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지각하는 줄.”
은비는 가쁜 숨을 내쉬며 교실로 들어섰다. 친하게 지내는 반 아이 몇 명이 아는 척을 하며 손을 흔들었다.
은비는 마주 웃어주며 책상으로 가서 앉았다. 어찌나 열심히 뛰었는지 이마에 땀이 다 맺혔다. 대충 손등으로 닦아내고 책상에 쓰러지듯 엎드렸다.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이 책상 위에 확 흩어졌다. 더 이상 눈은 가렵지 않았지만 그 느낌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믿어지지 않았다. 도깨비 눈꺼풀이라니 정말이지 꿈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이야기였다.
‘도깨비 다음은 뭘까? 설마 구미호는 아니겠지?’
“들어오렴.”
불쑥 선생님의 목소리가 귀청을 울렸다. 은비는 잽싸게 바로 앉았다. 그러자 선생님을 따라 들어서는 남자애가 보였다.
잘 빗어 넘긴 붉은 머리에 새까만 눈을 가진 남자아이였다. 은빛 초승달이 수 놓인 빨간 후드티에 제 몸집보다 몇 배는 큰 청바지를 입었다.
그것도 모자라 무슨 남자애가 목걸이에 반지에 귀걸이까지 하고 있는 건지 좀 우스웠다. 얼굴까지 곱상해서 떡 벌어진 어깨가 아니었다면 여자애로 착각할 만도 했다.
“우와. 예쁘게 생겼다.”
다들 그랬던지 몇몇 여자애들이 유난을 떠는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이 교탁 앞에 서더니 입을 열었다.
“저 멀리 프랑스에서 살다가 온 우 태랑 군이란다. 한국에 온 지 며칠 안됐다고 하니 다들 잘 대해 주렴. 자, 태랑아. 나와서 인사해.”
문 앞에서 멀뚱 서있던 태랑은 교단에 오르더니 인사 대신 주머니에서 작은 쪽지를 꺼내 들었다. 모두의 눈이 쪽지에 쏠렸다. 그런데도 태랑은 느긋한 얼굴로 쪽지를 펼치더니 뭐가 그리 재미난 지 쿡쿡대고 웃었다.
“어흠. 태랑아?”
선생님이 작게 헛기침을 하자 태랑은 화들짝 정신을 차리곤 쪽지에 눈을 둔 채 말했다.
“안녕? 난 우 태랑이라고 해.”
태랑은 그러고는 자신이 읽은 문장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난 글이라도 되는 것처럼 미친 듯이 웃어댔다.
“저기, 태랑아?”
선생님이 당황한 얼굴로 다시 호명했다. 태랑은 겨우 웃음을 멈추더니 다시 쪽지를 읽어나갔다.
“앞으로 잘 부탁해. 푸웁-.”
결국 참지 못한 웃음이 다시 터져 나왔다. 태랑의 외모에 혹했던 아이들도, 별 관심 없던 아이들도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교실이 고요해졌다. 다들 마른침만 꼴깍꼴깍 삼키며 태랑을 바라봤다. 그제야 태랑은 웃음을 멈추더니 나머지를 읽으려 들었다. 하지만 보자마자 웃기는지 풋, 참은 웃음이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됐다. 태랑아. 그만해도 돼. 뭐하니. 너희들. 박수 안쳐?”
선생님이 허둥대며 말했다. 아이들은 그제야 마법에서 풀린 듯 어색하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태랑은 지나칠 정도로 손을 내저으며 인사를 했다.
“고마워. 아주 고마워.”
“그래. 태랑아. 네 자리는.....”
선생님이 한숨 돌린 얼굴로 빈자리를 가리키는데 태랑은 본 척 만 척 교단을 내려가 은비에게로 걸어왔다.
“안녕?”
은비는 한쪽 눈을 찡긋거리는 태랑을 보며 볼을 부풀렸다. 갑자기 집 앞에서 마주친 교장 선생님이 지난해 같은 반이었던 아이에게 마중을 부탁했다던 말이 떠올랐다.
‘설마 아니겠지!’
