를 토닥였다. 주변에 풀벌레 소리만이 들리자, 그녀가 말했다.


“나랑 같이 가자. 여기에 있으면 너는 더 어둡고 추워질 거야. 같이 이겨내 보자. 우리가 함께라면 어디에 있던지 항상 따뜻한 봄일 거야. 너는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야. 나는 네 덕분에 행복해졌어. 그러니까 너도 네 인생을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나는 망설여졌다. 고등학교도 졸업 못 한 내가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잘하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내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자꾸만 나를 괴롭혔다. 나에게서 혼란스러움이 느껴졌는지 그녀는 내 손을 꽉 잡으며 강인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 마음도 그 눈을 쳐다보면서 조금씩 강해졌다.


“좋아. 너와 함께 가겠어.”


 우리는 심야버스에 몸을 싣고 도시를 향해 떠났다. 차창 밖의 풍경은 다채로운 네온사인으로 번쩍 거리기도 했다가 가로등 몇 개만이 보이는 논밭으로 보이기도 했다가 빛이라곤 보이지 않는 숲 속으로 변하기도 했다. 처음 택시를 타고 오던 날엔 너무도 길고 지루하던 그 시간이 지금은 달리 느껴졌다. 도시에 가까워질수록 희망에 부풀었다. 세상이 두렵지 않았다. 우리는 저 도시에서 누구보다 멋지게 날아오를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도시에 도착한 우리는 먼저 지하에 위치한 연습실로 향했다. 당분간은 거기에서 숙식해야 했다. 다행히 밴드의 리더였던 드러머는 사정을 듣고 연습실 청소를 해주는 조건으로 묵을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다. 연습실에 들어서자, 드러머와 멤버들이 연습을 하고 있었다. 드럼 소리가 쿵쿵 대며 내 심장도 함께 두근거렸고, 베이스가 둥둥 울려대면 내 마음도 찡하게 울리는 게 느껴졌다. 내 안에는 너무도 시원한 바람이 씻겨주듯 불어왔다. 그들은 연습을 멈추고 우리를 맞아줬다.


“네가 엄지구나. 얘기는 많이 들었어. 그러니까 노래를 들어보자.”


 드러머가 내게 마이크를 건네주었다. 키보디스트가 뭘 부를 건지 키는 몇으로 맞춰주면 되는지 물었다. 무슨 곡을 부를까 망설이다 기타를 꺼내고 있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네가 좋아하는 걸로 해. 뭐든지 좋아. 이제 하고 싶은걸 할 수 있잖아?”


 그녀의 말을 듣고 나자 부르고 싶던 곡이 떠올랐다.


“브로콜리 너마저,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


 모두가 눈을 마주쳤다. 드럼스틱의 딱딱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피아노의 선율이 흘러나왔고, 이윽고 드럼과 기타와 베이스와 피아노에서, 그리고 나의 목소리가 한 데 뿜어져 나왔다. 우리의 노래는 지하 연습실에서부터 피어올라 아침 해가 부드럽게 떠오르는 도시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몇 년이 지나고 봄이 되었다. 나는 서른 살이 되었다. 서른 살의 김엄지는 낮에는 카페 알바를 저녁에는 식당 알바를 하고 밤에는 멤버와 함께 달이 지기까지 연습한다. 가끔 캐러멜 시럽을 뺀 캐러멜 마끼아또를 달라는 사람이나 3인분 같은 2인분 달라는 사람들을 만나지만 힘들지 않다. 그 나이에 알바만 하고 살면 걱정되지 않냐면서 걱정 아닌 걱정을 하는 참견쟁이의 말도 전혀 개의치 않다.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는 내가 자랑스럽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산다는 게 매우 즐겁다.


 어느 날은 첫 타임의 밴드 공연이 끝나고 다음 공연을 준비하며 있는데, 한 남자가 찾아왔다. 굉장히 키도 크고 잘생긴 왕자님 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시계라던가 차키 같은 것들을 은근슬쩍 내보이면서 내게 관심을 표했다. 당신은 그런 밴드에 있기에 너무 아까운 사람이라면서 원한다면 아는 형의 기획사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이제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나는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내가 좋았다. 내가 있는 이 자리가 좋았고 나와 함께하는 멤버들이,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이 좋았다. 나는 고민하지 않고 단박에 거절했다. 그리고 그에게 작별을 고했다.


“안녕, 안녕.”


 자존심이 상했는지 그는 얼굴이 불그스레해진 채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무대 위에 있던 나의 베스트 프렌드, 기타리스트가 다가왔다.


“이제 노래할 시간이야.”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무대 위로 올라섰다. 태양보다 눈부신 조명이 내 위로 쏟아져 내렸다. 우리는 서로 바라보며 찬란하게 미소 지었다. 드럼스틱 소리가 났다. 기타와 베이스와 피아노가 드럼 소리에 맞춰 전율했다. 앰프에서 군중 속에서 우렁찬 소리가 뿜어져 나왔다. 감싸여 오는 그 음악 속에서 나는 푸른 하늘을 유유히 활공하는 새처럼 노래했다. 지지배배! 지지배배! 하고 즐겁게 지저귀면서.








글 쓴 시누이 - 율힌 yulhin

그림 그린 새언니 - 전포롱 jeon pol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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