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율힌 Dec 19. 2021

#19 새벽

너와 함께 지지배배(遲㢟蓓㟝) - 더디게 걸어갈지라도 너와 함께 꽃 피울

 너는 꼭 나를 새벽에 깨운다. 새벽의 검푸른 빛에 비추어 너의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볼 때면 20분 먼저 깨우는 네가 밉기도 하다 그저, 그저 네가 귀엽다. 유난히도 너는 겨울이면 꼭 해가 뜨지 않는 이 무렵에 나를 깨운다. 꼭 무언가를 더 알려주려는 듯이.     




 우리 집 고양이는 매우 얌전하다. 가끔 깨물고 할퀴긴 하지만 그래도 얌전한 편이다. 적어도 휴지를 풀어헤친다거나 물건을 떨어뜨려 부수거나 하진 않으니 말이다. 뛰어다니더라도 안전한 선에서 복도를 뛰고 캣타워를 오르고 2층 침대에 뛰어오른다. 새벽에만 우다다 거리지 않는다면, 오전 5시나 6시에 울지 않는다면, 우리 집 고양이는 참 조신하다. 신기하게도 내가 그쯤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해서일까 고양이는 주말이건 평일이건 귀신같이 동일한 시간에 나를 깨워주는데, 그 울음소리는 마치 나를 ‘엄마’라고 불러주는 듯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더 벌떡 일어나곤 한다. 내 새꾸 엄마 불렀어? 하고 말하면서. 새벽 어스름, 어둡고 푸르게 빛나는 달빛에 비추어 황금색 빵실한 고양이의 엉덩이를 쓰다듬으면, 이보다 더 마음이 평온해질 수 없다. 골골송을 들으며 쉼 없이 고객님의 만족을 위해 일어나실 때까지 어루만진다. 잠에서 깬 새벽녘 나의 30분은 오롯이 고양이의 것이다. 충분한 쓰다듬을 받은 고양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새로 갈아준 물을 마신다. 할짝할짝 물먹는 고양이를 감상하면서 나는 오늘도 이 새벽이 정말 행복하구나 하며 깊은숨을 내쉰다.     





 철없던 시절, 나의 새벽은 현재의 평온한 새벽과 다르게 거진 술에 취해 있었다. 새벽 인지도 모르고 피시방에 게임을 하며 죽치고 앉아 있기도 하고, 집에서 밤샘 게임으로 새벽을 맞이하기도 했다. 내 인생의 시간은 데이터베이스로 분류해보면 아마 술과 게임이 내 새벽을 전부일 것이다. 둘은 함께 공존하기도 했는데, 어느 정도냐면 몰래 음료수병에 소주를 담아 빨대를 꽂아 쪽쪽 마시며 게임할 정도였다. 피시방의 테러범이라는 전자레인지에 20초 돌린 숏다리를 안주삼아 게임을 안주삼아 먹었다. 가끔 만두를 사 먹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은 나의 의상이 추레했을 때만 가능했다. 남들 눈의 기대치가 낮달까. 뭘 먹든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약속이 있어 한껏 꾸미고 나온 날은 음료수 정도만 마셨다. 우걱우걱 뭔가를 먹는 스타일이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예쁘게 입고 음식을 먹기가 좀 그랬다. 음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그 새벽 피시방 안에서 누군가, 특히 남자들이 말 걸어 주길 바랐다. 내가 나를 좋아해야 하는데 그러질 않으니 그 갈증을 생판 남, 그것도 남자에게서 해소하려 한 셈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과 토크온을 통해 함께 게임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다.




