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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은영 Nov 14. 2022

밤의 시장



#8.


“됐어. 나 너무 졸려. 그냥 잘 거야!”

은비는 졸린 척 하품을 했다. 햄버거를 만들다 말고 엄마가 얼굴을 찌푸렸다. 

엄마표 햄버거는 은비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가뭄에 콩 나듯 웬일로 엄마가 집에 일찍 오면 만들곤 한다. 그래서 아빠는 이 햄버거를 ‘신난다! 햄버거.’라고 이름 붙였다. 

아빠가 그렇게 외치면 꼭 무슨 파티라도 하는 것만 같았다. 양껏 먹고도 욕심내서 더 먹게 만들곤 했다. 그런 추억 때문인지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절로 군침이 돌았다.

‘안 돼! 참아야 해. 나래랑 민지가 기다릴 거야.’

은비는 속으로 외치며 2층으로 올라가려 했다. 

“무슨 소리니! 온다고 했잖아.”

엄마가 손을 닦고 나오며 외쳤다. 

“누가와?”

“온다니까!”

“그러니까 누가 오냐고!!!”

은비는 너무 답답해 버럭 소리쳤다. 엄마가 사나운 표정을 지었다. 마치 사자처럼 포효라도 할 것 같았다. 

은비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가끔씩 엄마는 이런 식으로 누가 온다고 그러는데 정작 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도 잊을만하면 누가 온다며 엄마는 난리를 쳤다. 그러니까 기다리라고, 또는 같이 저녁을 먹자고 했다. 목요일의 핫케이크와 더불어 풀 길 없는 수수께끼다. 

‘엄마. 대체 왜 그래? 유령이라도 초대한 거야?’

은비는 이렇게 묻고 싶었지만, 꿀꺽 삼켰다. 지금 싸우면 정말로 늦어버릴지도 몰랐다. 

“아, 몰라. 몰라. 배 아프단 말이야. 잘 거야.”

은비는 배 아픈 시늉까지 하며 기어코 계단을 올랐다. 일단 방에 들어가자마자 문부터 잠갔다.

혹시 모르니 베개와 담요를 대충 감아 이불 안에 쑤셔 넣었다. 이리저리 만져주고 나니 얼핏 자고 있는 모양새가 만들어졌다. 그런 뒤 은비는 따뜻해 보이는 잠바를 챙겨 입고 창문을 열었다. 

창문 밖에는 나무가 서있었다. 은비가 태어나던 날 아빠가 심었던 밤나무는 쑥쑥 자라 튼튼한 둥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은비는 언젠가 저 나무를 타고 집에서 도망치는 순간을 꿈꾸곤 했다. 

시험을 엄청 못 봤을 때, 엄마한테 야단맞았을 때, 아빠와 엄마가 밤새도록 싸워댈 때 저 나무는 두 팔 벌려 유혹하곤 했다. 

‘이리 와. 넌 갇혀 있어!’

은비는 나무가 그런 말을 한다는 상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용을 만나기 위해 나무를 타게 될 줄은 몰랐다. 

“잘 돼야 할 텐데.”

은비는 아빠가 알려준 손동작을 하며 행운의 기도를 한 뒤 창문 밖으로 발을 뻗었다. 머리 위쪽에 있는 가지를 꽉 쥔 뒤 뒷발에 힘을 주어 바닥을 박차며 뜀틀 넘듯 창틀을 넘었다. 

앞으로 몸이 쏠리며 다리가 크게 흔들렸다. 손잡이 대신 쥔 가지까지 흔들려 겁이 덜컥 났다. 슬쩍 아래를 내려다보니 의외로 높았다. 현기증이 나며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래도 잠시간 서있었더니 발바닥 아래 가지가 의외로 단단하단 느낌이 들며 기분이 좀 나아졌다.  

후우-.

은비는 긴 숨을 내쉬고는 조심조심 몸을 움직여 아래 가지에 발을 디뎠다. 온 정신이 손과 발에 실렸다.

“고 은비.”