하지만 은비 앞에 선 태랑은 다짜고짜 은비 짝꿍에게 말했다.
“비켜.”
“뭐?”
그렇게 되물은 건 은비 짝꿍이 아니라 은비였다. 은비 짝꿍은 어이없단 얼굴로 태랑이 대신 선생님을 바라봤다. 하지만 선생님은 듣지 못했던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태랑아. 거긴 네 자리가 아니야. 넌 저기 끝자리란다.”
테랑은 고개만 돌려 선생님을 바라보며 말했다.
“전 여기 앉고 싶은데요.”
그 순간 무슨 일인가 벌어졌다. 태랑의 목소리가 무슨 마법 주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선생님의 표정이 멍해졌다.
은비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슬며시 주변을 둘러보니 반 애들 또한 넋 나간 얼굴들이었다.
‘뭐야? 이 앤!’
은비는 태랑을 노려봤다. 태랑은 태평한 얼굴로 눈을 끔뻑이며 씩 웃었다. 그 순간 선생님이 아주 기쁜 얼굴로 외쳤다.
“그래. 그러렴.”
“여기 앉아.”
은비 짝꿍이 자기 짐을 챙겨 들었다. 은비는 황당한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하지만 둘 다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반 아이들 또한 누구 하나 이상하단 생각이 들지 않는 것 같았다.
“와. 우리 짝꿍이다.”
태랑은 자리를 비켜준 은비 짝꿍을 보는 둥 마는 둥 의자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은비는 못 들은 척 앞만 바라봤다.
이윽고 전학생을 맞아 들떴던 분위기가 가라앉고 선생님이 오늘 수업에 대해 기억해 둬야 할 것들을 조목조목 말해주기 시작했다.
“그만 좀 보지?”
은비는 태랑의 시선에 결국 눈을 맞추며 툴툴댔다.
“너 진짜 나 몰라?”
태랑이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설마 너 재주꾼이야?”
“너 대개 웃긴다. 귀띔을 받긴 했지만 정말 아무것도 기억 안 나?”
“내가 아는 건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내가 아주 평범한 인간이었단 거야.”
“인간 아니거든. 넌 재주꾼이야. 내가 듣기론 네 할머니는 아주 위대한 재주꾼이었다고. 재주꾼의 명가 출신이기도 하고. 그런 분이 어떻게 평범한 인간과 결혼을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래.”
“그러니까 내 재주가 할머니한테서 물려받은 거다?”
“그래. 그리고 내가 알기론 너희 가족은 너만 빼곤 모두 평범해. 네가 재주꾼이란 소리를 듣고도 그냥 재능이 있어서 그걸 가르치는 학원에 다니나 보다 했다지.”
“가족이라고 해봤자 엄마랑 나 둘 뿐인걸 뭐.”
“뭐! 아빤? 너 만날 아빠 자랑 해댔잖아. 우리 아빤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주고 어쩌고 저쩌고. 지난해 우리 시장 축제 때도 왔었고.”
태랑은 눈이 동그래져서 줄줄 떠들어댔다. 은비는 숨을 삼켰다. 목구멍이 메여왔다. 벌써 일 년이 넘었는데도 차마 나오지 않는 말이었다. 그래도 말해야 했다. 자꾸 아빠 생각나게 만드는 이야기를 태랑이 더 늘어놓기 전에 말려야 했다.
“우리 아빤 돌아가셨어.”
그 순간 태랑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래! 아, 그거 다행이다.”
은비는 기가 막혀 입을 떡 벌렸다.
“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태랑이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아, 표현이 틀렸어? 역시 인간 말은 어렵다니까. 발음도 영 우스꽝스럽고.”
“인간 말? 그럼 평소에는 무슨 말을 쓰는데?”
“시장에서는 무슨 말을 쓰건 상관없어. 성스러운 흙이 모든 말을 다 알아듣도록 만들어…….”
태랑이 신이 나서 떠들고 있는데 불쑥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앞을 본 은비는 어깨를 움츠렸다. 선생님을 비롯한 반 아이들이 황당해하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은비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선생님이 고개를 까닥이더니 다시 조례를 이어갔다.
