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노 그린라이트2

겨울, 황량한 빈터에 서서

by 양교리


겨울)

몇 번의 계절이 지났습니다.

사실 겨울은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책을 내는 일은 별다른 진전이 없었고, 그 무렵 만나던 사람과도 잘되지 않았습니다.

일과 사랑 외에 인생이 무엇이겠어요? 가슴속에 칼바람이 부는 시기였습니다.

침대에 축축하게 들러붙어 보내는 날도 있었지만, 어쨌든 펜과 노트를 챙겨 카페로 향했습니다.

‘시련에도 불구하고’ 식의 극기가 아니라, 그저 살기 위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을 만나기 점점 어려워지는 세상입니다. 심지어 어디 식당이나 카페를 가도 그렇죠.

그래서 언제나 밝게 인사해 주는 그 직원분의 친절이 특별했던 것 같습니다. 머리를 묶은 붉은 리본이 참 잘 어울리는 여자였어요.


그러나 몇 해 전 뜨거운 여름이 남긴 상흔이 채 가시지 않았었기에,

그녀가 무료로 커피 사이즈 업을 해주거나 비스킷이나 귤 따위를 건넬 때도 저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아니라, 제 맘속 깊은 욕망에 대한 감시라고나 할까요.


‘이그 답답하게 그러지 말고 말도 주고받고 친해지면 좀 좋아요?’

어디선가 이런 힐난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말씀드리자면, 네 물론 그랬습니다.

건네지는 호의에는 저도 곰돌이 젤리로 화답하기도 하고, 카페가 한산한 느지막한 오후엔 가벼운 대화를 나누기도 했죠.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카페 직원과 손님이 서로 이름과 나이까지 알게 되는 일은 흔치 않은 거 맞잖아요?

어쨌든 관심 속 무관심, 무관심 속 관심이랄까요. 그 정도의 기조를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요.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근데, 어디 아프세요?”


어느 날, 벌겋게 눈이 충혈된 채 주문을 받는 그녀를 보고 제가 물었습니다.

그 말이 방아쇠가 됐는지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겠어요?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카페에 손님이라곤 저 하나여서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30분이 넘게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었어요.

샘솟는 다정함을 억누르고 다소 건조하게 위로의 말을 건넸습니다만,

끝내는 마음에 걸려서 식사는 하셨냐고 묻고 근처에서 떡볶이를 사다 주었습니다.


떡볶이를 싫어한다네요. 벌겋게 부은 눈으로 그녀도 웃고 저도 멋쩍게 웃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왜 그녀에게 언제 밥이나 같이 먹자 해놓고 연락처를 묻지 않았는지,

또 그렇게 운을 떼놓은 채로 갑자기 그 카페로의 발길을 끊어버렸는지 말이죠.

앞서 밝힌 대로 스스로의 욕구에 대한 경계심 때문이었을까요?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가까워지는 것이 두려운 마음을 여러분은 알고 계시는지요. 그때는 그랬습니다.




이야기의 결말은 지어야겠죠.

반년이 지나고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땐 거짓말처럼 그 카페도, 그녀도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잠깐 신선놀음을 보고 왔더니 살던 마을도, 가족도 전부 사리지고 없었다는 옛날이야기 속 노인처럼,


저는 빈터에 서서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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