불쑥 둥치를 사이에 둔 비슷한 높이의 가지에서 태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비는 어찌나 놀랐던지 그대로 곤두박질 칠 뻔했다. 하지만 태랑이 좀 더 빨랐다. 

“조심해!”

건장한 팔이 배를 바쳐 은비의 몸을 뒤로 밀었다. 은비는 가까스로 머리 위 가지를 잡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고개를 빼 밀고 보고 있는 태랑이 너무 얄미웠다. 

“놀랐잖아!”

은비가 화를 내자 태랑은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넌 어째 된 게 변한 게 없냐. 위험할 거란 생각은 안 해봤어?”

“뭐가 위험해? 너 아니었으면 잘만 내려갔을 텐데.”

“웃기네. 나 아니었으면 넌 이 가지에서 미끄러졌을 거야. 네가 보는 것보다 머리 위 가지가 더 멀다고. 네 팔 길이로는 어림도 없단 말이지.”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당연히 알지. 지난해에도 그랬으니까.”

“지난해에도 내가 이 나무를 탔다고? 왜?”

“몰라. 내려가자. 가지 부러지겠다.”

태랑은 그렇게 말하더니 둥치를 잡고 빙 돌아 은비가 선 가지에 나란히 섰다. 무게를 이기지 못한 가지가 아래로 부러질 듯 구부러졌다. 

헉!

은비는 깜짝 놀라 태랑에게 매달렸다. 태랑이 소리 내 웃더니 은비를 공주님처럼 안아 들었다. 

“뭐 하는 거야!”

은비는 너무 놀라 주먹을 꼭 쥐며 몸을 굳혔다. 태랑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그대로 뛰어내렸다. 바닥에 내려앉는데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맙소사.”

은비는 어안이 벙벙해 멍하니 있다 뒤늦게 태랑에게 안겨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발버둥을 쳤다. 태랑이 눈을 끔뻑이나 싶더니 은비를 휙, 던지듯 내려놨다. 

으악!

은비는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는 눈물을 찔끔거렸다. 

“야! 너 사람을 왜 집어던지고 난리야!”

“내려달라기에 내려 준건 데 왜 화내? 뭐, 됐고 시계나 내놔.”

태랑이 얼굴을 구기며 손을 내밀었다. 은비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안돼. 반품할 거야.”

“거기가 어딘 줄 알고?”

“알 거든! 그림자 거리의 장난감 시계에 돌려줄 거라고!”

은비는 그렇게 외치다 태랑의 모습이 흐릿해지는 걸 보고는 눈을 부릅떴다. 어렴풋이 태랑의 몸 너머 마당에 선 대문까지 보였다. 어찌나 놀랍던지 목소리에서 비명이 기어 나왔다. 하지만 터져 나오기 직전 태랑의 손이 입을 틀어막았다. 

“제길, 10초 남았네. 고 은비. 그림자 거리에는 가지 마. 널 위해서 하는 소리야.”

태랑의 다급한 목소리만큼이나 빠르게 몸이 점점 투명해졌다. 급기야 말을 마치자 태랑은 사라졌다. 은비의 입을 막았던 손도 흔적도 없었다. 마치 비눗방울이 터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 이래?’

은비는 너무 황당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가슴이 쿵쿵 뛰어댔다. 아무래도 민지와 나래에게 빨리 알려야만 할 것 같았다. 은비는 허둥대며 대문을 나섰다.




“시계 열어 봐.”

민지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말했다. 은비는 시키는 대로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 뚜껑을 여는 버튼을 꾹 눌렀다. 

딸깍!

시침판이 드러나고 바늘 두 개가 12에 모여 있었다. 은비는 어리둥절해졌다. 

“어라? 분명히 2시 40분에 멈춰 있었는데?”

민지의 표정이 흐려졌다.  

“역시 그랬어. 이 시계는 태랑이 우리 눈에 보이는 시간을 알려주는 거야. 그러니까 2시 40분부터 거꾸로 움직여 12시까지가 태랑의 하루인 거야.”

“이해가 안가.”