“솔직히 지금 인간 말을 하긴 하는데 뜻이 대개 웃긴 게 있거든. 예를 들어 안녕은 여우말로 네 엉덩이를 차도 되냐란 뜻이야. 그리고 잘 부탁해는…….”
“그만해. 시끄러워.”
은비가 차갑게 말하자 태랑은 팔짱을 끼고는 뚱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은비는 몸을 잔뜩 웅크리고는 열심히 듣는 척했다. 하지만 머릿속은 복잡했다.
‘과연 엄마가 학교를 그만두고 시장에서 기술을 배우도록 놔둘까? 아빠라면 몰라도 엄마는 싫어할 것 같은데. 도깨비라니! 나더러 미쳤다고 할 거야. 가만있어 봐. 도깨비 눈꺼풀을 나한테 씌운 게 엄마 아냐?’
그러는 사이 조례 시간이 끝이 났다. 선생님이 나가고 나자 교실이 왁자지껄 소란스러워졌다. 몇몇 아이들이 달려와 태랑을 둘러쌌다.
“프랑스에서 왔다면서 너 한국말 대개 잘한다.”
어떤 아이가 물었다.
“당연하지. 거짓말이니까.”
태랑이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둘러선 아이들이 멈칫했다. 태랑은 일어서더니 질문을 던진 아이의 등을 마구 두들기며 말했다.
“이것도 거짓말.”
아이들이 와하하, 억지웃음을 터트렸다. 그 사이 태랑은 은비의 귓가에 속삭였다.
“은비야. 우리 늦었다.”
“뭐?”
은비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태랑은 설명 대신 은비의 손을 잡더니 와락 일으켜 세웠다.
“가자. 빨리.”
반 아이들이 눈이 휘둥그레져 바라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태랑은 은비 손을 잡고는 교실 밖으로 향했다.
“여기 어디쯤 있을 텐데.”
태량이 주변을 두리번대며 중얼거렸다.
“대체 뭘 찾는데?”
은비는 태랑의 손을 뿌리치려고 애를 쓰며 물었다. 하지만 어찌나 세게 쥐고 있는지 좀처럼 놓여날 수가 없었다. 은비가 뭐라 한 마디 하려는 순간 태랑이 외쳤다.
“아, 저깄다!”
“뭐가?”
은비는 별생각 없이 앞을 보다 입을 떡 벌렸다.
몇 발자국 앞에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곳에 있는 게 당연하단 듯 졸졸 맑은 시냇물이 복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벽에 구멍이 난 것도 아니고, 그냥 흐르는 시냇물을 가위로 잘라 붙여놓은 것처럼 보였다.
“저게 뭐야?”
은비가 황당해하며 묻는데도 태랑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꽉 쥔 손에 더욱 힘을 주고는 별안간 앞으로 달렸다.
“뛰어넘어!”
태랑이 외쳤다. 얼결에 은비는 시냇물을 뛰어넘었다.
폴짝!
반대편에 발이 닿았다. 보드라운 바람이 확 불어 들었다. 은비는 저도 모르게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놀랍게도 꽃내음이 확 퍼졌다. 순식간에 주변 풍경이 바뀌었다.
“맙소사.”
지금 은비가 서있는 곳은 교실 앞 복도가 아닌 시장 골목이었다. 길가를 따라 으리으리한 가게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높이도 저마다 달랐다.
어떤 건물은 아주 높은데 홀쭉했고, 또 어떤 건물은 아주 넓은데 고작 2층밖에 안됐다. 하지만 건물마다 사람이 없는 곳이 없었다. 물건을 사고파느라 신난 사람들로 참 시끌벅적했다.
가게 종류 또한 엄마를 따라 몇 번 갔던 시장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다.
어떤 가게는 옷을 팔고, 또 어떤 가게는 과일을 팔고, 또 어떤 가게는 커다란 자루에 갖가지 씨앗들을 담아서 팔았다.