 참 나는 철부지였다. 어리석었다. 그런 곳에서 만난 사람일수록 서로 진심이 되기도 어려울뿐더러 스스로에게서 빚어진 결핍은 자신이 채웠어야 했는데,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러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환심을 살 수 있을까 하며 만들어진 남들의 거짓 관심에 기뻐하고 기대었다. 나를 사랑하며 메꿔야 했을 내면을 방치해두었기에 거짓된 관심을 아무리 때려 부어도 내 마음은 밑 빠진 독처럼 줄줄 샜다. 부을수록 만날수록 내 안은 오히려 공허해져만 갔다. 사람을 믿지 못할 정도로 나는 망가졌다. 일그러진 관심들에게도 물론이거니와 순수한 호의에도 왜 나를? 진심 어린 칭찬에도 왜 나를? 하며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했다. 그 시절 나는 가로등도, 네온사인도 없는 어두컴컴하고 끝이 없는 겨울의 그 새벽, 한가운데 홀로 서있었다. 




    


 지금 나의 새벽은 달라졌다. 아니 새벽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달라진 게 분명하다. 함께 해주는 반려동물이 생겼고, 함께 해주는 반려자가 생겼다. 덕분에 나는 그들을 듬뿍 사랑할 수 있고 그들에게서 듬뿍 사랑받을 수 있으며, 그들로 인해 나를 듬뿍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홀로 걸으면 고독한 그 추운 새벽의 거리를, 함께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따스히 손도 맞잡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에게 긴긴 겨울의 새벽은 눈앞이 캄캄해 두렵지도 춥지도 않은, 고요할 수 있고 평온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겨울은 새벽을 닮았다. 차갑고 촉촉한 공기와 유난히 더 밝게 빛나는 별들이 내게 속삭인다. 겨울만큼 새벽이 잘 어울리는 계절이 없다고. 겨울의 새벽은 그 어떤 계절보다 길다고. 새벽은 겨울처럼 습기와 찬기를 잔뜩 머금은 공기와 함께 밤이 깊어질 때쯤 찾아온다. 공기가 물기 어리기 때문일까. 때로는 마음이 눈물이 맺힐 정도로 슬퍼지기도 하고 물에 젖은 인형처럼 무겁게 가라앉기도 한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새벽에 센치해진다는 말을 하나보다. 잊었던 감정은 꼭 새벽에 뜬금없이 울컥울컥 밀려들어온다. 나를 미워하는 감정, 스스로에게 분한 감정, 남이 싫었던 감정, 남에게 가슴 아팠던 감정 등을 떠올리며 늪같이 어둡고 축축한 생각에 잠긴다. 산책을 나가 차고 묵직한 새벽 공기 안에 스스로를 가둬본다. 그러다 보니 문뜩 떠올랐다. 어쩌면 겨울은 그저 어두운 밤이 길고 긴 계절이 아니라, 가슴 시린 새벽을 한껏 한 아름 품어줄 수 있는 계절일지도 모르겠다고. 서둘러 발길을 돌려 집으로 향한다. 이 아름다운 새벽, 나의 고양이와 함께 평화로이 품기 위해서.




글 쓴 동생 - 율힌 yulhin

그림 그린 오빠 - 토마쓰리 Thomas Lee





시누이와 새언니

새언니는 웨딩사진을

결혼을 기념하는 전시회에 전시했다.

시누이는 그 사진들을 보며

아, 나도 저렇게 예쁘게 느낌있게 찍어야지!

그렇게 단순히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스무여개의 사진 스튜디오 목록을 보면서

매우 혼란스럽다.

다 그게 그 사진 같고 그게 그 느낌같고

그동안의 예술은 헛 배웠나 싶기도 하다.

예쁘게 웨딩사진을 찍고 싶은데

스튜디오는 너무 많고

어떻 스타일로 사진 찍어야 하는 지도 모르겠고

머리가 어지럽다.

웨딩사진의 카오스 속에서 가까스로 정신 차린

내가 생각한다.

그래, 이번에 같이 드레스 피팅 가줄

나의 소중한 새언니에게

상담을 해보자.

그러면 내 마음이 쉬이 편안해지리라.

그렇게 믿는다.

못난 시누이는.

작가의 이전글 #18 라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