은비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다 불쑥 머릿속에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그때 태랑은 시계를 열어보더니 12시 1분인 걸 확인하고는 뜬금없이 내일 보자는 말을 던졌었다. 그런 뒤 은비는 그릇을 반납하러 돌아섰고 앞을 봤을 때 태랑은 없었다. 

“민지 네 말이 맞는 것 같긴 한데 공방 수업 첫날, 난 태랑을 1시간 40분보다는 길게 봤던 것 같아.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논 것까지 합치면 2시간은 훌쩍 넘었어.”

“그렇다면 답은 하나네. 태랑의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거. 그날 2시간 40분이라고 치면 오늘은 1시간 40분. 불과 3일 만에 한 시간이 줄어든 거야.”

“헉. 혹시 태랑이 하루방족 앞에서 내일이면 해결된다고 한 게?”

“아마도 시간이 줄어드는 게 수의 배수인 것 같아. 그렇게 치면 뒤로 갈 수 록 줄어드는 시간의 양이 커지거든. 즉, 내일이면 태랑의 시간은 소멸할 거야.”

“뭐야!”

은비가 경악해 소리치는데 나래가 번쩍 손을 들었다. 

“얘들아. 나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그러자 민지가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가면서 설명할게.”     

밤의 시장은 색색의 조명등 때문에 휘황찬란했다. 낮보다 훨씬 더 화려하고 북적거렸다. 

지나치는 사람들 중에는 주황색이나 연두색 눈을 가진 이들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흰자위 없는 까만 눈동자만 있는 이들도 있었다. 

은비는 그런 사람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깜짝 놀라 얼른 얼굴을 돌려야만 했다. 

민지나 나래는 이야기를 나누느라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둘은 아주 심각했다.  

민지는 연신 손톱을 물어뜯고 나래는 시시때때로 이마를 짚으며 이렇게 소리쳤다. 

“아, 그러고 보니 오후 수업 때 본 기억이 없네.” 

“시험 때 어째 이상하다 했어.” 

은비는 거의 날 듯이 걸어가는 둘을 쫓느라 제대로 숨 쉴 틈도 없었다. 그러느라 거대한 분홍 코끼리가 휙, 긴 코를 휘둘렀을 땐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악!

반사적으로 옆을 본 은비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전체적으로 말캉거리는 분홍빛은 고왔다. 하지만 새빨간 눈동자는 아주 섬뜩했다. 등골을 타고 소름이 내달렸다.  

“괜찮아. 무서워하지만 않으면 돼.”

다행히 나래가 알아차리고는 되돌아왔다. 

“장난꾸러기 요괴야. 여우들이 수하로 부리는. 무서움을 먹이로 삼고 살아가지.”

민지가 은비의 손을 잡으며 웃음 지었다. 은비는 딱딱하게 굳었던 표정을 풀었다. 민지의 따스한 손길 덕분인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러자 나래도 다가와 팔짱을 끼었다.

“네가 여기 온 지 얼마 안 됐다는 걸 자꾸 까먹네. 미안.”

셋은 사이좋게 함께 걸었다. 은비는 더 이상 밤의 시장이 무섭지 않았다. 그림자 거리에 가서도 이럴 수만 있다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렇게 씩씩하게 걸어가는데 민지가 서서히 걸음을 늦추며 입을 열었다. 

“그림자 거리로 들어가는 허가증을 받는 일은 아주 까다로워. 내 알기론 조사나 학술 목적을 가진 어른들만이 갈 수 있다고 해. 그것도 용왕과 직접 만나 인터뷰까지 해야 한다지. 그러니 우리 같은 아이들이 그곳에 가는 건 불가능하지.”

“그럼 어떡해?”

은비가 묻는 순간 민지와 나래가 동시에 걸음을 멈추더니 옆으로 돌아섰다. 

눈앞에 상가 사이의 좁은 틈새가 보였다. 고양이나 빠져나가갈까 싶을 정도로 좁디좁은 골목이었다. 

“왜 여기 멈춰 선 건데”

은비가 물었다.  