야채를 만들어서 파는 곳도 있고, 우유처럼 보이는 걸 투명한 유리그릇에 가득 담아놓고 파는 곳도 있었다. 그렇게 온갖 것을 팔면 갖가지 냄새가 뒤엉켜 고약해질 만도 한데 아니었다.
마치 마술이라도 부린 것처럼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맡았던 은은한 꽃내음이 시장에 가득했다.
“동쪽 시장에 돌아온 걸 환영해.”
태링이 정신 차리라는 듯 은비의 손을 흔들며 말했다.
“으응.”
은비는 어색하게 웃으며 태랑을 바라보곤 또 한 번 놀랐다.
태랑의 옷차림이 바뀌어 있었다. 온몸을 두른 장신구는 여전했지만, 쪽빛이 은은한 바지저고리 차림이었다. 소맷부리와 목이 닿는 부분에는 물빛 파랑으로 물든 조각 천이 덧대 있었다. 왠지 태랑이랑 안 어울린다 싶으면서도 묘하게 어울리는 그런 옷이었다.
“아, 이거? 도제 학교 교복이야. 이 물빛 파랑으로 재주를 구분하는 거고.”
태랑이 은비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배시시 웃으며 자랑을 늘어놨다.
“그럼 나도 사야 하나?”
“무슨 소리야! 이미 입고 있잖아.”
태랑이 낄낄 웃어댔다. 은비는 깜짝 놀라 제 옷차림을 확인했다.
“우와!”
신기하게도 정말 태랑과 똑같은 옷차림이었다. 풍덩한 바지와 넉넉한 저고리는 아주 편하게 느껴졌다.
“가자. 우리가 공부할 공방을 알려줄게. 매번 내가 데리러 갈 수도 없으니까 잘 기억해두라고. 학교에서 이곳으로 올 때는 시냇물만 건너뛰면 돼. 물론 학교로 돌아가는 것도 시냇물을 건너뛰면 되고.”
태랑이 은비의 손을 잡아끌었다. 은비는 골목 가득한 사람들을 요리조리 잘도 피하며 걸음을 재촉하는 태랑을 보며 조금 놀랐다.
‘굉장하네. 어떻게 아무와도 안 부딪치고 걸을 수가 있지?’
그러다 문득 수업 시작 시간이 얼추 됐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근데 태랑아. 선생님이고 반 애들이고 너랑 날 찾을 텐데 이러고 가도 돼?”
태랑은 고개 돌려 은비를 바라보더니 소리쳤다.
“난 안 찾아. 난 그저 널 데리러 간 것뿐 이거든. 지금쯤 날 잊었을 거야. 그리고 넌 걱정 안 해도 돼. 그곳 사람들은 네가 교실에 있다고 생각할 테니까.”
은비는 눈을 끔뻑거렸다. 분명 은비를 보고 있는데도 태랑은 뒤통수에도 눈이 달린 것처럼 사람들 사이를 휙휙 잘도 피해 걷고 있었다.
“아. 혹시 전학 오면 되지 굳이 이럴 이유가 있냐 그게 궁금해?”
태랑이 다 안다는 듯 물었다. 은비가 어색하게 웃자 태랑이 말을 이었다.
“옛날에는 그랬대. 하지만 이젠 아니야. 인간들은 아이들이 정체불명의 학교에 다니는 걸 그냥 두질 못하거든. 몇 번이나 대소동이 났었대. 결국 재주꾼들의 의회에선 재주를 부리기로 결정했지.”
“진짜! 다행이다. 엄마가 절대 허락 안 할 거라고 생각했거든.”
“어, 그건 아니지. 말하는 게 좋아. 너희 엄마는 보통 엄마니까 금세 눈치챌 걸.”
“괜찮아. 우리 엄만. 일독에 빠져 지내시거든. 아주 아주 옛날부터 그랬어.”
불현듯 그것 때문에 엄마랑 아빠랑 싸우던 기억이 떠올라 은비는 말끝을 흐렸다. 태랑은 눈을 끔뻑대며 바라봤지만 더 캐묻지는 않았다.
“짜잔, 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