“시장에는 수많은 시냇물이 존재해. 각자의 세상으로 돌려보내는 순간 이동장 치지.”

민지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순간 이동장치라고? 그게 가능해?”

은비가 깜짝 놀라 외치자 나래가 허둥대며 손을 저어댔다. 

“야. 야. 용족에게 어려운 질문 같은 거 하지 마!”

하지만 한 발 늦었다. 민지의 눈동자가 세로로 서더니 얼굴 전체에 웃음을 뿜어내며 입을 열었다.  

“그건 우리 용족이 개발한 거야. 관리하는 건 물론 성스러운 흙이지. 난 어렸을 때부터 취미 삼아 이걸 연구해 왔어. 원리는 아주 단순해. 모든 생명체에게는 각자의 노래가 있어. 간단히 설명하자면 우리 몸의 세포 안에 든 전자와 원자를 결합하고 있는 전자기력이 내는 소리라고 할 수 있지. 그 소리를 알아내면 몸을 쿼크 단위로 분해했다가…….”

은비는 생전 처음 듣는 단어들에 숨을 삼켰다. 

‘전자기 뭐? 쿼크는 또 뭔데?’

나래가 끙, 앓는 소리와 함께 애원하듯 말했다. 

“민지야. 나 머리 아파.”

민지는 그제야 말을 멈추고는 얼굴을 붉혔다. 세로로 선 동공이 납작해지나 싶더니 본래 사람 눈동자로 돌아왔다. 

“그러고 보면 너도 용족은 용족이야. 과학 관련 질문만 나오면 어쩜 다들 그렇게 열심히 설명을 해주는지 진짜 신기하다니까.”

나래가 어이없다는 듯 말을 던지자 민지가 입을 삐죽거렸다. 

“용족의 고약한 버릇이 신기할 건 또 뭐 있니? 어쨌든 그래서 난 시장에 쓰이지 않는 시냇물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어. 그중 하나가 그림자용의 거리로 통한다는 것도 알게 됐지. 그게 바로 여기야.”

은비는 눈을 굴렸다. 

“여기라고? 맙소사. 용케도 들키지 않고 이곳에 있었네.”

“보이지 않기 때문일 거야. 게다가 뒤에서 보면 벽으로 뛰어드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

민지는 가볍게 답하더니 은비와 나래에게 손을 내밀었다. 은비와 나래는 민지의 양손을 각각 잡았다. 셋 다 모두 몹시도 떨고 있었지만, 그냥 웃었다.

“가자.”

민지의 신호로 셋은 좁디좁은 틈을 향해 돌진했다. 어둑한 틈새가 삼킬 듯 크게 벌어졌다. 

‘무서워!’

은비가 공포에 질려 움찔거리는 순간 발아래로 시냇물이 흘러 지나갔다.

밤인데도 햇살에 반짝이고 있다. 물이 어찌나 맑은지 셋을 고스란히 비쳤다. 

그런데 모습이 달랐다. 민지도 나래도 은비가 전래동화책에서 보던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민지는 용이다. 푸르스름한 비늘로 덮인 몸에 사슴뿔, 그리고 왕방울 눈을 한 진짜 용이다. 

나래는 지금 모습에 두 개의 뿔이 머리 위에 솟았다. 다리는 풀이 나있었는데, 발바닥까지 모두 덮여 있어 꼭 풀로 엮은 장화를 신은 것만 같다. 손에도 역시 풀이 나있었는데 손등 위에는 꽃까지 피어 있었다.  

은비만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게 너무 웃겼다. 한 손에는 용을 또 다른 손에는 도깨비랑 마주 잡고 있다는 게 진짜 신기했다.

‘굉장해. 이렇게 멋진 친구들을 두고 왜 난 모두 까먹은 거지!’

그렇게 외치는 사이 시냇물은 뒤편으로 밀려나고 건너편 땅에 발이 닿았다. 셋이서 거의 동시에 착지했다. 그러곤 다 같이 바보처럼 입을 떡 벌렸다. 

“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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